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모르는 엔딩

운명은 의지 안에 함께한다

by 무 한소


수애와 함께 sf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준희의 추천작이다. 준희는 책 소개의 시간을 무척이나 기다렸다. 본인이 읽었던 책을 토닥토닥 동아리에 소개하는 것도 관심을 보이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꽤나 즐긴다. 책 소개는 긴 문장이지만 멤버들의 선택에 도움이 된다. 물론 소개 글에 관심을 안보이며 투표창에 바로 들어가 투표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투표창이 종료되었다. 언주는 두 눈을 다시 한번 깜박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례적인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만 모르는 엔딩]은 책 표지를 보면 공상과학에 가깝게 느껴진다. 최근의 sf소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토닥토닥 토론에서 픽스한 얼마 안 되는 sf소설이다.


멤버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건 제목이 끄는 상업적 요소라고 준희는 생각했다. 자신이 끌렸던 거처럼. 수애가 추천했던 [지구 안의 한아뿐] 과는 결이 다르지만 그 안의 담고 있는 지구를 사랑하는 작가의 마음은 하나이다. '엔딩'이라는 단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엔딩에 관심이 많다. 출발과 과정보다는 엔딩을 궁금해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불편한 진실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러한 생각들이 미치는 파장은 매우 부정적으로 우리 사회에 불편한 현실로 자리 잡고 있다. 과정보다 결과가 우선인 사회에서 자신만 모르는 엔딩이 존재한다면.




준희의 생각과 시선에 집중해서 생각을 나눴다.


운명이 있을까요? 운명은 모든 것. 의지 안에 그 운명도 함께한다《너만 모르는 엔딩》


《너만 모르는 엔딩》을 추천받고 미처 말릴 틈도 없이 피식 웃음이 튀어나왔다. 책 표지의 유치함 때문이었을까? 만화책을 소개받은 기분이었다. 습도 높은 여름을 조금이라도 피하고자 택한 방법이었다. 제각각 냉방기가 있는 각자 집의 줌안에서 누릴 수 있는 호사스러운 피서. 줌에서의 독서토론이 있었다. 책은 가온독 토론에서 읽고 함께 나누게 될 최 영희 작가의 sf소설집이다.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각 단편마다 독창성이 돋보이면서도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더해서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는 확실하게 전달된다. 또한 일상에서 일어날법한 일들과 연계해서 코믹으로 접근하는 작가의 노력이 그야말로 기발하고 깜찍하다. 작가의 필력이 표지의 유치함을 창의력으로 돋보이게 했다.


다섯 단편들 중 《너만 모르는 엔딩 》에서는 다중 우주론에 입각한 새로운 차원의 세계가 등장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적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고차원적 세계가 어딘가에서는 존재한다. 시 공간을 이동하며 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책의 내용처럼 이러한 상상들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기대감과 두려움이 평행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적당히 공존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주인공 호재의 시작은 달랐지만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짝사랑이 돋보였던 작품이다. 발랄하고 가볍게 구성되었고 더해서 주제는 깊이 있고 진하게 전달된다. 《너만 모르는 엔딩》 에서는 다중 우주론에 기반해서 짜인 미래 설계도는 온갖 가능성의 분기점들로 처음과는 다르게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보였다.


미래란, 내가 희망하는 대로 확연히, 완전히 바꿀 수 있는 행운값이 아니다. 부단한 노력으로 가능성이라는 확률을 높여야만 결과치 또한 높아진다고 얘기한다.




호재는 여러 상황에서도 다중 우주론에 기반해서 짜인 설계도에 입각한 것이 아닌 비록 자신()만 모르는 엔딩일지라도 자신의 의지로 미래를 개척해 내리라고 생각한다. 의지는 한 걸음 앞서간다. 현재 멤버들은 자신의 마음을 그에게 잠시 포개어 본다. 멤버 모두 호재의 사랑이 담긴 멋진 맘을 응원했다.


《최후의 임설미》 에서의 공간은 수애가가 살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 ㅇㅇ중학교가 배경이 되었다. 수애는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조건 없이 글을 흡수하려는 의지가 우선 생겼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작가의 상상력은 그녀들이 정한 경계이상으로 기발했다. 청소년들의 삼선 슬리퍼의 고집과 그것의 의미... 청소년들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완전하게 이해한 기분이 들었다. 미소 띤 수애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문장을 발췌해 본다.


정상이란 다수의 개념이자 다수를 위한 개념이다. 단 하나의 존재를 위한 개념이 될 수 없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과 더불어 이미 기성세대의 늪에서 잘못된 정의나 과정으로 뭔가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녀들에게 슬리퍼 한 짝을 던져서라도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문장이다. 다수의 개념에 얼마나 자신을 망각하고 살아왔던가? 수애, 준희, 선미, 정숙, 혜린까지... 어쩌면 무엇보다 가벼운 소설을 통해 다시, 단 하나의 존재를... 존재의 개념을 돌아보았다.




삶의 햇수가 가장 많은 린의 돌발 질문이다. "이쯤에서 여러분들께 조심스럽게 여쭤볼게요. 책의 주인공 호재는 결국 과학 기술의 발달로 미래를 설계하게 됩니다. 그 세팅대로만 전개된다면 위험한 상황들은 처음부터 어느 정도 차단이 되겠지만 미래가 지나치게 단조롭거나 재미가 없을 거라 예상합니다. 여기서 조금 더 확장해 본다면 여러분은 이미 예측되어 온 운명을 믿는지? 아니면 운명은 그저 자신에게는 의지에 입각한 삶의 방향 중 하나이며 삶은 개척하는 거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함께 나누고 싶어요."


그녀들은 한참을 서로의 생각과 입장에 입각해서 운명과 운명 안의 개척, 의지 안의 운명에 대해 나눴다.




sf세상에 흠뻑 빠져있던 수애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잠시 지나온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진다. 수애의 생각도 잠시 나눠본다.


운명은 모든 것


나는 어릴 적부터 운명이라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으며 그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열심히 살아왔다. 결혼 이후의 삶은 전보다 더 치열했다. 잘 살아왔는지라는 물음에는 자신감 없는 대답 대신 잠시 멈칫할 수도 있겠지만 그저 치열하게, 열심히 달려왔다. 뭔가 빈 곳이나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 빈틈없는 ''로 살아왔다. 그것이 치열하게 살아온 내 모습이다. 가끔 행운이라는 것이 찾아오면 그것마저도 노력의 부산물이라고 굳게 믿어 왔다. 또한 행운은 준비되어 있는 자에게만 찾아오는 운명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주문처럼 말해왔다. 삶을 개척하려는 의지, 노력만이 자신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스스로 다독이고 다그치며 좀 더 목표에 가까워지려는 맘으로 항상 자신을 재촉하고 있었다.


운명 안에 속해있는 의지


그 일은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면서 깨어지기 시작한다. 운명에 대해 거부하고 있는 자신에게도 혼란스러움이 찾아온다. 결혼을 하고서는 노력으로 의지로 되지 않은 여러 가지 일들에 직면하게 된다. 체념과 포기라는 부정적인 경험과 여러 번 마주쳤다. 우리에겐 내가 아무리 다른 길을 가고자 해도 기본적인 큰 관의 길은 정해져 있으며 그것은 벗어나려고 해도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운명론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물론, 그 길 또한 미래 계획서처럼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기본 큰 줄기가 하나라는 것이지. 그렇다고 나의 삶, 인간의 삶을 완전히 운명론적 관점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의지나 개척의 길도 결국 정해져 있는 운명 안에 있다. 완전히 다른 길이 아닌 큰 기본 줄기 안에서 나의 삶은 의지로의 반짝반짝 빛나는 길을 무한히 끊임없이 걸어 나간다. 나의 운명 또한 이미 다중우주론의 기반으로 잘 짜인 설계도 안에 이미 설계와 기록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믿고 있는 운명의 길에서 변함없는 큰 줄기와 다른이 아닌 다음 길을 개척의 의지로 가려고 한다. 그 길이 좀 더 다듬어지고 매끄러워지길 고대한다. 원죄를 알고 있는 거처럼 체념과 좌절, 양보의 단어 자체는 부정적이지만 부정적이지 않는 경험들을 겪는다. 그 경험은 길 어딘가, 어느 구간에서는 반복되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오늘도 운명의 반복되는 그 길을 의지로 걸어간다. 울퉁불퉁한 길이 조금씩 다듬어지고 매끄러워지며 반복되는 그 길을.




역시 수애는 과정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에게 미래란 늘 규칙이 있는 수열이라기보다는 다른 형태의 색깔과 모양을 지니고 있다. 미래는 복소수의 세상에서 자기의 좌표를 찾아가며 여정을 즐기는 과정일 뿐이다. 모르는 엔딩이기에 상대적으로 기대할 만하지 않는가?라고 수애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인다. 수애가 바라본 삶은 수의 세계와 일치한다. 자연은 대체로 수열을 닮았다. 자연은 대부분 규칙적이지만 기상이변과 인류의 손이 닿은 자연은 규칙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수애는 그 어떤 자연도 바로 보려고 노력했다. 가끔 우리 삶과 연계해서 생각해 보곤 했다. 자연에서는 정상이 정해지거나 정상을 말하지 않는다. 수애가 자연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와 신뢰를 벗어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잔잔히 흐르기 때문이다. 자연은 인류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다만 아플 뿐이다.


모임을 마무리하면서 느꼈던 멤버들의 에너지와 설렘이 아직 식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토닥토닥 토론'을 생각하면 묘한 설렘이 있다. 긴장과 자유를 지참하고 떠난 여행의 즐거움과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묘한 해방감이 뒤섞인 밤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정신이 점점 또렷해지자 수애는 걱정하며 몸을 뒤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