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들]_ 그들의 민낯이 드러났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시작하다

by 무 한소

그들의 민낯을 보았다. 그들이 속한 세상의 민낯을 마주했다. 단지, 그들이 시간적으로 환경적으로 경험을 하지 못했을 만큼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이해와 설득이 되어야 하는 걸까? 강요된 이해와 설득은 수애의 마음을 더 불편하게 했다. 수애 내면의 부정적인 마음을 멈추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이의 일이었기에. 그들에게는 무엇이 그토록 중요할까? 말의 속성을 알고 있다. 대부분 말에 대해, 말을 대신한 sns나 인터넷 게시글 또는 말을 대신한 행동까지도 크게 말이라는 것에 귀속되어 있다. 말은 뱉어내는 순간 내 것이 아니기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 자신을 통해 세상으로 나온 말은 말을 한 자, 듣는 자, 옮긴 자 모두의 책임이다. 말의 속성으로 씀을 잘해야 한다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있으리라.


어쩌면 공간의 문제였을까? 정체되어 있는 공간의 문제로 그들은 그 속에서 이슈가 필요했고 진실과 거짓에 상관없는 전달거리, 자극할, 누군가를 공격할 대상과 재료가 필요했을까? 수애가 속한 세상과 그들이 속한 세상은 별반 다르지 않다. 곳곳에서 타자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한다. 화자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면 그 말은 뱉지 않아야 한다. 수애는 생각이 많아졌고 반성도 생겼다.


수애는 요 며칠 캄캄한 세상에서 그녀가 속해있는 세상의 민낯을 다. 하늘의, 땅의, 세상의, 세상을 사는 나와 당신들의. 하늘의 민낯은 다채롭다. 마음속 울림만으로 세상에 대한 아픔과 분노에 참여할 수 있을까. 과연 그 자격이 되는 걸까. 아픔과 분노에서 멈춤을 할 수 없기에, 멈춰버리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염려하며 다시 책장을 펼쳤다. 나의 슬픔으로 그들의 아픔이 더 깊음으로 드러나는 듯하여 미간을 찡그리며 집중해서 보던 책을 덮어버렸다. 책꽂이 주변을 한참을 망설이며 서성이다 다시 책을 들었다. 책을 들어서 보고 생각하고 아파하며 나눔을 하는 것만이 그들의 아픔과 메시지가 아주 작게나마 잘 전달된 것이라는 것을 안다.


작가는 자신의 가정에서부터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조심하고 집중한다. 모순된 세상을 적응해 나가는 척하며 우리는 모순됨을 얼마나 펼쳐왔던가. 그 인지하지 못한 모순의 포부를 작가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멈춤을 하게 해서라도 차단하고 지우려고 애쓴다. 노력한다. 작가의 가정에서는 평등이라는 단어가 잘 쓰이고 있을까. 평등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주는 의미가 헛되지 않게 잘 쓰고 있으리라 믿는다.


이랑에서 그 작은 소리는 시작되었다. 동네 독립 서점 이랑. 누군가에게는 지역사회에 들어선 하나의 일반적인 서점이었다면 민낯들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읽어내고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이랑에서부터 작은 목소리가 시작된다. 이랑으로 가는 길은 매번 설렌다. 가끔은 얕은 갈등으로 출발 자체를 포기하기도 한다. 그곳으로 가기 전에도 십여 개의 카페와 가끔 서점이 들어선 작은 동네에서 이랑은 자신의 역할과 확실한 색을 만들어야 했다. 시작이라는, 뻗어나가리라는, 작은 목소리라는 책방지기님의 의지가 엿보인다.

이랑은 동네 공원과 마주해 있다. 결코 등을 지고 있지 않다. 마치 그것이 이랑의 철학인 것처럼. 그곳에서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할 때 문득문득 세상을 본다. 공원이 보이고 하늘이 보인다. 그때의 그 민낯은 때로는 나를 위로하는 거 같다. 감정을 들여다보니 따뜻하다. 위벽이 단단해졌다. 한동안은 자극도 견딜 만큼 치료가 잘 되었다.


책은 1부 말줄임표와 2부 도돌이표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낯섦에 대해 먼저 언급한다. 책에서 낯섦은 철저히 주관적인 해석이며 공평하지 않다고 했다. 다시 작가는 낯섦의 관계 그것도 권력관계에 대해 말한다. 그건 바로 차별이라고.


우리가 내가 각자가 돌보아야 할 세상일이 참 많다.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애 자신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시작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아주 작은 소리를 내어 보려고 한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얘기하며 함께 아파하고 새로운 제안을 한다. 있는 그대로의 민낯이 드러난다. 사회 곳곳에. 단단했던 위벽이 손상된 걸까. 속이 쓰리다. 아주 작은 자극에 벌써 위가 아파온다.


작가가 말한 아주 작은 목소리의 힘을 나 또한 믿는다.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미래로 옮겼을 때 과연 변화를 보일까. 물론 변화가 있다. 그 변화는 희망이 아닌 부정적 내용이다. 토론을 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이렇게라도 나눔을 하고 사회를 걱정하는 마음에 위로를 받아야 하는 걸까? 그 자리에 있는 그들은 말한다. 부정적 시선처리와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과연 그 자리에 모인 우리의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서로를 연결해 주는 유대감은 존재하는 걸까. 마음으로 충돌하며 의견을 내는 동안 모두 치열하게 한 마음으로 세상의 민낯을 안타까워했다. 생각하며 아팠고 나누다 눈물을 흘렸다. 작은 소망은 내 아이나 다음 세대에게만은 오류가 가득한 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게 내가 앞선 마중을 하는 것이다. 선뜻 고치려 하지 않고 고집스러운 당당함으로 위선을 떨 것이다. 그 마중이 최소한의 변화와 위안이 되기를.


낯설다, 수군댈 것이다, 먹먹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잊는다, 심장이 찢어져도 별 수 없다, 맞아도 별 수 없다, 떨어져도 끼어도 깔려도 별 수 없다. 죽어도 별 수 없다. 책에서 나오는 단어는 자극적인 듯 보이지만 가장 적나라한 현실이다.


망각에 익숙하다, 더 날카로워질 것이다, 둔감해질 것이다. 자극적 문장은 수애를 울리기에 충분했다. 수애는 덤덤하지만 이젠 좀 더 적극적으로 부딪히려고 한다. 무심해 보이지만 강하고 명료하게 일을 처리해 나가겠다는 다짐을 한다. 부모의 권위와 자리가 아닌 아이의 입장에서의 최선을.


아픔을 겪고 있는 아이에게 말하고 싶다. 성장통을 좀 더 세고 강하게 겪는 것이라고 잠시 위안을 하자. 수애는 아이에게 마음을 쏟으며 그 말을 최선이라며 하는 자신이 답답해진다.

거짓된 소문은 그것의 본성대로 힘을 잃고 곧 거품처럼 소멸할 거라고 믿는다.

수애는 다시 힘주어 말한다. 지금의 경험이 앞으로 우뚝 솟게 할 거라고. 그 앞선 자리와 뒤자리에 자신이 늘 지키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