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사회에서 ‘아이(child)’는 단순히 생애 초기의 인간이나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적·문화적 변화 속에서 새롭게 구성된 사회적 주체였다. 18세기 계몽주의를 기점으로 서구 사회는 아이를 축소된 형태의 성인이 아니라, 고유한 감정·욕망·발달 리듬·심리 구조를 지닌 독립적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루소의 『에밀』 같은 신교육론, 산업화 이후 가족 구조의 재편, 시민사회 체제 안에서의 아동 보호 체계의 강화 등과 맞물리며, 아동을 하나의 사회적 개념이자 문화적 범주로 조직했다. 다시 말해, '아이'는 자연적 사실이 아니라, 근대 사회가 새롭게 발명한 사회적‧정서적 위치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리젤다 폴록은 메리 카사트가 이 변화의 시각적 전환을 미술사 속에서 가장 정교하게 포착한 예술가라고 말한다. 그녀에게서 아이는 단순히 어머니와 함께 존재하는 보조적 인물이 아니라, 관계의 구조를 재편하고 감정의 리듬을 형성하며, 공간의 사용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적극적 주체로 등장한다. 이는 전통 회화에서 아이가 맡아왔던 상징적 기능—성모자 도상에서의 순수성, 천상의 의미, 구원의 은유—과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적 위치이다. 카사트의 아이는 더 이상 상징적 표면의 일부가 아니라, 세계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통해 자신을 구성하는 근대적 인간의 한 형태이다.
이 새로운 아이 개념은 감정 구조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카사트가 그린 아이들은 단순한 귀여움이나 천진함을 보여주는 존재가 아니라, 불안, 호기심, 집중, 피로, 만족감처럼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주체로 나타난다. 폴록은 이를 “근대적 정동의 출현”이라고 부르며, 아이가 감정의 수용자가 아니라 감정의 생산자이며, 관계 속에서 고유한 심리적 위치를 점하는 존재로 등장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감정은 성인의 영역’이라는 전통적 관념을 해체하고, 아이의 내면세계를 근대적 감성 구조의 일부로 끌어올린다.
카사트는 아이를 시선의 주체로 재구성한다는 점에서도 결정적이다. 전통적으로 아동의 시선은 의미 없는 장식적 요소이거나 상징적 에너지를 전달하는 매개 역할에 머물렀다. 그러나 카사트의 아이들은 어머니를 바라보고,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응시하고, 책이나 실내의 물건을 관찰하며, 주변 세계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능동적 시선의 소유자로 등장한다. 이것은 “누가 세계를 보는가?”라는 근대 시각문화의 핵심 질문을 아이에게까지 확장하며, 아이를 세계 인식의 주체로 승인하는 중요한 문화적 전환이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아이가 관계의 구조를 흔드는 존재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아이는 실내의 정돈된 질서를 깨고, 어머니의 동작·시간·감정의 흐름을 끊임없이 교란하거나 재조정하며, 공간의 리듬을 자신에게 맞춰 다시 짜놓기도 한다. 이는 아이가 단순한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그 관계의 주조를 결정하는 하나의 힘이라는 뜻이다. 즉, 아이는 수동적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관계적 상호작용의 중심을 움직이는 주체적 행위자이다. 이러한 역동성은 근대적 가족 구조에서 아이가 중심적 감정 단위로 부상했다는 사실과도 연결된다.
근대 사회가 아이에게 부여한 이 새로운 위치는 가정의 구조 자체를 변화시킨다. 아이는 더 이상 주변 인물이 아니라, 가족 감정의 핵심적인 축이 되며, 부모의 시간·노동·감정·경제적 투자 모두가 아이를 중심으로 재조직된다. 폴록은 이를 '근대적 가족의 정서 정치학'이라고 설명하며, 카사트가 이 정서 구조를 시각적으로 가장 섬세하게 번역했다고 본다.
결국 카사트의 회화에서 등장하는 ‘아이’는 근대의 정서 구조와 가족 개념을 새롭게 형성한 적극적 주체로 나타난다. 아이는 단순한 연령적 특징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 감정·관계·공간·시간을 재편하는 근대적 인간의 새로운 유형이다. 폴록의 분석은 카사트가 아이를 귀엽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근대 사회가 새롭게 발명한 인간 개념—근대적 아이—를 시각적으로 구축한 예술가였음을 드러낸다. 이는 아이를 단순히 재현한 것이 아니라, 아이를 둘러싼 근대적 감정 정치와 관계 구조를 해석하고 형식화한 작업이었고, 이로써 카사트는 근대 예술사에서 새로운 주체 개념을 창안한 선구자로 자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