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서 다시 구성되는 몸

뮤지컬 <킹키부츠>

by 말하는 돌

뮤지컬 킹키부츠는 단순히 ‘성 정체성’이나 ‘다름의 수용’을 다루는 서사로 읽히기보다, 무대 위에서 신체와 물질, 감각과 수행이 어떻게 관계를 재조직하는가를 보여주는 공연미학적 사건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작품은 이야기 이전에, ‘보여짐’과 ‘보이게 함’의 방식 자체를 질문한다.


무대의 중심에는 언제나 신발(부츠)이라는 물질이 놓인다. 그러나 이 신발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신체를 재구성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가죽 부츠는 노동과 산업의 질서를 상징하는 반면, 롤라가 신는 킬힐 부츠는 신체의 균형과 움직임을 새롭게 규정하는 수행적 오브제다. 이 두 부츠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물질이 전혀 다른 신체와 관계 맺는 방식을 보여준다. 즉, 물질은 고정된 의미를 갖지 않고, 어떤 몸이 그것을 수행하느냐에 따라 다른 존재론적 상태를 획득한다.


이때 무대는 단순한 재현의 공간이 아니라, 신체가 새롭게 발명되는 실험실이 된다. 롤라와 엔젤스의 등장 장면에서 드러나는 과장된 실루엣, 강렬한 색채, 리듬감 있는 군무는 현실의 신체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확장하고 과장함으로써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시화한다. 특히 하이힐을 신은 남성 신체의 균형 잡기와 워킹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반복된 훈련의 결과이며, 이 수행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만든다.


음악과 조명 역시 이러한 수행성을 강화한다. 신디 로퍼의 팝 기반 넘버들은 서사를 설명하기보다 감각을 전면으로 밀어 올린다. 강한 비트와 반복적인 리듬은 관객의 몸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며, 이는 감상의 차원을 넘어 공연의 에너지가 관객의 신체로 확장되는 경험을 만든다. 조명은 현실적 공간을 재현하기보다 색채의 대비와 변화로 감정의 밀도를 조절하며, 특히 붉은색과 보라색 계열의 조명은 욕망, 긴장, 해방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증폭시킨다.


이 작품의 핵심은 ‘변화’가 아니라 ‘수행을 통한 드러남’에 있다. 주인공 찰리가 공장을 유지하기 위해 롤라와 협력하게 되는 과정은 단순한 인식의 전환 서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롤라의 세계를 ‘이해’하기보다, 그 세계가 무대 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즉, 타자에 대한 이해는 인지적 공감이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신체의 리듬을 목격하는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다.


또한 <킹키부츠>는 관객의 시선을 끊임없이 흔든다. 처음에는 ‘특이한 존재’로 보였던 롤라의 신체는 점차 무대의 중심이 되고, 오히려 기존의 남성성이나 규범적 신체가 낯설게 느껴진다. 이 시선의 전환은 단순한 메시지 전달이 아니라, 공연이라는 형식이 지닌 지각의 재배치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다. 관객은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체험하게 된다.


결국 킹키부츠는 ‘다름을 받아들이자’는 교훈적 서사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 작품은 무대 위에서 몸, 물질, 감각, 시선이 끊임없이 재조직되는 과정 자체를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규범들이 얼마나 수행적이고 가변적인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관객은 하나의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자연스럽다’고 믿어왔는가,

그리고 그 자연스러움은 과연 누구의 몸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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