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는 얼굴, 닮은 운명

수잔 발라동과 모리스 위트릴로

by 말하는 돌

발라동에게도 열여덟 살에 엄마가 된다는 일은 버거웠다. 그녀는 아이의 아버지를 끝내 밝히지 않았다. 성인이 된 모리스가 자신과 너무도 닮아 있었기에 그 비밀은 더욱 깊어졌고, 결국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로 남았다. 그러나 아이에게 최소한의 사회적 울타리를 마련해 주고자 하는 듯, 스페인 출신의 화가 미겔 위트릴로가 법적인 아버지를 자처했다. 19세기말 파리를 오가며 수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하던 그는 발라동을 만나 그녀의 매혹에 사로잡혔고, 1889년 어린 모리스를 자신의 호적에 올렸다. 그 순간 여덟 살 소년 모리스 발라동은 모리스 위트릴로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다.


발라동에게 그 선택은 아이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막이었을 것이다. 사생아라는 낙인보다 안정적인 성이 더 나을 것이라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름 하나가 아이의 상처를 지워주지는 못했다. 발라동은 너무도 젊었고, 너무도 지쳐 있었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 그림을 팔아야 했고, 화가로서 자리를 굳히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해야 했다. 그 고단한 삶을 잠시라도 잊고자 몽마르트르의 밤을 떠돌며 술과 웃음 속에서 짧은 위안을 찾았다.


그 사이 모리스는 사랑에 굶주린 채 자라났다. 혼자가 익숙했고, 교실보다는 파리의 뒷골목을 더 편안히 여겼다. 몸을 떨거나 경직되고, 입술을 깨물거나 숨을 참는 기이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엄마 대신 할머니 마들렌이 손자를 돌보았으나, 그녀 역시 술로 고단한 삶을 견디던 사람이었다. 결국 손자를 달래려 건넨 한 모금의 술이 화근이 되어, 모리스는 열 살 무렵부터 술에 취한 아이들과 어울리며 술을 배워버렸다.


어린 모리스는 이미 쓸쓸했다. 단단한 얼굴선과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졌지만, 눈빛에는 처연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마른 얼굴과 멍한 시선 속에서 행복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미혼모와 사생아라는 출생의 기록은 발라동에게 과거이자 현재였으며, 지워지지 않을 미래이기도 했다. 그녀는 닮지 않기를 바랐던 운명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아들을 바라보며 어떤 심정이었을까. 화가이자 어머니, 집안의 가장으로서, 살뜰한 보살핌보다 더 절박했던 것은 눈앞의 시간을 버텨내는 일이었다.


세월이 흐른 뒤, 모리스 위트릴로는 어머니의 옆모습을 그렸다. 그 초상은 긴 침묵처럼 다가온다. 절제된 구도를 취한 채, 말없이 놓여 있지만, 그 안에는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수많은 이야기가 겹겹이 서려 있다. 굳게 다문 입술은 내뱉지 못한 말들의 무게를 삼킨 듯 무겁고, 먼 곳을 향한 눈길은 현실 너머로 달아나듯, 혹은 다가올 시간을 예감하듯 깊게 가라앉아 있다.


머리칼은 단정히 묶였으나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가느다란 곱슬머리는 고집과 자유를 동시에 암시한다. 붉은빛이 감도는 머리칼은 저녁노을처럼 은은히 번져, 지친 하루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꽃을 보여준다. 어두운 옷자락은 그림자처럼 무겁게 드리워져 있지만, 그 속에서 얼굴의 선명함과 단호함이 더욱 또렷이 떠오른다. 화려함을 거부하는 굳세고 절제된 선들은 오히려 강렬한 존재감을 남긴다.


이 초상은 단순히 한 여인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아들이 바라본 어머니의 얼굴이자, 동시에 화가가 바라본 또 다른 화가의 얼굴이다. 위트릴로의 시선에는 존경과 애정, 그리고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거리감이 동시에 깃들어 있다.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언제나 고통과 긴장을 동반했던 관계. 그 복잡한 심리가 화면 전체에 스며 있다.


그래서 이 초상 속 발라동은 단순한 아름다움으로 남지 않는다. 그녀는 피로에 젖어 있고, 고독에 둘러싸여 있으며, 동시에 꺾이지 않는 의지를 품고 있다. 그녀의 얼굴은 삶을 견디며 얻어진 고유한 주름과 긴장,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강인한 기품을 증언한다. 위트릴로가 남긴 것은 단지 어머니의 초상이 아니라, 시간과 운명을 정면으로 마주한 인간 발라동의 초상이다. 그 침묵은 더없이 크고, 그 고요는 더없이 깊다. 그래서 보는 이는 오래 머물며 응시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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