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만화 도전기 03. 실패

실패를 기록하기는 성공

by 말복



지원사업이 사라졌다. 대단히 열심히 준비하던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맥이 더 탁- 풀려버리고 말았다. 본업이 바빠지면서 천천히 하려고 했던 만화는 이미 멈춘 거나 다름없었고, 점점 우선순위에서 밀려 나갔다. 결국 얼마 남지 않던 의욕마저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 실패를 돌아볼 수 있었다. 처음엔 자책했다. '또 해내지 못했다'라는 생각과 '하필 또 타이밍이 이렇게 되어버리네' 하는 생각들이 파일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이제는 차라리 잘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실패담으로도 나름의 깨달음이 있었으니까.




그중 하나는 '선언'의 양면성이다. "저 이거 꼭 할 거예요!"라고 당당하게 외치면 뭔가 될 것 같았었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는 선언하면 좋다는 글을 보고 한참 선언을 많이 하던 때였다. 이 단편 만화도 그때 시작했다. 그즈음엔 선언하고 해내던 것들이 있었으므로, 이 만화도 그렇게 하면 진행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족쇄가 되어버렸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고, 거기에 신경 쓸 시간이 없는데, 온종일 만화 일을 하다가 또 만화를 들여다보면 숨이 막혔다. 또 어시 일을 하거나 피디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만화를 도와주고, 피드백하다 보니 거기에 한참 못 미치는 내 원고가 제일 답답했다. 10분 전에 다른 사람 원고를 피드백해 놓고 내 원고는 이 난리라고? 그럴수록 완성주의가 되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쉽게 전환이 되지 않았다. 때마침 알람이 온다. 피디님, 원고 보내드립니다….


우선순위의 중요성도 더 깨달았다. 이미 알고는 있지만 온갖 일들이 섞여버린 요즘엔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너무 바빠서 일이 계속 밀리고, 밀리고, 또 밀리다 보면 모든 일이 다 시급하다. 안 밀리는 방법은 없다. 일이 없는 날이 없다. 모든 일을 끝낸 날도 없다. 그냥 그 정도로 바쁘다. 하루하루가 마감일이었다.


그 와중에 개인적으로 포트폴리오도 업데이트해야 했다. 실은 그게 제일 중요했다. 그런데 일만 하다 하루가 다 끝나버렸다. 하루가 끝났지만 억지로 잠을 줄여 포트폴리오를 조금이라도 손을 보다 보면, 단편 만화는 들여다볼 시간조차 없었다. 생각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지금 돌아보면 억지로 단편 만화를 했다고 한들 내 상황이 더 좋아지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것. 만약 그러느라 일을 제대로 끝내지 못하거나, 포트폴리오가 멈췄다거나 했다면 오히려 더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모든 도전이 성공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실패담도 기록하기로 이 시리즈를 만들었지만, 막상 실패담을 쓰려니 마음이 무거웠었다. 내심 성공담을 쓰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그럴수록 오히려 내게 성공보다 더 필요한 건 도전과 실패다. 도전하고 실패하는 과정에서 단단해지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직접 깨달아야 한다. 올해 읽었던 책 'what do you want?' 내용 중에 실패를 계획하기라는 방법이 나온다. 실패를 계획하고 실패에 성공함으로써 나아가는 방법인데 내게 필요한 게 딱 그거다. 실패. 그래서 앞으로도 시기가 맞지 않거나 준비가 부족하거나 하는 이유로 실패할 예정이다.


그래도 나중에 언젠가는 다시 단편 만화에 도전하고 싶다. 하지만 그땐 좀 더 다르게 도전해야겠지. 실패로 깨달은 것들이 있으니까. 거창한 선언 대신 조용히 준비하면서, 내게 더 맞는 방법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우선순위를 잘 살펴보고 계획해야겠지. 본업과 균형을 맞추면서.


그래도 실패한 덕분에 겸손해질 수 있었고, 내 속도로 걸어가는 법도 조금은 익혔다. 현재 내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가 어느 정도인지도 깨달았다. 지금은 이 깨달음으로 만족하려한다.


그래서 단편만화 도전기는 실패!




실패도 가감없이 쓰고 싶었던 도전 일지는

실패를 쓰기 두려워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드디어 !

실패담을 올리게 되었어요.

그래도 실패를 기록하기는 성공입니다.


네? 네.

그냥 그런 걸로 해주세요. 머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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