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협화음의 사랑

수잔 발라동과 에릭 사티

by 말하는 돌

수잔 발라동이 남긴 첫 번째 유화는 다름 아닌 에릭 사티의 초상이었다.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사티는 20세기 파리 아방가르드 음악의 한가운데서도 가장 기이하고 독창적인 인물로 꼽혔다. 미니멀리즘과 부조리극의 선구자로 불리던 그는 1893년, 생애 유일한 연애로 알려진 다섯 달간의 시간을 발라동과 함께 보냈다. 첫날 밤을 보낸 직후 청혼했으나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대신 발라동은 사티가 살던 코르토 거리의 옆방으로 이사했다.


사티는 그녀를 ‘비키’라 불렀다. “그녀의 전 존재, 사랑스러운 눈, 부드러운 손, 작은 발”에 대해 그는 열정적인 메모를 남겼다. 그러나 집착과 매혹으로 점철된 그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사티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고딕 무곡〉을 작곡했고, 발라동은 그의 초상화를 그려 선물했다. 하지만 다섯 달 뒤 발라동이 떠나자 사티는 깊은 상실감에 빠졌다. 훗날 그는 자신에게 남은 것이 “머리를 공허로, 가슴을 슬픔으로 가득 채우는 얼어붙은 고독뿐이었다”고 회고했다.


발라동은 그 남자의 얼굴을 화면 속에 천천히 붙잡았다.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 시커먼 중절모, 목까지 조여오는 외투와 흰 셔츠. 그러나 그의 얼굴은 단순히 답답한 차림새로만 남지 않았다. 안경 너머의 눈빛은 고집스러우면서도 상념에 잠겨 있었고, 붉게 번진 입술은 미묘한 웃음을 머금은 듯 보였다. 검은 모자가 드리운 그림자는 얼굴을 둘로 갈라놓아, 한쪽은 불안하게 흔들리는 붉고 푸른 빛으로, 다른 한쪽은 차갑고 무거운 침묵으로 물들었다. 초록과 자줏빛, 검정의 붓질은 매끄럽게 정제되지 않은 채 충돌하며, 사랑과 집착, 매혹과 불안이 뒤섞인 감정을 고스란히 남겨 두었다.


그들의 사랑은 파리의 밤과 맞닿아 있었다. 사티는 1881년 문을 연 카바레 ‘검은 고양이’에서 악단을 지휘하고 피아노를 연주했다. 1882년엔 사티가 즐겨 찾던 ‘디방 자포네’는 당시 파리를 휩쓸던 자포니즘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곳으로, 그곳에서 춤추던 발라동의 모습은 사티의 눈을 사로잡았다. 검은 고양이의 성공 이후 문을 연 카바레 ‘오베르주 뒤 클루’에서도 사티는 무대에 올랐지만, 대중의 야유를 받았다. 그러나 발라동만은 그의 음악을 “최고의 발명품”이라 찬미하며, 그에게 초상을 그리게 해달라고 청했다.


두 사람은 가난했지만 서로에게 열렬히 끌렸다. 발라동이 사티의 친구이자 은행가였던 폴 무시스와 교제하고 있다는 소문조차 그들의 정열을 꺾지 못했다. 발라동은 화가로서의 자신처럼, 사티가 음악 속에서 불굴의 열정을 다하는 모습에 공명했다. 어머니를 여섯 살에 잃은 사티에게 발라동은 불꽃 같은 연인이자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히 불타오를 수 없었다. 사티는 발라동에게서 어머니의 잔상을 겹쳐 보았고, 그때부터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할 수 없었다. 발라동은 그 변심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함께 살던 집의 발코니에서 몸을 던지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절망을 표현했다. 이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몽마르트르를 떠난 사티는 줄곧 음악에만 몰두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방에는 낡은 악보들과 함께 한 점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발라동이 그려준 초상화였다. 그리고 부치지 못한 편지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는데, 수신인은 모두 발라동이었다. 아마도 사티는 홀로 남은 방에서 그 초상을 바라보며, 젊은 날의 사랑을 끝없이 되새겼을 것이다. 음악처럼 불협화음을 품은 색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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