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하는 빛과 그림자

수잔 발라동과 에드가 드가

by 말하는 돌

몽마르트르의 언덕은 언제나 안개와 술기운에 잠겨 있었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다락방과 카페, 값싼 포도주의 향과 담배 연기, 낡은 벽돌 틈새로 스며드는 바이올린 선율이 겹겹이 얽히며, 언덕은 하나의 거대한 무대처럼 살아 숨 쉬었다. 그곳에서 수잔 발라동은 곡예사의 꿈을 접고 그림 모델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진짜 무대는 캔버스 앞이 아니라, 모델의 자리를 벗어난 고요한 모퉁이였다. 사람들이 떠난 뒤 홀로 남은 그녀는 종이 위에 거칠고도 단단한 선을 새겨 넣었다. 그것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행위였다.


그 비밀스러운 선을 가장 먼저 알아본 이는 까다롭고 냉혹하다고 소문난 노화가, 에드가 드가였다. 그는 인상주의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불렸지만, 스스로는 사실주의자라 여겼다. 많은 화가들이 야외에서 빛을 좇을 때, 드가는 실내에서 무용수들의 무대와 여성의 목욕 장면을 응시하며 움직임과 육체의 긴장을 포착했다. 그는 발레 무용수와 목욕하는 여인, 경주마와 기수, 그리고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초상화를 그렸다.


드가는 젊은 화가들의 호의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았고, 칭찬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발라동의 드로잉 앞에서는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마침내 단호히 입을 열었다.
“너는 모델이 아니라, 화가야.”


그 한마디는 발라동에게 세상의 어떤 증명보다 값진 선언이었다. 가난과 성별, 교육의 결핍이 그녀 앞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그 말은 벽에 처음 생긴 균열처럼 빛을 스며들게 했다. 그녀는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그제야 확실히 보았다. 드가는 발라동에게 에칭 기법을 가르쳐주었고, 그녀를 “훌륭한 예술가”라 불렀다. 또한 동료들에게 그녀를 재능 있는 화가로 소개했으며, 그녀의 작품을 직접 구입하고 살롱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드가가 전해준 것은 단순한 기술만이 아니었다. 그는 몸의 구조를 꿰뚫는 눈, 드로잉의 정직함, 반복을 통한 집요한 몰두를 가르쳤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발라동의 고집과 자유를 존중했다. 그녀의 선이 지닌 투박한 힘과 주저 없는 용기를 누구보다 먼저 읽어낸 것이다.


발라동의 드가에 대한 존경심은 작품 속에서도 감지된다. 그녀가 그와 긴밀한 친분을 나눈 것은 확실하지만, 그가 그녀를 모델로 삼았다는 명백한 증거는 없다. 발라동은 드가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그에게 존경과 우정을 품었으며, 드가 역시 그녀의 재능을 끝까지 칭찬하고 인정했다. 그러나 발라동은 그의 그림자에 머물지 않았다. 드가로부터 받은 확신을 무기로 삼아, 누구도 닦아놓지 않은 길을 스스로 걸어 나갔다. 그녀의 그림 속에서 여성의 몸을 주체로 세우는 뚜렷한 윤곽선은, 아마도 드가의 눈 속에서 처음 피어난 불씨가 오랫동안 그녀 안에서 타올라 맺은 결실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히 스승과 제자의 구도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드가는 그녀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었지만, 동시에 그녀를 통해 잊고 있던 젊은 열정을 다시금 발견했다. 발라동은 그의 인정을 발판 삼아 나아갔지만 결코 그의 뒤를 따르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만의 태양을 세웠고, 드가는 그 빛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그들의 만남은 길지 않았다. 그러나 짧은 교차는 발라동에게는 존재할 권리의 확신을, 드가에게는 잊히지 않을 자유의 불꽃을 남겼다.


스승 없는 제자, 제자 없는 스승.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며, 서로의 눈 속에서 빛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빛은 훗날 발라동이 그려낸 수많은 누드와 자화상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전 10화모순과 고독의 초상, 숙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