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말뚝은 우리의 신념이다

엄마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by 무 한소

삶에서 수애가 가치를 두는 큰 것은 신념이다. 그 마음은 삶의 긴 여정에서도 여전하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절대 놓칠 수 없었던 청새치처럼 수애를 지키는 오늘의 신념은 비움과 채움을 균형 있게 하는 것이다. 순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행복을 알아차리는 것. 그것은 균형에서 비롯된다.

토론 모임에서 박완서 작가의 [엄마의 말뚝]은 여러 번 추천 도서로 올랐었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던 인내 덕분이었을까. 작가의 까칠하고 예민하지만 완벽하고 세련된 서사와 문체를 다시 만났다. 무심한 듯 덤덤히 뱉어내지만 예민한 자신만의 색깔이 분명한 작가를 존경했었다. 그 매력에 흠뻑 빠져있었고 줄곧 작가의 작품 주변을 맴돌았다. 수애는 행복했다. 그녀가 대학에 들어가고 새내기였을 때 작가님의 책을 접했다. 그런데, 그때는 작가의 글이 그녀의 마음을 울리거나 그 서사와 필력에 완전히 매료되지는 못했다. 작가의 생각과 마음을 담고 필력까지 더해진 글을 받아들이기는 너무나 갇힌, 그녀의 좁고 닫힌 경험으로 '부족함'이라는 것이 있었다. 토론 도서로 [엄마의 말뚝]이 결정된 이후 수애뿐만이 아니라 그녀들은 다시 작가님의 책을 여러 권 읽고 읽으며 그분이 살았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더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엄마의 말뚝]을 읽은 후 '엄마'라는 존재와 의미에 대해 집중적으로 생각해 본다. 수애는 영원히 되풀이되고 대물림되는 사랑을 생각하며 모성애라는 의무로 다가온 그 사랑을 나누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선미는 작가의 대부분 작품들이 자전적 내용이라 했다. 그래서 그 작품들은 서로 연결되어 이어져 있으며 감정의 결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수애가 작가를 더 친근하게 느끼는 건 작가의 작품 중 그림 동화를 만나고부터였다. [7년 동안의 잠], [엄마아빠 기다리신다], [손] 등 여러 그림 동화와 단편은 대부분 일상에서의 관찰이 기본이며, 관심으로 시작해서 풀어낸 문체까지 글을 쓰는 작가로서는 타고난 재능과 노력 모두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더하여 그분이 쓰신 수많은 단편들 중에서도 수애는 삶이 그대로 녹아있는 우리 주변의 평범해 보이는듯한 이야기를 더 이상 평범하지 않게 쓴 작가의 글을 좋아했다. 예리하고 날카로운 감정을 훔쳐 '내 것'으로 만든 작가가 더없이 존경스러웠다. 그런 작가의 작품을 토론에서 나누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들의 가슴은 벅찼다.


[엄마의 말뚝]에 등장하는 화자의 엄마는 극성맞은 우리의 엄마라고 수애는 기억했다. 그녀들은 엄마, 여자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이른 나이에 죽고 이제 그녀의 유일한 희망인 자식을 제대로 키우리라는 일념만이 엄마를 점점 꼿꼿하게 만들었다. [엄마의 말뚝 1]에서는 현저동 꼭대기에 존재하는 그 집이 엄마에게 얼마나 큰 의미이며 그들을 지켜주는 가치며 말뚝이었다고 수애는 되뇐다. 집은 역사적으로 어느 지점에 있든 엄마가 가치를 두며 신념이라고 생각하는 '시작'이었다. [엄마의 말뚝 2]에서 엄마의 정신적 지주 오빠가 무너진 것은 엄마를 다시 한번 꺾이게 했다며 수애는 눈물은 보인다. 무너진 엄마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까? 수애는 무겁고 긴 호흡을 했다. 자신의 위치는 엄마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엄마, 그녀 앞에서는 수애도 영락없는 딸의 위치에 있다. 수애의 엄마도 작가의 어머니와는 조금 다른 결이지만 끊임없이 그녀를 지켜왔다. 수애에게 엄마만의 사랑을 준비해 왔다. 엄마만의 사랑을 베풀었다. 엄마만의 사랑의 방식은 지금도 계속된다. 엄마께 당신부터 챙기라고, 당신만 챙기면 된다고 생각했던 말을 목구멍까지 끌어올렸다 터트리기 직전 뭔가가 막아 선 것처럼 막혀버렸다. 결국 그 말은 뱉어내지 못했고 수애 가슴에 자연스럽게 소멸해 버렸다.




수애에게 엄마와는 조금 다른 관조적, 적당한 거리에서 다른 색깔의 사랑을 주는 작가님이 한분 계신다. 자극과 격려 다른 의미의 날카로운 토닥임, 때론 적당히 거리를 두고 마음으로 걱정해 주시는 엄마와는 다른 방식의 사랑을 주셨다. 기간을 두고 조금 자주, 때로는 그 텀을 좀 더 멀리 하며 연락을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과정에 있는 자신의 노력을 긍정적인 결과가 아니면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단정 짓고 잠시 인위적으로 연락을 차단했었다. 수애 자신이 만족스러울 때까지. 그게 옳다고 생각하고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작가님께 떨리는 맘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당신의 자리에서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셨다. 덧붙여 며칠 전부터 갑자기 수애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고 하셨다. 그래서 감사한 맘으로 통화를 이어가려는데 작가님이 말씀하셨다. "나 지금 장례식장이에요." 도대체 수애는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잠시 생각에 빠졌다.


도서관을 지나쳐 근처 공원으로 먼저 올랐다. 자신의 이기적인 감정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어디까지가 사랑이며 어떤 마음이 공감의 감정인지. 떳떳하고 싶어서, 수애 자신의 마음이 당당하고 합리화의 과정 속에 편하고 싶어서 연락을 차단했다. 이후 다시 자신의 판단 속에 적당히 시간이 지나서 연락을 했다. 그 시간 동안 그녀는 홀로 상처와 상실감을 견뎌내고 있었다. 작가님은 시어머님의 부고를 알렸다. 그리고 도리어 수애를 위로했다. 요양원에서 긴 시간 앓았고 연세가 있으셔서 장례식장 분위기가 가라앉거나 우울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바로 발인이라 오지 않을 것을 당부하셨다. 그분의 말씀이 진심이라고 믿고 싶은 것도 수애는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최근에 주기적으로 찾아온 죽음에 관하여 돌아본다. 외삼촌, 시 외삼촌께서, 엄마의 건강, 형님 친정어머님, 작가님의 어머님 등 그들의 죽음을 지나온 자신의 태도에 대해 들여다본다. 감정적 문제가 느껴질 만큼 무덤덤했다. 견디지 못할 만큼 감정분리를 못한 것이 수애였다. 그런데. 감정적인 문제를 앓고 있는 것처럼 감정 기복이 없다. 관조적 자세로 멀리 떨어져서 큰 눈을 깜박이며 바라볼 뿐이다. 공원을 한 바퀴, 두 바퀴... 도는 동안 반복해서 묻는다.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자신의 귀에까지 들렸다. 멈춰 섰더니 땀방울이 얼굴 이마에서 목을 타고 몸으로 흘러내렸다. 멈추고서야 비로소 온몸이 땀에 젖었다는 것을 알았.


도서관에 발을 딛기 전 답을 찾고 싶었다. 자신의 귀에서 맴도는 숨소리가 수애의 이름을 외쳐대는 거 같았다. 수애!! 엄마가 참 많이도 불러줬던 이름이다. 수애는 엄마의 이름을 소리 내어 조용히 불러본다. 경옥! 이번엔 조금 더 큰소리로 불렀다.

한자 의미조차 의문 투성이인 엄마의 이름, 언제 한번 그 이름을 불렀던 적이 있었던가. 그 작명은 누가 했든 간에 이름을 부르는 타자에게 이름의 의미를 맡겼던 건 아니었을까? 부르는 사람, 마음, 행위, 감정 소리만으로도 불리는 이름은 의미가 있다.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의 이름을 불러주어 위무를 해 준 것처럼. 수애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답을 찾았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수애의 신념이었다.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서니 멤버들이 모두 고개를 돌렸다. 수애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단상과 별점에 대해 나누고 있었다고 했다. 수애가 답을 찾는 사이 시간이 흘러 벌써 모임 시작 시간이 조금 지났다. 다행히도 처음 책을 추천한 정숙이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정숙은 작가의 생활 속 관찰과 그것이 작품으로 이어져 글로 표현될 때의 작가의 표현력, 필력에 감탄했다. 표현력에 경이를 표하며 찬사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덧붙여 작품별 말뚝에 대해 멤버들의 생각을 묻는다.


말뚝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자신의 삶을 긍정적 방향으로 고정시키고 돕지만 그것은 다시 자신을 억압하기도 한다. 비교와 갇힘에서. 우리는 각자 그렇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단호히 말했다. 앞으로 다른 작가의 책을 읽는 것에 대해 걱정이 된다고. 혹시, 너무 유치하거나 재미없게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녀는 작가의 표현과 관찰력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영화는 [엄마의 말뚝]은 너무나 아프고 가슴이 먹먹하지만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책을 덮으며 오랫동안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으며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고 이전 토론과는 다른 모습으로 여운을 전했다.


선미는 [엄마의 말뚝 2]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지는 심정을 드러냈다. 곳곳의 작가의 표현에서 경이로움이 느껴질 만큼 작가의 날카롭고 예리한 문학적 표현에 감탄했다. 그 단상을 들으며 모두가 한마음인 듯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나머지 멤버들 가운데 연지는 자신의 어머니를 얘기했다. 작가의 어머니와 너무나 닮았다고. 작가의 어머니만큼 극성은 아니지만 많은 것을 해주려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고 했다. 수애는 박완서 작가는 여류작가 가운데 독보적으로 글쓰기에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있고 게다가 노력을 함께하니 독보적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그녀를 그토록 까탈스럽고 예민하게 만든 다른 한 가지는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많은 다채로운 경험.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경험도 수애를 설득하지 못했다.


삶은 수애나 연지 정숙 선미 영화와 잠시 모임을 떠나 있는 준희에게도 묻는다. 어떤 경험이 그녀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나락으로 가는 긴 터널에 갇힌 체 빠져나가지 못한 그녀들을 충분히 설득했고 응원을 했었는지. 그 설득은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삶에도 변함없는 말뚝, 신념이 될 수 있는지.




잠시 헤어져 있는 준희는 수애와 주말 오전 공원 산책을 하자며 연락을 해왔다. 일요일 오전 습도를 더해주듯 비를 쏟아낼 것만 같은 하늘이 잔뜩 찌푸리고 있다. 공기가 습도에 점령되었는지 맑은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수애는 가까운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서 공원을 향해 걸었다. 멤버들 사이 조금의 문제가 있었다. 어쩌면 동아리 모임에서는 그것은 수애의 생각만큼 작은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성향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제 것으로 자리를 잡기도 한다. 준희의 성향은 언제부터 그렇게 강직해진 걸까? 책을 읽고 여러 독서활동을 하며 누구보다 토론에 적극적이고 행위를 즐겼다. 어쩌면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생각과 처신이 항상 정답이라고 믿고 걸었을까. 수애는 문득 자신에게 준희는 어땠는지 생각에 잠겼다. 또 수애 자신은 어땠는지. 고집스럽고 집요했는지 때론, 독단적이었는지 곰곰이 짚어본다. 천천히. 아니었다는 생각에 고개를 젓는다. 그럼, 모임의 일원으로서의 준희는 어땠는가. 그것 역시도 애정이 좀 과하게 들어간 경우는 있으나 모임을 모임에 속한 멤버와 이곳에서 하는 활동을 열정으로 했으며 사랑했다. 멤버들은 그녀의 표현과 자신의 생각으로 결론을 짓는 준희의, 수애의, 서로의 태도가 불편했던 걸까. 자아 성찰이라는 독서의 동기화를 생각한다면 토론의 그녀들이 하고 있는 독서는 뭔가 잘못된 건 아닌지 하고 영화가 조심스럽게 던진 적이 있다.


수애는 꼿꼿한 준희가 휘어지지 않고 꺾이게 될까 봐 염려스럽다. 어쨌든 오늘은 그녀와 산책을 하며 신념에 대해 나눌 예정이다. 그녀와 의 서로의 말뚝에 대해 나누며 얘기해 볼 생각이다. 대화 속에 준희가 천천히 치유되길 간절히 바란다. 준희는 새로운 활동으로 자신을 놔주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토대로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리라.


먼 길을 돌아 변할 수 있는 신념이지만 준희가 다시 이곳으로 오길 수애는 바랐다. 우리 모두 자신의 감정이 어디까지가 진실이며 진심인지 분명하지 않다. 준희가 겪은 몇 달간의 일을 돌이켜보며 수애 자신이 겪은 거 이상으로 감정이 그곳에 매몰되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감정도 훨훨 날아 자신이 참이라고 믿는 사실을 돌아본다. 조금 느리게 인정하기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수애는 토론 모임을 더 객관적인 자리까지 나와 거리를 두고 지켜본다. 그곳에는 화자의 엄마가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말뚝이 도서관에서 그녀들의 신념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변했지만 신념은 신념이다. 삶의 돌아가는 여정은 엄마의 신념, 말뚝과도 같았다. 수애의 자리에서 그녀들은 서로에게 위안이 될 수도 있지만 각자 자신을 돌아보며 모든 순간에 놓인 자아를 찾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