아내를 소 한 마리와 바꾼 사내

"글이란 진실해야 한다는 내 믿음을 믿는다", "찾고 싶다"는 열망

by 무 한소


좀 더 넓은 보폭과 빠른 빠르기로 걸었다. 며칠이 지났는지 몇 달이 흘렀는지도 모른다. 그녀를 잊기 위해서였다. 지우기 위한다는 것이 더 어울리는 표현일지도. 더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가끔 그녀가 차분히 자신을 표현할 때는 그때의 표현과 감정에 속기도 한다.

그녀와 수애의 인연은 모임의 인연보다는 훨씬 길었다. 확실한 건 인연의 긴 시간만큼 깊고 넓지는 않았다. 그건 불편한 자신의 감정 때문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리라. 그녀 이름은 정숙. 우리나라에서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많이 선택하는다는 단어 안에 포함되는 정과 숙 두 글자의 조합. 그녀는 처음에는 수애에게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다만 불편한 사람으로 다가왔다. 삶의 가치가 달랐으며 수애와는 조금 동떨어진 에너지가 과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자신의 기준에서 순위를 매긴 실천을 거침없이 하는 거처럼 보였다.


여러 이유로 그녀들과 조금 가깝게 지냈던 1~2년을 멀리하고 어느 날 걷는 직선의 거리는 평행선 사이에서 수직을 이루는 관계가 되었다. 이후 스스로 복잡하지 않고 휘둘리지 않으려는 마음의 거리는 더욱 팽팽해졌다. 그러던 중 도서관 토론에 관심을 보이던 몇몇이 모여 온라인 북 토크를 채팅으로 시작했다. 이후 그 횟수를 다하자 아쉬움에 오프에서 만남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렇게 곧 모임을 이끌어 갈 준희와 정숙, 수애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아내를 소 한 마리와 바꾼 사내_《구라짱》


믿는다.

나는 빛나 널 믿고,

글 쓰는 자의 양심을 믿고,

글이란 진실해야 한다는 내 믿음을 믿는다.



책 속에 등장하는 한뜻이 빛나에게 전달하는 메모가 담긴 쪽지다. 한뜻은 처음부터 한결같이 빛나를 믿었다. 세상에 대한 비뚤어진 빛나의 방어기제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제대로 성장해 온 한뜻의 믿음이 그녀를 조금씩 변하게 한다. 믿음으로 그녀에게 기회를 준다.


사랑의 믿음으로.


책 제목이나 표지에 대해서는 시선을 조금 불편해하며 저자, 책에 대한 사전 정보도 전혀 없이 책장을 넘겼다. 수애를 불편하게 했던 《구라짱_이명랑 지음》을 파헤치기 위해서 '구라'라는 단어에 대해 먼저 알아보기로 했다.



사전적 의미


구라: '거짓말'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


거짓말: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며서 하는 말


뻥: 허풍이나 거짓말 따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


허풍: 지나치게 과장하여 실속이나 믿음이 없는 말이나 행동



구라의 정확한 의미를 찾다 보니 같은 알고리즘에 있는 여러 단어들이 눈에 들어온다. 구라는 완전한 거짓말일까? 수애는 처음으로 사전에서 구라를 찾아봤다. 책에서는 빛나가 자신은 이제는 확실한 구라짱이 되겠다고 제대로 된 구라가 무엇인지를 보이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진실에 바탕을 둔 확실한 거짓말을 해보겠다는 건 말 자체에서 모순이 드러나는 게 아닐까? 다른 한 가지 불편함 보다 의문이 들었던 건 작가의 이력을 이 책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작가의 사소한 이력이라도 책 표지를 한 장만 살짝 넘겨보면 보이는데 작가의 이력이《구라짱》에서는 사라졌다. 작가는 여러 선입견을 견제하고 싶었던 걸까? 책을, 글을, 작품을 읽어보고 알기 이전에 작가의 이력이나 소개말이 작가의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는 선입견을 미리 방지하고 싶었던 걸까? 다만 마지막으로 책을 마무리하면서 정리된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을 쓰게 된 시작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수애는 그와 함께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작가의 초심에 격하게 공감하며 《구라짱》을 제대로 읽어 낼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그녀들과 나누게 될 설렘으로 수애의 일상에 긍정 에너지가 점점 채워진다.



《구라짱》의 최대 장점은 가독성이 좋다는 것이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편안하게 읽어낼 수 있다. 좀 더 허구적인 내용들은 가독성에 한 층 더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수애의 개인적인 시선에서는 글의 흐름을 방해하는 인물들의 등장도 엿보였다. 물론 무엇보다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의 의무 부여가 작가에겐 특별히 더 있었을 테고 곳곳에 등장시킨 인물들에 대해서도 작가의 또 다른 의도가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글을 읽어 나가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인물은 좀 더 극적인 상황을 안고서 꼭 등장해야만 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오히려 책을 읽어 나가며 몰입되어 있던 집중력이 조금 깨어졌다. 하지만, 글의 흐름과 작가의 문체는 책을 잡고 읽기 시작한 이후 다시 책장을 덮을 때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으며 수애를 강하고 흡입력 있게 끌어당겼다.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장점이며 《구라짱》과 같이 스토리가 탄탄한 소설이라면 더 강한 힘을 발휘할 거라는 확신이 든다.



《구라짱》이 수애를 더 깊이 끌어당길 수 있었던 건 다른 소설과 차별화된 특별한 구성에 있다. 그건 바로 빛나라는 친구의 소설 속에 올려진 또 다른 글에서 빛이 났다. 소설 속 그녀의 작품이다. 이러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작품의 맥락으로 본다면 개 브라이언 제빈의 장편소설 《섬에 있는 서점》과도 닮아있다. 이 소설 속에서도 서점에서 자란 아이 마야의 작품이 무엇보다 특별하다. 소설 속에 인용된 그녀의 글은 수애의 심장과 머리를 강하게 두들겨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구라짱]에서 빛나의 작품들이 빛이 나는 거처럼. 그녀의 글은 진실이 삭제된 가상의 작품에서도 기교나 필력이 남달랐다. 또한 진실이 담기면서는 어느 작품과 빗대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심장을 울리고 수애의 호기로움을 더 끓게 했다. 소설 속 작품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그것만 읽어내고 감상하기에도 《구라짱》은 수애가 먼저 놓아주기 전에는 그녀의 눈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 없었다.



《구라짱》에서 빛나는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던 모든 환경 속에서 받은 상처에 대해 방어기제를 보이는데 그것이 자신을 과장되게 포장하고 마치 속설 속의 주인공으로 꾸며내기 시작했다. 점점 더 크게, 점점 더 깊이.... 그런 그녀에게 한뜻이라는 친구가 등장하며 사랑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에 가능했던 완전한 믿음을 깨닫게 된다. 한뜻의 진실의 마음으로.



<아내를 소 한 마리와 바꾼 사내>는 바로 한뜻의 아버지를 두고 쓴 한뜻의 글이다. 출생에 대해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의지가 아닌 엄마의 죽음이라는 부재의 다른 의미로 버려진, 남다른 출생을 그려낸 한뜻의 진실이 담긴 글이다. 제출을 하지 못한 한뜻의 작품이 빛나의 글로 재탄생되면서 원하든 원치 않든 자신의 출생으로 한뜻은 이미 살인자가 되어 버렸다. 지금까지 맘속 깊이 자신을 괴롭혔던 출생으로 엄마가 죽어버렸다는 죄의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뜻이 건강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인 거 같다. 그 어떤 생명도 하찮은 건 없다는 아빠의 휴머니즘적 사랑, 그 사랑이 한뜻의 엄마와 마지막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한뜻을 지켜주고 지켜내려는 진정한 부성애로 빛이 난다.



책은 부성애의 유무, 사랑을 알고 자란 한뜻과 철저하게 사랑에 외면당한 빛나, 두 친구의 성장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빛나도 한뜻도 어린 시절 버려짐의 의미로 들어간다면 그 근원은 조금 다르지만 버려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그 버려짐에는 자신의 의지는 1도 없었다. 하지만 성장 과정에서 빛나의 아빠는 아빠가 될 준비도 어른이 될 준비도 되어 있지도 않았고 딸에게 이해를 바라며 진실이 아닌, 있는 만큼의 진실도 말해주지 않았다. 또한 자신이 받게 될 상처가 두려워서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었던 지나치게 미숙한 어른, 끊임없이 자신도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뜻의 아빠는 달랐다. 한뜻이 태어나던 날 기르던 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난산이라 아빠가 지켜내지 않으면 그 새끼 소는 태어나면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그때 한뜻의 엄마는 건강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나 변명 속에서도 중요한 사실은 엄마는 한뜻을 낳고 죽음을 맞이했으며 그때 아빠가 곁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한뜻의 아빠는 생명에는 경중이 없다고 모든 생명을 담고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맘으로 한뜻을 사랑했으며 그 마음으로 한뜻을 키워왔다. 아버지의 부성애가 차고 넘쳤지만 한뜻 또한 엄마의 부재가 자신의 탓인 거처럼 힘들어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으로 한뜻은 제대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아내를 소 한 마리와 바꾼 사내》는 한뜻의 아빠이다. 그러면서도 한뜻을 얘기하기도 한다. 엄마의 죽음을 키우던 송아지 탓이라고 생각했던 한뜻은 출생에 대한 미움에 대한 집착으로 끊임없이 자신과 송아지를 괴롭혔다. 결국 그것으로 키워왔던 송아지가 죽게 된다. 하지만 그 사실과 드러나는 결과 속에는 뜻하지 않은 여러 사건에서 아빠가 버릴 수 없고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근원적 상황들이 바탕에 깔려있다. 아빠가 지닌 모든 것을 사랑하는 휴머니즘은 앞만 바라보며 나아가는 지금의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꼭 필요한 맘이다.



작가는 말한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찾고 싶다'라는 열망이 있어야 하며 그 열망이 있다면 아파도 혼란스러워도 진실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 무엇을 찾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수애 역시 진실을 위해 몸부림치고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그것이야말로 지금을 온전히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을 온전히 누리고 그 순간은 삶을 위한 진리를 탐구하고자 한다. 또한 작가의 생각을 빌려서 어떤 상황에서도 '찾고 싶다'라는 열망만은 절대 잃지 않을 여러분에게 <구라짱> 들여다 보기를 강하게 권해본다.




처음 수애를 찾아왔던 준희와 정숙의 눈빛에는 찾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했다. 책을 읽고 나누고 글을 쓰는 사람에게서 찾아야 하는 양심, 수애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양심은 과연 얼마만큼 이었을까. 각자가 생각하는 다른 기준의 양심은 있었으리라. 수애는 책을 읽고 토론하며 생각 나누기를 그토록 쫓았던 자신의 경험을 돌아본다. 책의 권 수가 누적 될수록 모임의 횟수가 더해질수록 그녀를 누르는 양심의 무게는 늘어만 간다. 양심보다는 열망이 앞서 시작된 '토닥토닥 토론', 잘 유지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