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수잔 발라동과 자화상

by 말하는 돌

서른 중반의 수잔 발라동은 거울 앞에 앉아 스스로를 다시 그렸다. 화면은 단순한 흉상 형식이지만, 그 안에는 한 개인의 고독한 투쟁과 선언이 응축되어 있다. 어둠이 드리운 배경 속에서 그녀의 상반신이 도드라지며 떠오른다. 그 어깨에는 오랫동안 화가의 모델로 서야 했던 세월과, 이제 붓을 든 화가로서의 무게가 함께 얹혀 있었다. 그러나 눈빛은 여전히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눈동자에는 물감을 짜던 손끝의 감각, 수많은 시선 아래 노출되던 몸의 기억이 고스란히 스며 있었다.


젊은 날의 도발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것은 이제 불꽃 같은 반항에서, 더 깊고 무거운 사유의 불씨로 변해 있었다. 얼굴 위에 얹힌 붉은 기운은 단순한 혈색이 아니라, 노동과 창작이 남긴 열기였다. 그녀는 더 이상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주체로 자리한다. 이 초상은 하나의 초상화가 아니라, 그려지는 자에서 그리는 자로 이동하는 변신의 의식(儀式)이었다.


짙은 갈색과 어두운 적색이 뒤섞인 배경은 단조롭지만 깊이를 지니고, 거친 붓질의 결은 단순한 채색을 넘어선 숨결을 남긴다. 붉은 드레스와 그 안쪽의 녹색 깃은 미묘하게 맞부딪히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 붉음은 그녀의 얼굴빛과 연결되어 살아 있는 듯 맥동하지만, 동시에 꺼지지 않는 불안을 품고 있다.


살짝 다문 입술, 곧은 코, 단단하게 치켜 올라간 검은 눈썹은 결단력 있는 인상을 남긴다. 정면을 향하되 비껴선 시선은 마치 관람자와 마주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거울처럼 응시하는 듯하다. 관람자를 향한 응시는 외부로 향한 선언이자,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성찰이다. 불씨처럼 사라지지 않는 에너지가 얼굴과 시선에 서려 있다.


그녀의 피부는 미묘한 분홍과 노란 색조로 덧입혀져, 이상화된 미와는 거리가 멀다. 이곳에는 화려한 장식도, 부드럽게 연마된 이상화도 없다. 오직 살아 있는 여성의, 노동으로 달아오른 얼굴이 있을 뿐이다. 얼굴과 목에는 섬세한 붓결이 얹혔으나, 머리카락과 의상은 거칠고 단호하게 처리되었다. 섬세함과 단호함, 세밀한 관찰과 격렬한 제스처가 하나의 인물 안에서 맞부딪히며, 그녀를 단단히 지탱한다.


이 자화상이 그려진 1898년은 발라동이 모델에서 화가로 막 전환한 시기였다. 따라서 이 그림은 단순한 초상이 아니라, 그녀가 사회와 예술 제도 앞에서 내뱉은 선언문이었다. 당대 여성 화가가 자기 얼굴을, 그것도 화가로서의 얼굴을 그린다는 행위는, 남성 중심의 화단을 향한 조용하지만 치열한 저항이었다. 매혹을 전시하는 대신, 그녀는 차갑고도 생생한 자각을 그려 넣는다. 그것은 “나는 더 이상 대상이 아니다. 나는 여기, 화가로 존재한다”라는 표명이었다.


이 자화상은 하나의 그림이라기보다, 시대와 여성, 그리고 예술을 향한 발라동의 서약처럼 읽힌다. 어둠을 뚫고 떠오른 얼굴은 관람자를 바라보며 말한다. 나는 그려지는 여인이 아니라, 그리는 예술가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19세기 말의 캔버스 위에서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아직도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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