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발라동과 가족 초상화
1921년, 파리 몽마르트르는 여전히 언덕길과 광장, 성당의 그림자로 가득했다. 전쟁의 상흔이 골목마다 가늘게 남아 있었고, 예술가들의 발자취가 오래된 석벽 사이를 스쳤다. 그 언덕 위, 두 화가가 마주 서 있었다. 어머니 수잔 발라동, 그리고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 발라동은 여성 화가로 드물게도 중견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고, 위트릴로는 ‘몽마르트르의 시인’이라 불리며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빛 아래에는 오래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청년 시절부터 그를 따라다닌 알코올 중독, 요양원과 거리 사이를 오간 불안한 삶, 그리고 메워지지 않는 고독. 어머니의 시선 속 위트릴로는 언제나 안도와 불안의 경계 위에 있었다.
1883년, 위트릴로가 몽마르트르에서 태어났을 때, 발라동은 모델로서 화단을 오르내리던 시기였다. 아버지의 이름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샤반느, 르누아르, 드가 등 발라동 곁을 스친 화가들의 이름을 입에 올렸지만, 진실은 흐릿한 안개 속에 남았다. 발라동은 아이를 ‘성 없는 아이’로 두지 않으려 했다. 결국 친분이 있던 스페인 출신 화가이자 평론가, 미구엘 위트릴로에게 부탁해 그 성을 물려받았다. 그렇게 모리스 위트릴로라는 이름이 세상에 새겨졌다.
위트릴로의 어린 시절은 불안정했다. 어머니는 작업실과 모델 일을 오가며 바빴고, 외할머니 마들렌 발라동이 손자를 돌봤다. 그러나 고집 세고 까다로운 아이는 뜻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분노했고, 마들렌이 달래기 위해 쥐여준 술은 오히려 그 성질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학교에서 놀림과 괴롭힘을 당한 위트릴로는 귀가 길에 카페에 들러 와인을 마셨다. 가게 주인들은 그 해악을 알지 못한 채, 어린 손님에게 웃으며 술잔을 내밀었다. 열세 살, 그는 이미 알코올 중독자였고, 열여섯에는 잦은 결석과 난동 끝에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발라동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인맥을 동원해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지만, 위트릴로는 술로 감정을 다스렸고, 그 뒤에는 항상 사고가 뒤따랐다. 열여덟 살 무렵,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치료를 마친 뒤에도 술을 끊지 못하자, 발라동은 마지막 수단처럼 붓을 쥐여주었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잡은 붓이었으나, 위트릴로는 곧 캔버스 앞에서만큼은 고요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색을 섞는 시간만큼은 술의 욕구가 사그라들었고, 그는 서서히 몽마르트르의 골목과 벽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주받은 화가’라는 별명을 얻었고, 뜻밖에도 그 별명 속에서 예술가로 성장해갔다.
〈모리스 위트릴로 초상〉은 단순한 가족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걱정과 자부심이 한 화면 안에서 충돌하는 형상이다. 화면 속 위트릴로는 군복 같은 갈색 양복을 단정히 입었지만, 그것은 평화의 복장이 아니라 전장에 선 병사의 무기처럼 보인다. 왼손의 팔레트, 오른손의 붓은 직업의 도구이자 자기 파괴와 싸우기 위해 끝까지 쥐어야 했던 방패와 창이다. 발라동은 이 무기를 화면 중심에 고정시키며, 아들을 ‘문제적 아들’이 아닌 ‘동료 화가’로 호명한다.
그의 표정은 단단하다. 부서지기 전의 도자기처럼 팽팽하게 다문 입술, 정면을 겨누는 시선에는 자존과 경계가 동시에 담겨 있다. 눈두덩 아래 번진 그늘은 요양원과 술의 세월을 스치듯 말하고, 그 그림자는 앞으로 찾아올 더 깊은 고립의 전조처럼 번져 있다. 발라동은 그 불안을 감추지 않는다. 굵고 단호한 윤곽선, 사물과 사물 사이의 날 선 경계가 그의 존재를 조각하듯 새긴다.
배경은 질서와 혼란이 맞물려 있다. 책과 사물은 기울어져 있고, 그 사이의 공기는 묘하게 불안정하다. 위트릴로의 풍경화 속 고요한 거리와 달리, 발라동이 그린 실내에는 정적 속의 긴장이 감돈다. 이 초상을 바라보면, 자연스레 위트릴로의 1920년대 초반 풍경화 〈몽마르트르 거리〉가 떠오른다. 인적 없는 골목, 축축한 석벽, 차분한 회색 지붕. 석회와 안료가 만든 질감은 시간의 퇴적층처럼 스며 있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흔적은 없다. 위트릴로는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는 대신, 그 거리를 방패 삼아 숨는다. 풍경 속 고독은, 어머니가 그린 초상 속 불안과 맞닿아 있다.
어머니가 그린 얼굴과 아들이 그린 거리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 발라동의 초상은 내면의 균열을 정면에 드러내지만, 위트릴로의 풍경은 그 균열을 벽과 지붕 속에 봉인한다. 그러나 두 시선은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 몽마르트르라는 토양, 예술로 생을 붙드는 의지,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습관. 1921년의 이 초상은 거리의 침묵 뒤에 숨어 있던 얼굴을 어머니가 꺼내 놓은 순간이다. 풍경 속 무채색의 벽과 초상 속 굳은 입술은 서로를 비춘다. 어머니의 시선은 그 얼굴을 세상에 남기려 했고, 아들의 시선은 여전히 세상 바깥을 향한다. 그 두 시선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깊고 무거운 침묵이 피어난다. 그 침묵은 모자의 전부를 말하고, 동시에 더 이상 어떤 말도 필요 없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