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하고 잔잔한 할머니의 언어 그리고 아득히 먼 옛날부터 쌓인 내면의 정서에서 위안을 받는다. 수애에게 할머니는... 작가의 기억에 존재하는 할머니처럼 미화되어 존재하지는 않는다. 수애의 엄마라면 모를까. 그녀의 엄마가 언니와 자신의 기억 속에 다르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느 날 인지하며 사람의 기억이 왜곡되는 것이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억의 왜곡. 잊고 싶었던, 지우고 싶었던 기억. 가끔 아름답게 포장하고 꾸미기도 한다. 수애도 엄마를, 엄마의 삶에 들어가 있는 그녀와의 추억과 그때의 기억을. 왜곡했다.
수애에게는 할머니가 두 분 계셨다. 원래 세분이셨지만 한 분은 엄마가 국민학교 시절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에도 편찮으셔서 오랫동안 자리에 누워계셨다고 한다. 엄마의 아프고 고단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은 수애의 가슴을 먹먹히 잡아 두었다. 한 분의 엄마와 급작스러운 이별을 했다. 뭘 잘 몰랐던 나이에. 이후 갑자기 다가온 새로운 인연의 끈을 지금까지 잘 유지하고 있는 다른 한 분의 엄마. 세상을 알기에는 너무나 어렸던 엄마는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시간도 없이 가장이 되었다. 그 나이에 맞게 이기적인 오빠를 대신해서.
수애가 아주 어렸을 때 잠깐잠깐 마주쳤던 머리에는 쪽을 지고 항상 한복이 아니지만 한복 같은 옷을 입고 계셨던 깡마른 분이 친할머니셨다. 어쩌다 마주한 친할머니는 수애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할머니와 한참을 만나지 못하고 마주친 어느 여름 할머니께선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냄새로 이루어진 할머니와의 추억 대부분이 사라졌다. 할머니가 머물렀던 그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온갖 잡냄새가 코를 찔렀다. 신기한 건 복합적으로 안 좋은 냄새가 섞여있으나 방은 어지럽혀 있지 않고 정갈했다. 깔끔한 느낌과는 좀 다른. 친할머니께서는 그 시간의 정체된 모습으로 몇 년을 더 보내셨다. 이후 어른들을 통해 할머니의 부고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시절 죽음은 수애의 사고를 크게 흔들어 놓았다. 그녀를 혼란에 빠지게 했다. 물리적 죽음을 머리로 이해하면서도 정작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외할머니께선 지금도 건재하신다. 목소리가 크고 호탕하게 웃으셨던 할머니가 어린 시절 수애의 시선에서는 무섭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다.사실 아주 무서웠다. 목소리에 늘 압도당했고 위축되었다.지금은 자존심만큼 할머니의 허리는 굽었고 목소리는 자존감 이상으로 데시벨이 줄었다.세월에 그분의 에너지는 누그러졌지만 누구보다 친절하고 연세보다 건강함이 넘친다.
작가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수애의 기억 속 할머니보다 훨씬 부드럽고 따뜻하고 앞선 어른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셨다. 언어대신 조용히 침묵으로. 어쩌면 작가의 할머니도 우리의 할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작가의 기억의 왜곡으로 아름답게 자리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작가가 부럽기까지 하다. 어쨌든 작가의 할머니는 간결한 언어로 공감과 위안을 해 주셨다. 작가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할머니의 언어는 결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그 힘을 발휘했다.
수애에게도 왜곡된 기억으로 아름답게 미화된 엄마가 존재한다. 엄마는 아름다웠다. 그녀 기억 속의 엄마는 데미안의 에바부인보다 더 평온한 표정으로 자신을 안아주기도 했으며 아가페적 사랑의 표상 이상으로 그 사랑을 지켜왔다. 수애 기억 속 엄마는 더 아름다웠다. 언니의 기억 속 엄마는 목소리가 컸고 부드럽거나 상냥한 표현을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추위가 유독 몸서리치던 어느 날 엄마는 수애에게 말했다. "살아보니 그렇더라. 사람은 결국 죽는단다. 대단한 사람도 아름다운 사람도 모두 죽음을 맞이하지. 죽음으로 가는 길이 다를 뿐이지 종착지가 같은 거처럼 사는 모습 또한 다 비슷하더라. 그래서 엄마는 내 딸이 몸은 건강하고 맘은 더 행복했으면 좋겠구나."긴 세월의 경험으로 진심을 다해 토해내듯 뱉어낸 엄마의 말은 이제 엄마의 가치이자 삶의 의미가 되어버렸다.
작가가 할머니와 함께 지냈던 20년은 할머니와 같은 공간 다른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의 부고 이후 그분은 작가에게서 잠시 잊혔다. 다시 작가가 할머니를 찾은 어느 날 작가는 심하게 아팠고 위로가 필요했다. 그녀는 받은 교육도,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모든 것이 풍요로웠고 넘쳤다. 삶 대부분이 탄탄하고 단단했었다. 자신감은 넘쳤고 넘친 자신감만큼 삶의 목표나 의미가 분명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녀가 꿀짱아를 낳고 작가로 자리를 점점 단단히 해나가고 있을 때, 작가는 삶에 의미를 둘 수 없을 만큼 아팠다. 마침내 자신을 돌아보고 할머니의 언어가 들렸다. 힘든 순간 환청처럼 작가를 찾아왔다. 힘이 되는 할머니의 언어 '워쩌' 나 '뒤얏어'가 들렸다. 할머니의 철학, 할머니 언어에 담긴 삶의 가치. 할머니는 누군가 말하지 않아도 공감의 언어를 해왔었다. 할머니는 힘든 작가에게 또 수애에게 정서적 지지가 되어주고 버티게 했다. 우리가 살아가며 자신이 아이에게 또 남편이나 주변인들에게 가장 하기 힘든 말은 '몰라!' '도와줘!' 등이다. 이 두 단어의 공통점은 '인정하기!라고 생각한다.모르거나 힘들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자신을 도와달라고 곪아터진 내면을 보여야 했다. 작가도 수애도.
작가의 할머니에게서 우리 모두 배우고 실천해야 할 부분은 바로 언어에 있어서 미니멀 리스트였다는 점이다. 최소한의 감정으로 적절한 단어를 쓰며 마음을 표현하셨다. 할머니는 언어를 지독히도 아끼셨다. 작가는 풍성하고 화려한 언어의 부작용에 대해 언급하고 부모의 노력가운데 언어를 아끼는 부분을 한가운데 세웠다.
엄마를 생각하며 수애는 자신은 어떤 부모인지 다시 돌아본다. 수애 자신은 아이에게 엄마이고 선생님이다. 하지만 그 외에는 할머니의 마음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단단히 마음먹는다. 작가가 다짐했던 거처럼. 빈틈을 보이고 실패를 보이는 아이에게 '장하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하며 아픈 아이에게 '저런', '어쩌니'와 같이 간략하지만 마음을 이해하는 언어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작가의 시선으로 할머니를 돌아보니 그분은 다른 가족들이 기억하는 부분과 조금 다르겠지만 아름다우셨던 거 같다. 마음과 생각이. 손녀와 주변을 지키려는 진득한 사랑은 최소한의 단어로 작가를 평온하게 만들었으며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게, 성공했을 때 보다 더한 힘으로 장하다고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다. 간결하고 명료하게. 이제 내가 실천해야 할 때다.
요즘 읽고 나눔을 하는 책들의 시작, 출발은 '말'이다. 귓가에서 충고하고 다시 흐른다. 말에서 시작하고 다양한 말이 자신을 타고 오른다. 말에는 마음과 태도가 함께한다. 그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경청의 자세는 귀 기울여 듣는다는 거처럼 경청은 이해하려는 마음과 집중하는 태도에 달려있다. 경청 역시 '말'에서 시작한다. 여러 책을 통해서 말에 대해 읽고 생각하며 나눔을 했다. 말의 변성과 말의 진리에 대해 고민하며 마음과 태도에 집중했다. 내 성대를 타고 나오는 나의 '말' 이제 곧 모두의 것이 될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짚어본다.
작가의 할머니가 전한 거품을 뺀 언어. 간결하고 명료함 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마음과 태도를 읽고 나눌 수 있다. 그러한 언어를 통해 말을 주고받는 지금 순간이 충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