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작가상, 임영주>
임영주의 전시는 설명보다 먼저 몸을 요구한다. 그의 작업 앞에서 관객은 해석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된다. 믿음은 여기서 사유의 대상이기 이전에, 먼저 통과해야 할 공간이며, 눕고 머무르고 바라보아야 할 상태다. 임영주는 ‘무엇을 믿는가’보다 ‘어떻게 믿게 되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언제나 삶과 죽음의 경계, 존재의 불확실성 위에서 시작된다.
그의 작업 세계에서 믿음은 초월적 진리를 향한 확신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견디기 위해 인간이 구축해 온 구조다. 한국 사회에 잔존하는 미신과 신앙, 그리고 현대 과학기술은 이 구조의 서로 다른 얼굴이다. 과학은 합리성의 언어로 자신을 포장하지만, 임영주는 그 안에 깃든 반복과 오류, 과도한 확신의 제스처를 집요하게 드러낸다. 미신 역시 비이성의 잔여로 폐기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불안한 세계를 해석하고자 했던 인간의 오래된 감각으로 복권된다. 이때 믿음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 그 자체가 된다.
〈고 故 The Late〉(2023–2025)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가장 밀도 높게 응축된 작업이다. 작가는 한국의 가묘 풍습에서 출발해 ‘빈 무덤’을 전시장 안에 구현한다. 관객은 그 안에 들어가 눕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거나, 유사한 VR 환경 속에 자신을 맡긴다. 위에서는 늙었다가 다시 젊어지기를 반복하는 얼굴이 나타나고, 아래에서는 땅의 감각이 신체를 감싼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상상된 미래는 이 공간 안에서 시간의 질서를 잃는다. 무덤은 종말의 장소가 아니라, 다른 차원의 시점을 제공하는 장치로 변한다.
이 빈 무덤은 상징이 아니다. 임영주가 말하듯, 그것은 “실제적 힘을 지닌 공간”이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관객은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생과 사의 경계는 명확해지지 않고, 존재는 잠시 보류된 상태로 놓인다. 믿음은 이때 확신이 아니라 감각으로 도착한다. 누워 있는 몸, 제한된 시야, 반복되는 이미지 속에서 관객은 자신이 얼마나 쉽게 어떤 서사에 기대고, 어떤 장치에 안도하는지를 자각하게 된다.
임영주의 작업은 과학과 미신을 대립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과학의 언어가 지닌 확실성의 신화를 은근히 비틀며, 그 또한 하나의 믿음의 수사임을 드러낸다. 초기 작업에서 알코올램프 위의 돌에 손을 올리는 수행 행위를 과학 실험처럼 재현했을 때, 반복되는 고통은 객관성의 언어를 무력화시킨다. 과학은 더 이상 냉정한 진리의 대변자가 아니며, 미신은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적 욕망의 흔적으로 남는다. 이때 발생하는 것은 ‘불확실성의 확실성’—우리가 확실하다고 믿어온 것들 또한 하나의 믿음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이다.
임영주의 전시를 보고 나오면, 어떤 결론도 손에 쥐어지지 않는다. 대신 남는 것은 묘한 감각의 잔향이다. 우리가 믿어온 것들, 그리고 믿지 않으려 애써온 것들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취약했는지에 대한 자각. 그의 작업은 믿음을 해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믿음이 작동하는 조건을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조용히 되돌아보게 한다. 빈 무덤에 누운 시간 동안, 관객은 죽음을 상상하기보다 오히려 삶이 얼마나 많은 믿음 위에 놓여 있었는지를 처음으로 또렷하게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