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썸씽 로튼>
뮤지컬 〈썸씽 로튼〉은 웃음과 음악, 패러디와 풍자가 난무하는 작품이지만, 그 무대 한가운데서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인물은 언제나 셰익스피어다. 그는 교과서 속 엄숙한 문인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쓴 ‘대문호’라기보다, 오히려 르네상스 시대의 팬덤을 이끈 스타, 무대보다 거리의 조명을 더 사랑하는 엔터테이너, 작품보다 자기 이름을 더 숭배하는 살아 있는 브랜드다.
첫 장면에서 무대에 등장하는 셰익스피어는 마치 록 콘서트에서 나온 프런트맨 같다. 관객에게 둘러싸여 환호를 받으며, 화려하게 몸을 흔들고, 시를 쓰는 대신 자기 신화를 퍼포먼스처럼 공연한다. 오글거릴 만큼 과장된 옷차림, 몸짓, 농담까지 모든 것이 계산된 연출의 일부처럼 보인다. 문학은 조용한 서재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열광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그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가 글을 쓰는 장면조차, 심각한 작업이라기보다 하나의 쇼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그의 방 앞에서 줄을 서고, 글의 질에 대해 논하기보다는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이 가진 영광에 매달린다. 글은 작품이 아니라 상품이다. 대중은 작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쓴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을 소비한다. 그는 천재이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스타로 만든 가장 영민한 기획자다.
사람들은 종종 예술가가 진지하고 고독한 사람일 것이라고 믿는다. 작품을 탄생시키는 고통, 창작의 밤, 인류의 감정을 낳는 깊은 통찰. 하지만 〈썸씽 로튼〉의 셰익스피어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는 고독 속에서 글을 쓰지 않는다. 그는 열광 속에서 영감을 얻는다. 팬들이 외치는 그의 이름, 사람들이 탐내는 그의 사인, 젊은 시인들이 흠모하는 눈빛 속에서 그는 문장을 얻는다. 그의 창작은 흘러나오는 감정이 아니라, 공기 중의 욕망을 흡수하는 기술이다.
그는 글로 세계를 구하려 하지 않는다. 글은 그의 생존 방식이며, 동시에 자기 이름을 영원하게 만드는 수단이다. 세상은 위대한 작품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작가라는 이미지를 기억한다. 셰익스피어는 문학보다 이미지의 경제학을 먼저 이해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작품의 줄거리를 잊더라도, 그의 얼굴과 이름은 결코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선택한 예술의 방식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는 천재라기보다 인간 심리의 사업가다. 그는 관객이 어떤 상징을 좋아하고, 어떤 언어가 유행하고, 어떤 감정이 팔리는지 알고 있다. 연극이라는 장르는 태생적으로 관객의 반응에 의존한다. 글은 무대에 올라야 하고, 무대는 사람을 붙잡아야 한다. 셰익스피어는 이 단순한 진실을 누구보다 빨리 체득한 사람이다. 그는 문학의 순수를 믿지 않는다. 오히려 문학은 대중과 결합해야 살아남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공연계의 귀족이 되었다. 다른 작가들이 글을 쓰기 위해 조용한 술집을 찾고, 밤중에 촛불 아래에서 원고를 고치고, 비평가의 독설에 고통받는 동안, 셰익스피어는 광장의 무대를 천천히 걸어 나온다. 그는 더 이상 고독한 창작자가 아니라, 셀프 프로덕션의 주인공이다. 그의 눈빛은 자신감을 넘어선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고, 그 즐거움은 천재적 능력에서 온 것이 아니라, 대중이 그를 보아준다는 기쁨에서 온다.
〈썸씽 로튼〉 속 형제 작가들이 고통받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들에게는 예술가의 능력은 있지만, 시장과 대중을 이해하는 능력은 없다. 글이 아무리 좋아도, 대중은 모른다. 명작이 아무리 뛰어나도, 조명은 움직이지 않는다. 관객은 작품을 따라가지 않고, 관객이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간다. 형제 작가들은 밤을 새워 글을 다듬고, 완벽한 대사를 찾으며, 진지한 고통을 예술에 바친다. 그러나 대중은 그 고통을 보지 않는다. 대중은 셰익스피어를 본다. 예술의 완성도보다, 예술의 얼굴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것은 잔인하지만 사실이다.
〈썸씽 로튼〉의 셰익스피어는 우리가 문학사에서 보던 ‘셰익스피어’라는 초월적 인물을 풍자하고 있지만, 사실 이 작품은 훨씬 더 넓은 영역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술은 순수할 수 있는가? 창작은 고독 속에서만 탄생해야 하는가? 작가는 작품의 진실에 충실할 것인가, 아니면 작품이 살아남기 위해 시장을 이해해야 하는가? 셰익스피어라는 캐릭터는 이 질문에 대해 놀라운 물음을 제시한다.
“예술은 작품인가, 아니면 이름인가?
그리고 우리는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우리는 작품이 아닌 작가를 기억한다. 그 이름의 표정과 춤과 기호를 기억한다. 사람들은 셰익스피어의 원문을 모두 읽지 않아도,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의 ‘방식’을 기억한다. 그리고 아마, 그것을 가장 먼저 이해한 예술가가 뮤지컬 속 셰익스피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