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발라동과 앙드레 우터
1896년, 서른의 수잔 발라동이 부유한 은행가 폴 무시스와 맺은 결혼은 마치 한동안의 평온을 약속하는 정원 같았다. 에릭 사티의 친구이자 부유한 은행가였던 무시스는 툴루즈-로트렉의 화실에서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변치 않는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몇 주 만에 청혼했다. 여덟 해의 기다림 끝에 이루어진 결합은 법적 형식이 모호했으나, 그녀를 경제적 궁핍에서 구해낸 사실만은 확실했다. 그는 파리 북쪽 외곽에 집을 마련해 어머니와 아들 모리스까지 함께 지내게 했고, 그 고요한 시골의 공기는 어머니에게는 안식이 되었으나 수잔과 모리스에게는 폭풍 전의 적막이었다. 안락함은 창작의 열을 서서히 식히며, 그녀의 화폭을 점점 침묵으로 물들였다.
그러나 불씨는 언제나 뜻밖의 바람을 타고 온다. 아들 모리스의 친구였던 스물두 살의 앙드레 우터. 수잔보다 스물한 살이나 어린 청년이었으나 나이는 아무 제약이 되지 않았다. 파리 18구, 알자스 이주민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훗날 발라동의 남편이자 매니저, 모리스의 의붓아버지가 된다. 1906년의 첫 만남 이후, 그는 그녀의 첫 남성 누드 모델로 서며 화단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913년,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고, 이듬해 전쟁의 문이 닫히기 직전 서둘러 결혼했다. 1918년 전장에서 돌아온 우터는 발라동과 모리스의 예술 경력을 관리하기 시작했고, 1934년 이혼 뒤에도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곁을 지켰다. 결국 두 사람은 생투앙 공동묘지에 나란히 묻혔다.
사랑의 불꽃이 뜨겁던 1913년의 한 캔버스는 여전히 선연하다. 〈머리를 빗는 수잔 발라동〉. 여인은 전신으로 서서 머리칼을 빗어 올린다. 몸을 살짝 비트는 순간 근육의 탄력과 생기가 빛의 면으로 갈라지고, 옆으로 흘린 눈길은 사적인 시간의 틈새를 연다. 뒤편 커튼은 붉고 초록, 파랑과 흰 면으로 갈라져 큐비즘의 기하를 암시하고, 피부에는 분홍과 붉은 기운이 맥박처럼 번진다. 우터의 붓질은 부드럽고 육감적이지만, 그녀를 대상화하진 않는다. 그녀는 ‘그려진 몸’이 아니라 ‘스스로 행하는 몸’. 연인과 예술가의 경계에 서서 사랑의 주체, 그 자리에 우뚝 선다.
세상은 이 사랑에 곧장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무시스와의 13년 결혼은 1908년에 끝이 났지만, 스캔들에 관대하던 무시스조차 젊은 연인만은 용납하지 못했다. 가족조차 등을 돌렸으나, 두 사람은 맹렬히 사랑했다. 스물두 살의 우터는 “그녀는 우리를 무심코 지나쳤지만, 나는 그녀에 대한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낮에는 변전소에서 일하고 밤에는 그림을 그리며, 피카소의 푸른 작업복을 흉내 내어 몽마르트르의 언덕을 활보했다. 비웃음과 편견은 있었으나, 그 불꽃은 발라동의 화구를 다시 뜨겁게 했다. 드로잉과 에칭에 머물던 그녀는 우터의 권유로 유화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더 선명한 색채, 더 살아 있는 인체. 독학의 완강함은 마침내 자기만의 언어를 얻었다.
1914년,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으나 신혼의 꿈은 곧 전쟁의 굉음에 흩어졌다. 스물아홉의 남편이 징집될 때, 수잔은 쉰 살이었다. 전쟁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흐르는 시간 그 자체였다. 젊은 남편과 중년의 자신 사이에 놓인 침묵의 간극은 잔혹하게 드러났고, 불행은 연이어 찾아왔다. 어머니의 죽음, 모리스의 알코올 중독과 재수용. 수잔은 고통이 밀려올수록 더욱 치열하게 그림에 매달렸다. 그림만이 삶을 견디는 힘이었기 때문이다.
1917년, 요양소에서 부상당한 우터를 마주했을 때, 복도 끝의 재회는 설렘과 기쁨이 겹쳐 있었다. 1920년 그가 제대해 돌아왔으나, 두 사람의 풍경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연인과 동반자의 자리는 점차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과 작품을 관리하는 딜러의 그림자로 변해갔고, 세월은 사랑의 불꽃을 서서히 바래게 했다.
그러나 1921년, 우터가 그린 수잔의 초상 앞에서 시간은 멈춘 듯하다. 창가에 앉은 발라동, 흰 블라우스와 어두운 치마, 손에는 공작 깃털의 부케. 단단한 선으로 그려진 얼굴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사유의 무게를 견딘다. 발치의 노란 모자와 파란 리본은 절제된 의상과 묘한 긴장을 이루고, 열린 창 너머의 나무와 지붕, 탁자 위 과일 접시와 금속 주전자는 풍요와 일상의 상징으로 놓였다. 무겁게 드리운 커튼은 수직의 중력을 형성하며 공간에 깊이를 더한다. 색조는 절제되어, 붉은 바닥과 노란 모자, 과일의 온기만이 화면을 은은히 밝힌다. 이 초상에서 그녀는 단순히 사랑스러운 아내가 아니라 동료 예술가로, 이상화되지 않은, 미소조차 없는 얼굴로 건조한 존중의 빛을 받는다.
결국 수잔의 생은 사랑과 그림이 서로를 밀어 올리며 흘렀다. 세상의 시선은 언제나 곱지 않았으나, 그녀는 타인의 화폭에 갇힌 대상이 아니라 자기 삶의 화가였다. 그리고 그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 앙드레 우터. 그는 모델이자 연인이었고, 매니저이자 끝내 같은 흙을 덮은 동반자였다. 두 사람의 이야기와 두 점의 초상은 격렬하게 타올랐고 이내 식어버린 사랑의 온도와 색깔을 그녀의 얼굴 위에 나눠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