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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Oct 18. 2017

얼킨(Ul:Kin), ‘Honor’에 대해 묻다

2018SS 헤라 서울패션위크 리뷰

2017-10-17


2018 춘하 헤라서울패션위크가 오늘 17일부터 21일까지 DDP에서 열린다. 5일간의 대장정, 그 첫 쇼는 얼킨(Ul:Kin) 이성동의 컬렉션으로 시작되었다.


지난 시즌까지 GN 무대에서 쇼를 펼쳤던 이성동이다. 그가 메인 컬렉션으로 올라오면서 S2도 아니고, S1에서 첫 쇼를 연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사실 나는 약간 염려스러웠다. GN 스테이지와 S1 스테이지의 압도적인 스케일의 차이, 과연 관객도 의상도 이 공간을 채우기에 충분할까.  


그러나 11시경, 놀랍게도 객석은 관객으로 서서히 가득 차기 했다. 얼킨의 쇼장에는 유명 연예인으로 법석을 떠는 소리는 없었다. 대신, Stans라는 VR기업 (얼킨의 이번 쇼 공식 파트너사다)의 독특한 키메라로 쇼장을 촬영하는 모습이 게스트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쇼 노트에는 무려 9개의 파트너사가 소개되어 있었다. IT기업부터 커피 회사, 국립박물관까지 망라하는 그의 파트너들을 보고 있자니 그가 자신감 있게 S1을 택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쩌면 이성동은 연예인에 의지해온 다른 디자이너들과는 달리, 밀레니얼다운 새로운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Honor’란 이름의 쇼 노트에서 이성동은 이렇게 적고 있었다.


군인에게 군복은 수의이다.  전사하는 순간에 군복은 그에게 명예로운 수의가 된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에겐 어떤 보상과 존중이 돌아가고 있을까... 숭고한 희생을 그려야 할 훈장이 일부 정치인들의 권세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이중성..

‘밀리터리’, ‘수의, ‘이중성’이란 코드는 쇼에서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며 실체를 드러냈다.

얼킨이 그려내는 밀리터리 룩들은 수의를 연상시키는 린넨으로 재단되었다. 이성동은 여기에 중의법적인 서술을 더했다. 어떤 아우터들은 간결한 메탈 클립이 더해져 빛나는 엣지를 드러내는가 하면, 어떤 아우터들은 끝단이 컷오프되어 힘없이 올풀린 모습으로 등장했다. 어려운 주제의 쇼노트였지만, 디자이너는 모순 없이 자기 안의 영감들을 소화시켰다.


바이어들을 사로잡을 아이템은 역시 니트였다.

지난 FW에 이어 이성동은 다양한 2way 방식의 니트를 제안했다. 언밸런스한 소매의 박시 크롭트 니트는 넓은 밑단을 가볍게 묶거나 그대로 늘어뜨려 입을 수 있었다. 또 가디건과 풀오버들은, 소매에 달린 단추를 풀면 멋진 케이프가 되었고, 단추를 채우면 독특한 드레이퍼리와 볼륨을 만들어내었다.


쇼는 이전의 얼킨 쇼에 비해 한층 성숙하고 지적이었다. 얼킨 특유의 젊은 감각을 일깨운 건 적절한 데님, 페일한 스트라이프와 체크들, 간간이 등장한 스포티한 스웻팬츠와 후드들이었다.


지난 FW 컬렉션 이후 겨우 6개월이 지났다. 한층 시크해지고 노련미 넘치는 쇼를 보고 있자니 한편으론 재기발랄하고 컬러풀한 과거의 얼킨이 그립기도 했지만, 이제 평범한 영캐주얼에 머물기엔 이성동은 이제 너무 훌쩍 커버렸다.


다소 비슷한 아이템의 반복이 많아 보이기는 했다. 린넨이나 니트 중 어디서건 더 거친 질감에서 고운 질감까지 베리에이션 했으면 어땠을까란 아쉬움도 남았다. 그러나 이번 쇼는 이성동의 첫 메인 컬렉션이자 단독쇼다. 그에 비해서는 이성동이 오늘 보여 준 것들은 두말 할 것 없이 훌륭했다.  



어찌 보면 GN을 졸업하다는 건, 디자이너에겐 쇼를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 순간에 정식으로 쇼를 열 결심을 하고, 여러 파트너를 모으고, 이 많은 착장수의 유니크한 제품들을 완성시킨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디자이너가 스스로 뛰어난 비즈니스맨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다. 오늘 두 가지 모두에서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준 이성동의 새로운 출발에 부디 밝은 앞길이 펼쳐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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