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발라동과 툴루즈-로트렉
마리 클레멘타인이 살던 낡은 건물의 꼭대기에는 작은 아틀리에가 있었다. 그곳은 몽마르트를 상징하는 화가, 툴루즈-로트렉의 작업실이었다. 그는 화가이자 판화가, 풍자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19세기 말 파리의 다채롭고 연극적인 삶 속에 깊이 몸을 담그며, 그 시대의 퇴폐와 매혹을 우아하면서도 도발적으로 담아낸 예술가였다.
귀족으로 태어났으나, 그는 스스로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집안의 근친혼이 남긴 유전적 결함과 어린 시절의 낙상 사고는 그의 성장을 멈추게 했고, 성인이 되었을 때도 키는 152센티미터에 불과했다. 뒤뚱거리는 걸음은 그의 숙명이었으나, 불편한 몸은 오히려 파리의 뒷골목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바라보는 눈을 길러 주었다. 마리 클레멘타인을 향한 그의 시선 역시 달랐다.
몽마르트르의 윤락가를 드나들던 로트렉은 베네치아 출신 화가 페데리코 잔도메네기를 통해 그녀를 알게 되었다. 거칠고 자유로운 기질은 그에게 강렬한 매혹으로 다가왔고, 두 사람은 원치 않았으나 짊어져야 했던 숙명을 공유했다. 귀족이면서도 귀족답게 살 수 없었던 불구의 화가, 사생아로 태어나 어린 나이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했던 여인. 그림은 두 사람에게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삶을 가르는 또 하나의 운명이었다.
함께 스케치를 하고, 그녀는 그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로트렉의 화폭 속에서 마리 클레멘타인은 르누아르나 샤반느의 그림 속 여인처럼 이상화되지 않았다. 그의 그림 속 그녀는 고독과 슬픔, 세월의 흔적을 가감 없이 품고 있었다. 르누아르의 화폭 속에서 웃음을 머금던 여인은 사라지고, 로트렉의 캔버스 위에서 그녀는 고단한 현실을 껴안은 채 앉아 있었다.
1884년작 〈아이를 품은 마리아 빅〉은 바로 그녀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어두운 배경 속, 창백한 여인이 소파에 몸을 기대고 있다. 피부는 따스한 빛을 거부하듯 희미하고 차갑다. 회색과 푸른 기운이 뒤섞여, 햇살이 닿지 않는 돌처럼 굳어 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미약한 체온이 흐른다.
그녀의 눈빛은 정면을 향하면서도, 그 시선은 멀리 흩어져 있다. 피곤과 체념, 무심함이 겹겹이 배어든 눈. 굳게 다문 입술은 침묵 속의 단호함을 말해준다. 나체의 여인이지만, 그녀는 관능을 허락하지 않는다. 드러나는 것은 오직 현실의 무게와 육체의 생생한 질감뿐이다.
배경에는 기묘한 오브제들이 매달려 있다. 한쪽에는 깃털 장식이, 다른 한쪽에는 가면 같은 얼굴이 걸려 있다. 그것들은 무대의 장식처럼 보이면서도, 불길한 기호처럼 다가온다. 마치 그녀를 둘러싼 세계가 진실이 아닌 가면극임을 드러내는 듯하다.
그러나 클레멘타인은 그 모든 소품과 배경을 압도한다. 거칠게 남은 붓질, 다듬어지지 않은 선, 매끈하지 않은 살결 속에서 그녀는 오히려 더욱 단단히 존재한다. 이상화되지 않고, 꾸며지지 않고, 거짓 없는 육체로서.
툴루즈-로트렉의 화폭 속 마리 클레멘타인은 뮤즈로 소비되는 여인의 몸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무게를 지탱하는 한 인간의 몸이다. 동시에 이 초상은 훗날 발라동이 스스로 그려낼 수많은 여성 누드의 서막처럼 다가온다. 남성 화가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기 눈으로 여성을 응시하려 했던 그 불씨가 이미 이 자리에서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