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발라동과 오귀스트 르누아르
1885년, 르누아르의 눈에 비친 마리 클레멘타인은 단순한 흉상으로 그려졌다. 옆모습의 그녀는 고요히 앉아 먼 곳을 응시한다. 한쪽 어깨를 드러낸 채, 단정히 묶인 머리와 곧은 콧대, 살짝 내민 입술은 차분한 기운을 풍긴다. 갈색빛 머리칼은 거칠고 두터운 붓질 속에서 불꽃처럼 일렁이고, 피부는 분홍빛과 살구빛이 번지며 빛을 머금는다. 황토빛 조각난 배경은 그녀의 윤곽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내고, 얼굴은 고전 조각처럼 단단히 고정된다.
르누아르는 이 초상에서 그녀를 평온하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담아냈다. 그러나 그 시선은 마리 클레멘타인의 실제와는 어긋나 있었다. 화면 속 그녀의 눈빛은 정적이지만, 현실의 그녀는 이미 모델을 넘어 화가로 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초상은 결국 ‘모델 발라동’을 기록하는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화가 발라동’을 예고했지만, 그것은 결코 그녀의 전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실제로 작업실은 마리 클레멘타인에게 평온한 공간이 아니었다. 화가에게는 창조의 무대였으나, 그녀에게는 타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터였다. 대상화된 시선을 수없이 견뎌야 했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가까이서 그림이 태어나는 과정을 목격했다. 날것의 이미지가 선과 색으로 겹겹이 살아나는 순간을 보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연필을 쥐었다. 쉬는 시간마다 거친 선을 이어가며, 화면 너머의 세계로 나아가려 했다.
그러나 르누아르는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의 재능을 모를 리 없었지만, 모델은 동료가 될 수 없다는 선을 그었고, 마침내 그녀를 화실에서 쫓아냈다. 마리 클레멘타인은 그 길로 뮤즈의 자리를 버리고 스스로 선택한 길로 들어섰다.
그녀에게 주어진 조건은 최악이었다. 교육도, 자산도, 명예도 없었고, 사생아이자 화가의 정부라는 낙인까지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잃을 것이 없었기에 두려움도 없었다. 인상주의의 흐름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역설적으로 그런 위치 덕분이었다.
세상은 불공평했으나 동시에 공평했다. 안락한 삶은 허락되지 않았으나,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재능이 그녀에게 주어졌다. 삶의 밑바닥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았고, 사회의 민낯을 어린 시절부터 목격해 왔다. 그 눈은 꾸며진 일상이 아닌 진실된 현실을 담아내게 했다. 그래서 그녀는 생계의 무게 속에서도 원하는 것 앞에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