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았던 것들의 귀

<올해의 작가상, 김영은>

by 말하는 돌

김영은의 전시는 조용하다. 그러나 이 조용함은 비어 있지 않다. 그것은 소리가 제거된 공간이 아니라, 이제 막 소리가 도착하기 직전의 긴장에 가깝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은 먼저 묻는 쪽이 아니라, 묻힘을 당하는 쪽에 서게 된다. 무엇을 들을 것인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방식으로 들어왔는가라는 질문이 김영은의 작업 전체를 관통한다.


김영은에게 청취는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듣는다는 행위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언제나 특정한 역사, 기술, 권력의 배열 속에서 형성되어 왔다. 누군가는 기록되었고, 누군가는 잡음으로 처리되었으며, 누군가는 아예 들릴 자격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그의 작업은 바로 그 ‘들리지 않음’의 자리를 가만히 호출한다. 소리는 여기서 정보나 정서의 매개가 아니라, 기억이 남긴 흔적이자 권력이 작동한 자국으로 등장한다.


〈To Future Listeners III〉에서 김영은은 19세기 말 미국에 정착한 아일랜드 이민자 남성의 축음기 음원을 호출한다. 그러나 이 소리는 원형 그대로 재현되지 않는다. 남성의 목소리는 여성 합창으로 변주되고, 아날로그 기록은 디지털 층위로 재구성된다. 이 전환은 단순한 형식 실험이 아니다. 공식 역사에 기록되었으나, 동시에 다른 수많은 목소리를 밀어냈던 음성의 권위를 해체하는 시도다. 작가는 묻는다. 과거의 소리는 누구의 미래를 향해 있었는가, 그리고 그 미래의 청취자는 누구였는가. 이 질문 앞에서 소리는 더 이상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를 흔드는 미완의 사건이 된다.


김영은이 말하는 ‘소리 민족지학’은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수집하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 기록된 것들이 어떤 감각 체계를 통해 권위를 획득했는지를 되묻는 방법론이다. 그는 우리가 너무 자연스럽게 들어온 소리—표준어, 공식 기록, 기술적으로 정제된 음향—가 어떤 배제를 전제로 했는지를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소리는 공간을 조각하고, 시간을 중첩시키며, 과거와 현재, 여기와 저기를 동시에 진동시킨다.


이 전시는 묻는다. (들리는) 소리와 (듣는) 청취는 어떤 힘을 만들어내는가. 의미 없는 배경음, 제거의 대상이었던 잡음, 비언어적 음향 신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회복할 수 있는가. 김영은에게 청취는 지식 생산의 또 다른 형식이자, 탈식민화의 전략이다. 듣는 방식이 바뀔 때, 세계를 해석하는 구조 또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를 나오며 관객은 여전히 완전한 문장을 얻지 못한다. 대신 남는 것은 미묘한 감각의 흔들림이다. 내가 지금까지 너무 쉽게 흘려보낸 소리들, 그리고 그 소리와 함께 사라진 얼굴들에 대한 불편한 자각. 김영은은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듣게 만든다. 그리고 그 듣기 속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어떤 존재들이 세계에서 추방되어 왔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다시 불러올 수 있을지를 조심스럽게 상상하게 된다. 그의 작업에서 소리는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이제 다른 방식으로 들릴 뿐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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