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_에필로그

말의 본질은 뱉어내는 것일까, 변함일까.

by 무 한소

말의 본질은 뱉어내는 것일까.

'씀'에 있을까.


'사전이란 무엇인가'

책에서는 사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비범한 사람이 평범하지 않은 생활을 해서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 사전이다_이노우애 히사시 <책의 미쿠라조사>


책은 처음부터 범상치 않았다. 딱딱한 듯 깔끔한 표지가 단정하다. 간결한 표지는 초록색으로 글이 새겨져 있다.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얼핏 사전과 같은 느낌의 표지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너무나 반듯한 표지는 수애가 평소 선호하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깔끔한 디자인은 수애의 눈과 손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만들었다. 책에 지나치게 빠지기 이전에 어쩌면 너무나 반듯한 표지가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시점에 이 책이 토닥토닥 토론에 오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수애에게 이번 도서는 조금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수애는 자신의 삶을 크게 사과 자르듯 그어서 나눌 수는 없지만 그 흔적을 좇다 보면 '말'의 힘이 얼마나 큰지 이루 말할 수 없다. '말'에 대해서. '말과 그 씀'에 따라 우리는 자신을 지킬 수도 잃을 수도 있다. 타자와 먼 여정의 동행길에 오를 수도 있고 홀로 걸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려있으며 그 시선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서 시작된다. 토닥토닥 토론 지금 수애가 불안해하는 것처럼 위기에 처해있다. 곧 붕괴될 위기. 서로의 말에 상처받고 상처를 곱씹고 곱씹으며 상대의 태도에까지 마음을 미루어 탓해 본다. 단단한 줄로 착각하고 있었던 관계와 서로에 대한 신뢰는 느슨해진 지 오래다. 모임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고 염증으로 곪아 있었다.


책에서 '세상'에 대해 사전적 의미를 나타내는 말을 신메이카이 국어사전과 산세이도 국어사전은 서로 다르게 풀어냈다. 사전적 의미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수애는 사전에서도 다르게 풀어내는 말이 인간관계에서는 그 의미가 중요한 만큼 당연하게 다르다고 자연스럽게 인지하고 있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 미워하는 사람. 성공한 사람과 실의에 빠지고 불우한 사람이 구조상 동거하고, 항상 모순에 차 있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는 사회.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세계가 확장되는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관련을 맺으며 살고 있는 곳"

"세상 사람들 사이. 또한 사회의 인간관계"_[산세이도 국어사전]


서로 색깔도 추구하고자 하는 맥락도 달랐던 두 사전과 두 사람. 야마다 선생과 겐보 선생.


결국 두 분의 색깔과 딱 맞는 사전이 탄생했다.


겐보와 야마다 선생은 '말'을 아끼고 언어를 사랑하는 열정은 같았다. 그들은 말을 아끼고 사랑했다. 언어에 대한 신념과 열정적으로 시작하는 마음은 같았다. 그러나 이성으로 좀 더 객관화되었는지 감성적이며 강한 개성이 드러나는 주관적 설명이 들어가 있는가에 따라서 두 사람의 색깔은 명확하고 점점 분명해졌다. [산세이도 국어사전]과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은 그렇게 탄생했다. 거기에는 두 사람 사이의 아픈 역사도 포함되어 있다.


사전을 만들었던 두 사람, '말'에 대한 신념이 누구보다 강했던 두 사람은 '말'이 얼마나 귀하고 그 '씀'을 잘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에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리라.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 사이가 틀어진 계기도 토닥토닥 토론과 같이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단지, 그들은 좋은 협력자일 뿐이었을까.


수애는 책에서 언급한 '이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것은 수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름'은 과연 껍데기를 대신한 것뿐일까. 명성만을 빌려서 수도 없이 많은 자신으로 세상에 나온 것일까. 수많은 자신의 페르소나를 대신해 '이름'으로 대체된 책임감이 무겁다. 이후 이름은 나를, 우리를 대신한다. 무서운 진실일지도 모른다. 마침내 이름은 인품에 붙어 씀을 더 잘해야 하는 관계에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수애는 생각에 잠겼다. <독서 토론 동아리>를 유지하려면. 감정, 태도, 존중 다음으로 열정과 관심 그리고 정보까지 모두 갖춰야만 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유형의 공간, 무형의 모임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배려와 태도를 가장 선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배려와 태도에서 가장 앞선 것은 '말'이라 생각한다.


말의 본질은 뱉어내는데 그 의의가 있다. 어떻게 씀을 하느냐에 따라 말의 질은 결정된다. 말은 주최자의 능력 인성 습관 등으로 세상과 처음 만난다.

토론 모임이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존중의 태도인 '말 씀'에 원인이 있다고 던졌다. 그 시작점은 *톡이라는 온라인 단톡에 있었다. 의도된 상처, 의도되지 않은 상처 모두에 '주기'라는 어미가 붙으면 가해와 피해로 나누어 구분 지을 수 있다. 책을 읽고 자신을 돌아보는 노력을 하는 수애와 같은 보편적인 사람은, 누구도 상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조금 더 단단해져야 할까. 말은 사용자에 따라 뱉어내는 순간 배려와 사랑을 포함한 가치를 드러내기도 하고 다시 독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씀'을 잘해야 한다.


토닥토닥 토론은 동네 동아리 모임이며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이번의 위기가 자발적인 모임을 운영해 나가고 유지해 나갈 때 무엇이 중요한지 보여주는 실례이며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여러 모임의 주최자는 아니었지만 수애는 소속감에 마음을 두었고 그것은 책임으로 이어져왔다. 여러 동아리 모임이 결성되고 해체되기를 반복하며 그 습성은 당연하다고 여겨왔다. 모임의 특성상 처음부터 1~2년이 지나면 결성 당시의 취지가 마무리되고 끝나는 모임도 있다. 그런 모임은 자연스럽게 해체되기도 한다. 그러나, 독서 토론 모임은 처음부터 어떤 프로젝트로 결성된 모임이 아니기에 오래 지속되기를 바랐다. 수애의 소소한 바람이긴 하지만. 2~3년이 가장 고비인 듯했다. 서로를 잘 알기 시작하고 모임에 익숙해진 반면 무기력한 상태의 멤버들도 생기고 관계에서 다시 염증을 느끼는 단계이기도 했다. 또다시 열정으로 모임을 흔들어 보이지만 역반응이 나타났다.


동아리는 이렇게 결성되고 해체되어 왔다. 그리고 다시 해체될 위기에 놓여있다. 하지만, 이번에 수애는 잡고 싶다. 붕괴될 위기를 극복하고 싶은데 사람의 마음과 그렇게 시작된 말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녀는 어리석게도 이전엔 몰랐었다. 그것이 얼마만큼 큰지. 무엇보다 모임을 유지하는 데는 '마음 씀'과 '말씀'으로 이루어진 배려와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사전을 편찬한 겐보와 야마다 두 선생님도 결국 해결하지 못한 상처로 남아버린 말. 수애는 그 결말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들에게 삶과 너무나 닮은 '말'과의 관계... 수애는 그 의미를 배웠다. 오늘도 말씀에 대해 생각하며 말의 존귀함은 나의 마음과 태도에 달렸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뇐다. 해체될 모임이 곧 안정을 찾을 수 있길 고대해 본다.


동아리 모임을 유지하며 중요한 건 좋은 책, 수준 높은 정보나 지식 등 정책적인 커리큘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물론, 그 대부분은 연대를 움직이게 하고 모임을 둘러싼 동력은 될 수 있다. 너무나 닮아 있는 '말과 삶' 그리고 말로 연결된 관계의 삶을 다시 배운다. 작은 지역 동아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