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상자

정리해서 서랍 한 칸에 잘 넣어 두었다

by 무 한소

언젠가 슬픔으로 귀결해 버린 내 감정


그때그때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몸속 여러 기관과 감정은 내 안에 있지만 내 것이 아니다.

맘대로 할 수도 그렇다고 관조적 자세로 있을 수도 없다.


슬픔으로 귀결된 그 감정을 물결선 아래에 두고는 감히 꺼낼 수 없었다


그런데 햇살이 유난히 길게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던 어느 날 문득 흐르는 눈물. 그 사연이 궁금해졌다.

내 감정에 무심했던 지난날, 수많은 신호를 보내온 감정을 무심히 지나쳤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상황을 , 그때 내린 결론을 합리화해 본다. 내 행동과 표출된 감정을 합리화해서 잘 다듬어 본다.


그게 살아가려는, 살기 위한 나의 처세였다고.

그렇게 자신의 뇌까지 설득해 버린 눈물의 사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감정을 모았고 어리석게도 조금 늦게 아주 작은 깨달음이 생겼다.

그래도 감격한다.

알아차림이 있다는 것은 정체되지 않은 것임을.

일단, 용기 내어 꺼냈고 풀고 있다. 오늘은 그 감정을 확인하고 잘 정리한 후에 다시 상자 안에 담아두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내 감정 상자가 처음으로 생겼다. 문득 떠오르는 이름으로 메모한 뒤 저장한다


번호를 매기고 감정을 잘 분리해서 하나씩 제자리를 정해둔다.


내면에 갇혀 있거나 표출된 여러 감정을 꺼내고 확인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 6.17. st HM&T



물결선 아래 감춰둔 감정 상자를 꺼냈다


그 출발은 현실로 드러나는 엄마의 아픔에서 시작된다. 해체되는 독서 토론 동아리 멤버들의 아픔을 분리하지 못해 우울감이 전달된 어느 날이었다. 최근에 나를 찾아온 책 [랭스로 되돌아가다]도 한 몫한다


여러 감정이 궁극에는 슬픔으로 귀결되는 과정을 바라보며 문득 그 근원이 궁금해졌다. 잘 봉인해 둔 감정을 꺼낸 것부터 조심스럽게 확인해 본다


스치고 지나간 과거의 한 순간이 여전히 머물러 있기도 했고 내가 움직이는 곳마다 쫓아오기도 했다. 그때그때 살피지 못했기에 그 감정의 근원은 이미 희미해졌다. 분노였는지, 증오였는지, 미움이었는지, 사랑이었는지, 공포 두려움이었는지.


닫고 덮고 봉인한 이후 모든 감정을 슬픔으로 귀결시켰다.


긴 시간이 지난 지금, 이제 그 감정을 천천히 돌아보려고 한다.

이미 희미해졌지만.


망각된 감정을 돌아보니 뿌연 연무로 덮여 있다. 아주 작은 방울 방울이 경쟁이라도 하듯 자신의 자리에서 습도를 뽐내며 더욱 우뚝 솟아있다.

연무를 걷어내고 밀도 높게 뒤섞인 방울방울에 담긴 감정을 하나씩 살펴보리라.



사진 by 그림책 [내 마음은 보물 상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