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갇히다

가족의 죽음, 세상의 소멸

by 말하는 돌

세상에는 다양한 죽음이 존재한다. 그러나 피를 나눈 가족의 죽음만큼 인간을 근원적으로 무너뜨리는 일은 드물다. 부모의 죽음, 배우자의 죽음, 자식의 죽음은 그 자체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이다. 하지만 그 죽음이 ‘자신의 손’에 의해, 그것도 ‘의도치 않게’ 일어났을 때, 슬픔은 단순한 상실을 넘어 자기 파괴의 나락으로 이어진다. 이 글은 그리스 비극 속 세 가지 ‘가족 살해’의 서사를 통해,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슬픔 앞에서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오이디푸스의 ‘부친 살해’, 데이아네이라의 ‘남편 살해’, 아가우에의 ‘자식 살해’는 모두 의도하지 않은 범죄였다. 그리고 그 결말은 하나같이, 개인의 삶을 넘어선 ‘세상의 소멸’이었다.


1. 부모의 죽음 – 오이디푸스의 붕괴

『오이디푸스 왕』은 죽음을 둘러싼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그것을 막지 못했는가?” 오이디푸스는 부친 라이오스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집요하게 진실을 좇는다. 그러나 끝내 마주한 진실은 끔찍하다. 부친을 죽이고, 모친과 결혼했으며, 그 사이에서 자식을 두었다는 사실. 그에게 남은 것은 죄책을 넘어선 ‘존재 자체의 붕괴’였다.


“지금 나는 사악에서 태어난 사악한 자로 밝혀졌으니 말이오.”
— 『오이디푸스 왕』 1397행


운명을 피하려던 발걸음이 결국 운명으로 이끈 길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신이 미워하는 자”라 규정한다. 부모는 세상의 기원이자 삶의 뿌리이다. 그런데 자신이 그 뿌리를 파괴했다는 자각은 곧 자기 존재의 기반이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그의 비극은 부친의 죽음보다, 그 죽음이 자신의 손으로 이루어졌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2. 배우자의 죽음 – 데이아네이라의 절망

사랑이 사랑을 파괴했을 때, 그 비극은 죄책감의 심연을 낳는다. 『트라키스 여인들』에서 데이아네이라는 남편 헤라클레스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넷소스의 피를 바른 옷을 보낸다. 그러나 그것이 치명적인 독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절망에 빠진다.


“아무튼 나는 결심했어요.
만일 그이가 죽게 되면 그 타격에
나도 그이와 함께 죽기로 말예요.”
— 『트라키스 여인들』 719-720행


사랑을 되돌리고자 한 간절한 마음이 오히려 죽음을 불러왔을 때, 그 슬픔은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사랑을 파괴했다는 고통으로 바뀐다. 데이아네이라는 헤라클레스의 죽음 앞에서 단순한 ‘부재’의 슬픔을 겪은 것이 아니다. 그녀는 ‘내가 그를 죽였다’는 자각을 견딜 수 없었고, 그 죄책감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이 비극은 사랑이 사랑을 삼켜버리는, 자기모순적 비극의 얼굴을 드러낸다.


3. 자식의 죽음 – 아가우에의 광기

자식의 죽음은 부모에게 세상의 종말을 뜻한다. 그러나 『박코스의 여신도들』은 그 종말을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그린다. 디오니소스가 퍼뜨린 광기에 사로잡힌 아가우에는 자신의 아들 펜테우스를 맹수로 착각하고 찢어 죽인다. 제정신을 찾은 뒤, 그녀는 처참한 시신을 마주하고 절규한다.


“이 아이가 내 아들이란 말입니까?
나는 어떤 만가를 불러야 하나요?”
— 『박코스의 여신도들』 재구성


아가우에의 비극은 단순한 상실이 아니다. 자식을 죽인 자가 바로 어머니 자신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모른 채 시신을 끌어안고 돌아온 아이러니야말로 비극의 극치이다. 그녀는 슬픔을 넘어 당혹감과 죄책감, 그리고 추방이라는 이중의 상처를 겪는다. 그녀의 고통은 그 어떤 언어로도 치유될 수 없는, 근원적 절망이다.


부모는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존재이며, 배우자는 함께 세상을 만들어가는 동반자이고, 자식은 우리 세상을 온전히 채워주는 존재다. 그들의 죽음은 곧 세상의 일부가 무너지는 경험이다. 그러나 그 죽음이 ‘의도치 않은 살해’로 빚어졌을 때, 그것은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세상의 소멸’이 된다.


오이디푸스는 부친을 죽였다는 진실 앞에서 눈을 멀고, 데이아네이라는 사랑을 살리려다 그 사랑을 파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아가우에는 아들을 찢어 죽인 죄책감 속에서 세상으로부터 추방된다. 이들 모두는 소중한 세계를 지키려다 오히려 파괴한 자로 남는다.


그들은 단순히 죽음을 ‘겪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죽음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비극은 곧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이 된다. 가족은 세상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리고 그 세상이 ‘자신의 손’에 의해 무너질 때, 인간은 더 이상 그 세상에 머물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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