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발라동과 퓌비 드 샤반느
마리 클레멘타인이 처음으로 선 무대는 1880년, 퓌비 드 샤반느의 화실이었다. 그는 당대 프랑스에서 가장 존경받던 화가로, 장대한 알레고리와 종교적·상징적 장식화를 통해 “프랑스를 위한 화가”라 불렸다. 판테온과 소르본, 리옹 미술관과 보자르 도서관의 벽에는 그의 손길이 남아 있었고, 그 안에는 인류의 이상과 신화적 세계가 숨 쉬었다. 그의 색채는 프레스코처럼 건조하고 매트했으며, 인체는 관능을 덜어내고 상징으로 정제되었고, 풍경은 현실의 질감을 넘어선 철학적 울림을 담아냈다.
샤반느의 세계관이 집약된 작품이 1883년에 완성된 〈꿈〉이다. 화면 왼편에는 나무둥치에 몸을 기대고 깊은 잠에 빠진 나그네가 있다. 그 머리 위로는 달빛이 흘러내리는 푸른 밤하늘이 펼쳐지고, 그 위로 세 명의 여인이 흰 옷자락을 날리며 떠다닌다. 한 여인은 꽃을 흩뿌리고, 다른 이는 월계관을 치켜들며, 마지막 한 명은 별빛을 쏟아낸다. 지상에 쓰러진 인간의 나약함과 천상에서 내려오는 이상과 영감이 선명히 대비되며, 현실과 꿈의 경계가 은밀히 무너진다.
열여섯의 어린 소녀 마리 클레멘타인은 이 시기 그의 화폭 속 여성 형상의 원형이 되었다. 화가는 수많은 뮤즈를 그려내기 위해 그녀의 몸을 여러 각도에서, 여러 포즈로 옮겨 담았다. 당시 오십 대 후반에 접어든 화가와 세상과 맞서던 예민한 소녀 사이에는 묘한 긴장이 흘렀다. 그러나 화폭 위에서 그녀의 몸은 곧 개인적 흔적을 잃었다. 더 이상 마리 클레멘타인이 아니었다. 이름은 지워지고, 꿈의 화신, 무명의 뮤즈로만 남았다. 샤반느에게 여성 모델의 몸은 영원한 알레고리를 구현하기 위한 재료였을 뿐, 삶의 주체성은 배제된 채 환영으로만 존재했다.
이듬해 샤반느는 리옹시의 주문으로 〈예술과 뮤즈들의 성스러운 숲〉을 제작했다. 이 작품에서도 마리 클레멘타인은 뮤즈의 형상으로 흡수되었을 것이다. 호수와 숲, 고전적 신전 사이에서 여성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거나 서 있고, 음악과 시, 무용과 회화의 여신으로 배치되었다. 화면 전체는 목가적 합창처럼 조화로웠지만, 그만큼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마리 클레멘타인은 곧 화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모델 중 하나가 되었다. 소녀다운 풋풋함과 수줍음, 그러나 눈빛만큼은 강렬했다. 부드러운 상아빛 피부와 풍만한 몸은 화가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뮤즈”라는 이름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십 대 소녀의 이름 앞에 붙이기에는 씁쓸했다. 그림 속에서 주인공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예술을 위해, 그들의 시선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 모델의 운명이었다.
그녀는 그림 속에서 낯선 자신을 마주했다. 겨우 열다섯 해 남짓 살아왔지만 이미 굴곡과 고난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캔버스 속의 그녀는 오직 아름다움의 화신으로만 남아 있었다. 파리 뒷골목의 가난한 냄새는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림 속 마리 클레멘타인은 자신이 아니라, 화가의 인식에 의해 규정된 타인의 존재였다.
화면 속 여인은 오른쪽으로 몸을 비스듬히 돌린 채, 어디선가 멀리로 시선을 던지고 있다. 얼굴에는 감정의 결을 숨긴 듯 무표정이 흐르고, 매끈히 드러난 상반신 위로는 빛과 그림자가 차갑게 스쳐 지나간다. 샤반느의 붓은 인상주의의 분할된 색채 대신, 묵직하고 단단한 선과 면으로 여체를 빚어냈다. 그래서 그녀의 몸은 살아 있는 육체라기보다, 대리석으로 깎아낸 조각처럼 고요히 정지한다.
허리에 올려진 왼손은 고전 조각의 휴식을 닮은 포즈를 떠올리게 하고, 하얀 천은 느슨히 감긴 채 아랫도리를 겨우 가리고 있다. 이는 순간의 나신이 아니라, 이상과 상징으로 끌어올린 알레고리의 형상이다. 배경은 회색과 보랏빛이 뒤섞인 무채색의 장막처럼 펼쳐져, 그녀의 육체를 더욱 단호하게 부각시킨다.
샤반느의 시선 아래, 마리 클레멘타인은 더 이상 한 개인의 소녀가 아니었다. 그녀의 강렬한 눈빛도, 살아 있는 기운도 지워진 채, 고전적 알레고리의 부호로 재탄생한다. 그의 그림 속 그녀는 침묵하는 알레고리의 여인이었다.
그러나 마리 클레멘타인은 모델이라는 직업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예술가들의 곁에 서 있음으로써, 동경해온 예술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델은 단순히 타인의 뮤즈가 되는 일이 아니라,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새로운 삶의 문이었다. 화가의 정부라는 편견이 따라붙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가난하고 미천한 출신의 소녀에게는 지켜야 할 체면도, 구속도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누구보다 자유로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