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림이가 두통으로 신음한다. 윤이가 복통으로 입술을 깨물며 참는다. 성민이는 얼마 전부터 계속되는 잔기침으로 괴롭다. 가민이는 다크서클의 휑한 눈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준영이는 반복해서 혼자 중얼거린다. 빙이 되어 조정당하는 힘없는 인간처럼. 대영이는 지금 갇힌 이 공간과 자신은 상관없다는 듯 알 수 없는 콧노래로 마음을 대신한 신호 음을 보낸다. 승우, 빈이, 윤아, 하은, 래아... 저마다 각자의 방법으로 신호를 보낸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다. 어쩌면 슬픈 날이기도 하다. 오늘은... 특별히 슬픈 날이기도 하지만 다시 만나지 못할 소중한 날이다. 그 시간에 행복을 누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오래전 경험했던 뭉친 기억을 조심해서 꺼내본다. 시험 감독의 명목으로 강한 책임감과 봉사를 하겠다는 마음을 안고 딸아이 학교를 찾았다. 시험감독을 하며 감독관의 자리에 앉아 3개 교실을 주의 깊게 바라본다. 책임감이 앞선다. 책임을 다해야 할 시선의 반경이 생각보다 넓다. 내 시선에서 프레임 안 그곳이 분주해진다. 예비종이 울리고 답안지를 먼저 나눠준다. 다시 한번 종이 울린다. 이번에는 시험지를 나눠주신다.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크고 작은 숨소리가 경쟁하듯 꿈틀대며 거칠게 올라온다. 숨소리가 습도와 뭉쳐 더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마침내 시험이 시작되었다. 교실 밖 복도에서 프레임을 통해 시선을 고정시켜 바라본 교실은 탁탁 슥슥 써 내려가는 연필의 역할을 다하는 소리,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쉬어가며 시험지 넘기는 소리, 누군가의 호흡은 규칙적이며 다른 누군가는 한숨 가득한 숨소리가 호흡을 앞서 나왔다. 곳곳에 던진 긴 호흡과 함께 퍼지는 신음인지 신호음인지.
다시 침묵으로 교실을 시선에 두고 숨죽여 기다린다. 이제는 그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다. 숨 가다듬는 호흡과 보이지 않은 시선만 느껴질 뿐이다. 초점 없는 희미한 눈빛 사이에도 숨 막히는 호흡이 느껴진다. 기다렸다. 그것이 본색을 드러낼 때까지 오히려 내가 숨죽였다. 조용히 교실을 주시하며 기다린다. 긴장감 가득한 교실과 대비되는 이곳, 평화롭다 못해 텅 빈 복도 한 곳에 감독관으로 자리 잡은 나는 호흡을 참아가며 기다렸다. 그곳에서 결국 견디지 못해 교실 문을 아주 소심하게 열고 나올 아이를 기다린다. 마지막 교실에서 학생 한 명이 천천히 나왔다. 가운데 교실문이 다시 열리고 한 명이 나온다. 생리적 현상으로 당연하면서도 당당히 프레임 밖 세상으로 나올 아이를 기다렸다. 사연은 다양하다. 긴장감으로, 습관으로, 건강상의 이유로. 다시 프레임 밖 세상으로 나온 아이, 누군가 교실문을 열고 나오게 만든 보이지 않은 그 형체를 기다린다.
드디어 그것이 형체를 드러낸다. 30명 남짓 아이들이 드러내는 호흡과 에너지 통증 등 벽면으로 미루고 감추었던 소리 없는 외침이었다. 백색 소음으로 변해버린 그 소리의 정체가 궁금했고 아우성에 마음이 아프다. 과정이라고. 변화의 과정이니 참고 견디라고 하기엔 백색 소음이 넘친다. 곳곳에 뽁뽁이가 터트려지길 기다리듯 터질듯한 소음이 잔뜩 웅크리고 대기하고 있다. 교실과 복도를 사이에 둔 벽에 갇힌 소음이 웅성웅성 길게 소리를 낸다. 아우성친다. 벽에 갇혀 있을 때 고통은 더 깊은 색과 질량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모른 체 덮으려 했는데 여기저기 뽁뽁이 방울이 터지며 내게만 소리를 낸다.
문득, 다자이 오사무가 말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사랑받는 불안, 통증은 상처의 살아 있는 감정" 복도 한 곳에 자리한 감독관으로서 느껴야 할 감정이라기보다는 여러 감정을 벽면에 숨겨두었던 우리 아이들이 겪는 통증이었다. 지금은 백색소음이 되어 갇힌. 벽면 구멍을 뚫고 나온 그것의 실체가 상처의 살아있는 감정이라 생각하니 깊은 위안이 된다.
다시 종이 울린다. 끝나기 전 예비종이다. 좀 전과는 다른 아우성이 여전히 내 시선을 불안하게 하고 긴박감도 있다. 마지막 종이 울린다. 이제는 해방감으로 깊숙이 빠져든다. 벽면에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는 백색소음은 잠시 보류한다. 벽면을 뚫고 올라오지도 영원히 그곳에 갇혀 있지도 못한 채로. 경계에서 혼란을 틈타 꿈틀대고 있다.
해방감에 젖은 아이들의 소리가 나를 낯선 곳에 세워둔다. 몇 시간 전 아이들 감정에 동조한 나를 이방인으로 취급하듯 내 무거운 감정만이 몇 발짝, 어쩌면 더 많이 밀려났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낯선 자유와 해방감으로.
1교시가 끝나고 이제 곧 하교할 딸아이를 만나러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시험으로 스트레스가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너무 설렜어!" 혹시나 시험이 너무 쉬워서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만큼 설렜다는 건지 생각하던 찰나 아이의 대답은 그야말로 반전이었다. 시험 이후 친구들과 워터 파크를 다녀오기로 한 약속이 있었다. 바로 오늘, 지금이다! 코로나를 겪으며 생활에서 많은 걸 미루고 절제했던 까닭에 오늘의 계획은 딸아이를 충분히 설레게 했다.
이해와 각자 자리에서의 입장은 전혀 다른 꿈을 낳는다. 모녀 이몽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