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추어진 여인의 초상

수잔 발라동과 자화상

by 말하는 돌

거울은 화가가 자신의 얼굴과 몸을 비추어 볼 수 있는 유일한 매개이자, 자화상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반영의 도구가 아니다. 거울은 언제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불러내며, 화가를 자기 인식의 심연으로 끌어들인다. 거울 앞에서 화가는 외부의 시선을 벗어나 홀로 자신을 응시하지만, 그 응시 속에는 이미 사회와 타자의 시선이 겹쳐 들어와 있다.


거울은 화가를 동시에 그리는 자이자 그려지는 자로 만든다. 주체와 객체, 응시와 반영 사이의 팽팽한 긴장 위에서 자화상은 탄생한다. 여성 화가에게 이 장치는 더욱 복합적이다. 오랫동안 여성은 남성의 시선에 의해 재현되는 대상에 머물러야 했으나, 여성이 거울을 통해 스스로를 그린다는 행위는 대상에서 주체로의 전환, 곧 시선의 탈환을 의미한다.


1927년의 거울 자화상에서 수잔 발라동은 자아를 하나의 얼굴로 고정하지 않는다. 거울 속의 그녀, 캔버스 속의 그녀,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화가 자신이 한 화면에서 중첩된다. 전통적으로 허영의 상징이던 거울은 여기서 자기 응시를 확장하는 장치로 전복된다. 발라동은 고정된 여성상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변주되는 자아를 드러낸다.


그녀는 강렬한 색채와 단호한 붓질로, 거울 앞에 선 자신의 시선을 새긴다. 그것은 단순한 초상이 아니라, 삶의 후반부에 이른 화가가 자기 존재를 가차 없이 응시한 기록이다. 화면 중앙에서 약간 기울어진 고개, 사색에 잠긴 눈빛, 굳게 다문 입술은 60대의 피로와 결의를 동시에 증언한다. 붉은색과 노란색, 녹색이 강렬하게 대비된 배경은 무대처럼 인물을 감싸고, 기하학적 패턴의 의상은 피부의 장밋빛과 충돌하며 거친 조형감을 만든다. 두텁게 올린 붓질은 매끈한 초상의 전통을 거부하며, 표면 위에 세월과 생의 무게를 남긴다.


누드 연작을 통해 여성 신체를 이상화 없이 그려낸 발라동은, 이 자화상에서 옷을 입은 자신을 선택했다. 그것은 육체의 직접적 노출 대신, 얼굴과 표정, 색채를 통해 내면을 드러내려는 선택이었다. 만약 누드 자화상이 몸을 통해 주체를 해방시켰다면, 이 작품은 시선과 태도를 통해 주체성을 구축한다. 그녀의 인물들이 늘 그러했듯, 시선은 정면을 향하지만 결코 관람자를 붙잡지 않는다. 그 시선은 내면으로 돌아가며, 외부의 침입을 차단한다. 발라동의 핵심은 언제나 ‘나를 보는 나’를 그리는 데 있었다.


이 작품은 그녀의 ‘내면의 얼굴’이다. 누드 연작이 몸을 통해 여성 주체성을 해방시켰다면, 이 그림은 색채와 시선, 정물의 배치를 통해 정신적 풍경을 드러낸다. 발라동은 남성 화가들이 거울을 통해 여성의 매혹을 장식적으로 연출하던 전통을 거부했다. 거울 속의 그녀는 더 이상 관능적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얼굴을 비평하는 냉정한 심판자로 선다. 거울은 꾸며진 이미지를 만들지 않고, 오히려 내면과 마주하는 비판의 장이 된다.


발라동은 자신을 결코 이상화하지 않았다. 피부의 거친 질감, 무심한 표정, 기울어진 고개의 불균형은 여성 이미지에 요구되던 완벽한 조화를 의도적으로 파괴한다. 이로써 거울은 자기검열의 장이 아니라 해방의 통로로 기능한다. 오랫동안 허영과 자기애의 상징이었던 거울은, 그녀에게 기록과 증언의 장치로 전환된다. 발라동의 거울 자화상은 ‘아름답게 남기기’가 아니라 ‘진실하게 남기기’를 택한다.


그녀의 모든 누드 연작이 여성 스스로 시선의 권리를 회수하는 과정이었다면, 이 거울 자화상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관람자의 눈길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의 눈으로 본 자신을 주체적으로 그려냈다. 이제 거울은 관람자의 시선보다 화가 자신의 시선이 우위에 서는 공간이 된다.


“내가 나를 보는 시선이야말로 나를 규정한다.”


1927년, 거울 앞에 선 발라동은 하나의 얼굴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거울 속의 그녀, 그림 속의 그녀,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그녀를 겹겹이 펼쳐 놓았다. 화면의 사과와 붉은 천은 삶의 잔해처럼 흩어져 있었고, 그 속에서 발라동은 한 인물이자 하나의 풍경, 그리고 끝내 자신을 응시하는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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