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페이지

다섯 지혜_서로의 '잘'에 대해서 던지다

by 무 한소

시험 마지막 날 딸아이는 설렘 에너지를 안고 습도 가득한 학교 복도에 엄마를 남겨둔 채 친구들과 워터파크로 향했다. 딸아이와 친구들은 설렘의 소리를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표출했다. 환호성답게 적당하게 높이기도 했으며 부분각색도 했다. 아이들이 2/3 정도가 빠져나간 교실은 오랫동안 앓고 있던 사랑니를 뺀 거처럼 시원섭섭했다. 남은 1/3 가량의 학생은 그곳에 있는 특별한 인연과 약속이라도 한 듯 견디고 있다는 기운을 남기고 특별한 에너지도 없이 시험에 임했다.


습도를 끌어안아서일까? 오늘의 발걸음이 더 버겁게 느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 걸음에 몸무게가 5배나 되는 누군가를 앞세워 걷는 기분이다. 남편과의 약속도 슬슬 부담으로 다가왔다. 홀가분해야 하는데. 현실은 무거운 많은 것을 등에 지고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몸을 덮고 있는 습도를 던져버리고 싶다. 마지막 종이 울리고 남아있던 학생들을 뒤로하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더위에 지친듯한 내 모습을 보더니 남편이 꽃을 사러 가자고 제안했다. 기분전환을 위해서 미니장미와 화분 몇 개를 내 손에 쥐어주고 남편은 의무를 다한 듯 일정이 정해진 자신의 자리로 옮겨갔다. 계획된 과정에 남겨진 나에게는 분갈이와 꽃꽂이를 해야만 한다는 책임과 의무가 있었다. 꽃꽂이를 하며 이 작업이 의무감이라기보다는 차차 즐거움으로 변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가시로 몸을 보호하고 있는 이 아이가 사랑스럽게만 느껴진다. 습도와 더위에 이렇게 아름답게 자라준 미니 장미가 대견하고 고마웠다.


그 속에서도 마음과 몸이 분리되어 몸은 훨씬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분갈이를 하며 집중해서 같은 자세를 취했는지 허리가 뻐근하게 느껴졌다. 그것과는 관계없다는 듯 배속에서는 여전히 허기가 느껴졌다. 오늘 갑자기 만난 미니 장미와 화분을 보듬어 주며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는 줄 몰랐다.


음식점 곳곳에서 브레이크 타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아빠를 대신해 기꺼이 이 시간 파트너가 되어준 아들이 지금은 실내로 들어갈 수 있는 (브레이크 타임이 없는) 곳을 선택해서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프랜차이즈 ㅇㅇ우동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메밀과 쫄면으로 혀와 배를 동시에 만족시켰고 부른 배를 생각해서 음식점에서 나와 다시 걷기로 했다. 사실은 걸어야 할 길보다 산책길에 함께 할 습도가 더 두렵지만 여름산책을 즐겨보려고 한다.


습도를 여름 액세서리처럼 생각하며. 막상 걷기 시작하니 대부분의 조건이 즐겁다. 그 순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너무나 그립다. 문득 북카페가 생각나는 것이 아닌가? 마감 시간이라 서둘러야 잠시 그 안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쉬어가기를 할 수 있다. 5시 30분. 여유를 부릴 시간은 부족했지만 그래도 북카페에 가고 싶었다. 그곳에서의 에너지가 생각났기 때문일까? 카페는 외부에서 봐도 손님이 꽤 많은 듯 보였다. 갈등할 시간조차 부족해서 그냥 들어갔다. 평소보다 어수선하다. 음료를 시키고 아들과 책을 보며 이것저것 카페 예찬을 했다. 윤동주 시인의 시집도 한 권 샀다. 토론에 대해 책방지기인 사장님께 여쭤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장님이 제안하신다. "오늘 북토크가 있는데 참여해 보세요. 책을 읽지 않아도 참여해서 나누면 됩니다." 갈등하다 부정적인 감정을 감추고 어렵게 참여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들은 먼저 귀가하면서 좋은 시간 보내고 오라며 미소 짓는다.




드디어 북토크가 시작되었다. 다섯 지혜 작가님과의 북토크. 작가님은 어느 날 자신을 찾고 열정적인 자신은 더 찾고 싶어서 퇴사를 했다. 퇴사 이후 자신이 잉여 인간으로 보이거나 느껴질까 무던히도 노력을 했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인스타그램에 1일 1 글을 놓치지 않고 업로드했다. 그게 자신을 보이고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님은 오랫동안 독립출판을 해오셨다. 12권의 책을 독립 출판으로 내셨다. 그 인내와 노력, 대범함... 여러 가지가 나에게 부족한 부분인 듯 마음을 찌른다. 흐린 하늘 가운데 간만의 담백한 햇살이 마음을 소심하게 채찍질한다. 작가님의 스토리를 듣는 순간부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여전한 맘으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무기력했는지 잘 알고 있기에.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작가님은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리에 있는 것 같다.


북 토크 주제는 '잘'이었다. 나는 뭘 '잘' 하고 있었는가? 내가 가장 잘한 '잘'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가장 '잘'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작가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가 아닌 소통을 위해서 다른 분들에게 문제를 던졌다. 나에게 질문은 온몸으로 왔다. 나의 '잘'에 대해 생각해 봤다. 문득, 지금까지 내가 삶을 살아오며 가장 어색한 순간은 바로 '잘'과 함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정욕구에 목말랐던 나는 너무나 잘하고 싶고 잘하려고 했던 순간이 가장 어색했던 찰나라는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잘'은 조금 부정적이다. 그래서 너무나 '잘' 하려고 애썼던 어색한 순간은 잊히기를. 덧붙여 오늘 가장 잘한 것은 지금 이 순간, 할까 말까 갈등했을 때 북토크에 참여한 지금의 순간이다. 비록 즉흥적이지만 숨거나 미루지 않은 오늘 북토크에 참여한 지금의 선택이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즉흥적이지만 자연스럽게 한 선택!!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작가님의 분위기와 색깔 덕분이었을까. 모두 색은 곱고 순수하며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책과 친했고 자신을 정리하는데 익숙한 분들이었다. 비슷한 분들이었기에 그곳에 함께 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뻤다. 책과 마음으로 뭉칠 수 있는 그들의 마음이. 모두의 얼굴에 마음 맑음이라고 쓰인 듯했다. 소리는 귀를 유혹하기 적당했으며 사연은 마음을 움직이기 충분했다. 북토크가 이토록 자유로울 수 있다니. 처음 겪는 경험이다. 소수의 인원이 소수의 서로에게 눈빛에 소리에 사연에 유혹당하는 순간이다.


책방 사장님, 책방지기님의 노력으로 결성된 북토크!! 감사하다. 나를 그곳에 데려다준 오늘, 그 시간으로 끌어준 책방지기님, 그곳으로 밀어준 아들과 습도 높은 오늘이라 가능했던 에너지까지 모두 감사하다.


떨림과 두려움을 작가님은 노래로 이겨내며 진심을 전했다. 묘하게 작가님의 글, 목소리, 옥상달빛의 노랫말, 하모니가 닮았다. 그래서인지 내향적이지만 노래를 할 때는 성격이 잊힐 만큼 순간에 빠져있었다. 토크라는 나눔과 소통! 작가님이 부른 옥상달빛의 노래 '세레머니(ceremony)'를 다시 떠올리며 작가님의 소리를 기억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