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그곳, 새로운 무대

마리 클레멘타인이었던 여인, 수잔 발라동

by 말하는 돌

모든 생명의 시작은 찬란하지만, 그 찬란함은 언제나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1865년 9월 23일, 프랑스 리무쟁의 작은 마을 베신에서 한 여자 아이가 축복 대신 수군거림 속에서 태어났다. 그 울음의 주인, 마리 클레멘타인에게 아버지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누구의 아이인지조차 불분명한 운명. 어머니 마들렌은 홀로 딸을 품었고, 세탁부의 손은 매일 피로에 젖어 있었다.


가난한 모녀를 받아준 몽마르트르의 뒷골목은 곧 그녀의 세계가 되었다. 도시의 화려한 중심에서 밀려난 자들이 모여드는 어둑한 골목. 세탁부와 재봉사, 술집 종업원, 광부, 그리고 예술가들이 엉켜 사는 곳. 밤마다 적포주가 흐르고, 고단한 노동자들의 웃음과 욕설, 춤과 노래가 뒤섞이며 불빛을 흔들었다. 어린 소녀에게 그곳은 배움의 학교이자 삶의 전쟁터였다. 어머니의 손길은 늘 부족했고, 술에 기대어 무너져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봐야 했다. 소녀는 엄마의 품보다 엄마의 절망을 먼저 알아버렸다. 그리하여 더욱 거칠게, 더욱 사납게 세상과 맞섰다.


열한 살의 소녀는 규율과 억압을 거부했다. 교실의 벽을 기어오르고, 발코니에 매달리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분노로 폭발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달랐다. 연필 끝에서 흘러나오는 선과 색은 그녀의 언어였고, 그 순간만큼은 거친 세상조차 잠시 물러났다.


몽마르트르의 아이들에게 삶은 일찍 다가왔다. 그녀 역시 열 살을 갓 넘겨 생계의 길로 내몰렸다. 식료품점, 술집, 세탁소, 재봉실. 어디서든 그녀는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그러나 수동적으로 명령을 따르는 일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녀에게 자유는 숨결처럼 필수였다. 그래서 말과 함께하는 시간을 사랑했다. 거대한 말의 곁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속박을 잊었다. 그리고 말의 등을 타고 거리에서 묘기를 부리며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을 때, 소녀의 눈동자 속에 작은 불씨가 피어올랐다.


그 불씨는 그녀를 서커스로 이끌었다. 변화무쌍한 무대, 공중에서 휘몰아치는 몸, 뜨거운 환호와 박수. 그곳에서 비로소 그녀는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열네 살의 단원 마리 클레멘타인은 조명의 한가운데에서 삶의 에너지를 분출했다. 그러나 영광은 짧았다. 열다섯, 곡예사의 자리를 대신해 무대에 오른 순간,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박수갈채가 아닌 추락이었다.


땅으로 떨어진 것은 육체만이 아니었다. 스스로 선택했던 미래, 가난을 벗어날 희망, 주인공이 될 꿈마저도 함께 무너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추락은 또 다른 문을 열었다. 다친 몸이 강제로 건네준 시간 속에서 그녀는 튈르리 정원과 뤽상부르 공원을 거닐었고, 교회의 천장과 미술관의 그림 앞에 오래 머물렀다. 그때 처음으로 그녀의 눈은 고단한 삶 너머의 세계를 보았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어디든 앉아 선을 그렸다. 종잇조각이든 벽이든, 그 위에 펼쳐지는 선은 그녀의 또 다른 호흡이었다. 서커스의 무대가 사라진 자리에, 예술이라는 무대가 열리고 있었다. 곧 이탈리아 출신의 친구 클레리아가 화가들의 모델 일을 소개했다. 마리 클레멘타인은 주저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서커스의 공중에서처럼, 다시금 무대의 주인공이 되고자 한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전 01화경계 위의 여인, 수잔 발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