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희 Feb 13. 2018

아트와 테크 사이,
파츠파츠(PARTs PARTs)

시대를 앞선 한국의 스마트부띠끄 

부암동은 참 예쁜 동네였다. 서울이 너무 삭막할까봐 마지막 남겨놓은 골목길 중 하나. 
미술관과 소박한 카페, 나즈막한 빌딩들 즐비한 아름다운 동네 입구에 파츠파츠(PARTs PARTs) 쇼룸이 있다. 

쇼룸 입구에는 디자이너 임선옥의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커다란 나비모양의 선글라스에 머리를 하나로 묶은 모습. 추운데 어서 오라고 나와 반기는 임선옥 선생님의 모습 그대로다. 

파츠파츠 출입문에 그려진 디자이너 임선옥의 캐릭터
질캐릭터와 똑같은 모습으로 반겨주는 선생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확실함 속에 배어있는 따뜻함에 놀라곤 한다. 

“내가 서울을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알아? 신사동 가로수길 원년멤버였다가.. 이태원에도 있었다가.. 그러다 부암동도 아주 초기에 왔지.”


맞는 말이다. 모든 핫한 동네의 처음에는 파츠파츠 쇼룸이 있었다. 신사동 1세대에서, 이태원 1세대, 그리고 부암동 1세대 로이어 져 온 선생님의 발자취는 참으로 빨랐다.

사실 내가 부암동 쇼룸을 찾아온 이유도 어쩌면 바로 그 때문이다. 지금 서양에서 가장 핫한 패션 비즈니스 모델. 파츠파츠의 비즈니스 모델은 우연하게도 필연하게도 같은 BM이다. 파츠파츠는 어떻게 그렇게 일찍, 그런 형태로 탄생할 수 있었던 걸까?


패션과 미(美)에 대한 재정의


최근 서양에서 성공하는 패션 스타트업들에겐 몇 가지 공식이 있다. 
우선 비즈니스의 출발점은 디렉터가 평소에 즐겨 입던 아이템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는데서 나온다. 데님이나 니트, 스니커즈 등의 일상복에서 그들은 평소에 아쉬웠던 점에 주목한다. 그리곤 더 나은 옷을 만들 방법이 없을까 연구한다. 자신들이 원하는 옷을 구현해 줄 신소재를 개발하고 생산 방법을 연구하는데 이들이 평균적으로 투자하는 시간은 전 거의 1년이 넘는다. 그리고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특화된 제품 몇 가지에 집중한 브랜드를 론칭하는 게 최근의 흐름이다

이런 방식은 과거에 패션 브랜드가 탄생하던 방식과는 매우 다르다. 분명 '감성산업'이라는 패션산업의 바운더리 안에 있지만, 새로운 BM들은‘소재’와 ‘생산’에 단계에서 기획이 시작되며 이 과정에서 창조되는 밸류에 주목한다. 

이렇게 탄생한 브랜드들이 영국의 데님 브랜드 Dish & DU/ER(특화된 방수 데님으로 비 오는 날 입을 수 있다), 미국의 Kit &Alice(테크니컬 캐시미어를 다룬다), Outdoor Voice(매 시즌 자체 개발한 소재만 쓰는 애슬레져 감각의 브랜드)들이다. 

패션 스타트업들의 이런 행보는 주목받는 동세대 디자이너들까지 같은 테크 패션의 길로 이끌고 있다. 뉴욕 패션위크의 촉망받는 신예 브랜드 DYNE의 Christopher Bevans, 스포츠 꾸뛰르라 불리는 Acronym의 Errolson Hugh 등은 현재 모두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지금은 패션이 과연 뭔지, 디자인이란 과연 뭔지, 시대에 맞게 다시 생각하고 정의해야 돼. 지금 우린 다른 시대를 살고 있잖아."

2011년, 임선옥(IMSEONOC)이란 브랜드 이름을 버리고 새로 출범한 ‘파츠파츠’. 
파츠파츠는 이례적으로 ‘백엔드’에서 기획을 시작하는 부띠끄다. 

그동안의 패션은 언제나 ‘프런트엔드’에서 출발했다. 즉, 먼저 멋진 스타일을 디자인하고, 이에 맞는 소재를 구하다. 그리고 이 스타일을 구현할 수 있는 제작방식을 거듭 연구해 하나의 옷이 탄생된다. 과거에 이 방식은 너무도 마땅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스마트함’ 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시대다. 사실 우리는 프런트엔드에서 출발할 때 발생하게 되는 무수한 낭비를 이미 알고 있다. 한 스타일을 위해 여러 소재와 부자재가 발주되지만, 쓰이고 남은 많은 것들은 대책 없이 버려진다. 또 제작과정이 요구하는 노동력도 어마 무지하다. 과거엔 같은 디자인의 옷을 적게는 두세 번, 많게는 예닐곱 번씩 만들었다 버렸다를 반복했다. 더 아름다운 스타일을 완성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은 과연 우리 시대의 스마트한 미학에 비추어 진정 아름다운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과연 낭비와 복잡함, 노동의 반복을 거치더라도 하나의 완벽하고 창의적인 스타일이 탄생해야 마땅하다고 공감하는 시대인가?

최근의 사회인식은 과정이 아름답지 않은 옷들은 진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쪽으로 가고 있다.

 

파츠파츠는 그래서 거꾸로 가보기로 했다. 만약 하나의 범용적 소재를 개발해 모든 스타일에 투영할 수 있다면, 그리고 옷을 재단하고 조합하는 과정을 모듈화 할 수 있다면, 디자이너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스마트한 방식의 꾸뛰르가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파츠파츠가 선택한 그 범용적 소재는 네오프렌이었다.  이 소재로 개발한 모듈화된 패턴들은 스포츠 의류로도, 포멀 웨어로도 조합이 가능한 ‘부분’(그래서 브랜드 이름이 Parts Parts다)들로 신중하게 재단된다. 파츠파츠쇼룸에 걸려있는, Zero-Waste의 미학을 구현하기 위해서 말이다.

여기에 어떻게 디자이너의 감성과 트렌드를 담아낼 것인가. 이 때문에 백엔드에서 벌어지는 파츠파츠의 R&D는 매 시즌 치열하다. 그간 파츠파츠가 개발해온 소재는 다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파츠파츠는 그동안 데님풍의 네오프렌을 개발했고, 실크풍의 네오프렌을 개발했고, 이 소재에 특화된 Seamless한 봉제법을 개발해왔다.

파츠파츠의 반향은 시장에서도 컸다. 그러나 당시로선 너무도 앞선 컨셉이었던 탓이었을까. 어쩐지 한국에서의 파츠파츠는 ‘Artful한스타일로만 소개되었다. 물론 아트는 선생님의 DNA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축이다. 그러나 이 시대를 앞서 간  이야기들이 업계에 잘 전달되지 않았다는 건 너무도 안타깝다. 아마 파츠파츠가 가진 Tech-initiative 스토리는 당시로 선 언론과 대중 모두 받아들이기 생소했던 모양이다. 

재작년 소다미술관에서 열린 임선옥 전. 유일하게 파츠파츠의 미학을 잘 전달해준 전시회였다. 이 전시는 그 해 레드닷디자인어워드를 수상했다.


“잘 돼서 감사하지만, 다들 파츠파츠의 의미보다는 디자이너 임선옥만 기억하는 거 같아. 컬래버레이션 문의가 많이 오는데.. 그냥 디렉터로서의 임선옥이 무언가 디자인해 주길 바라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테크 웨어나 스마트 철학 같은 걸 공유할 수 있는 기업은 드문 것 같고..”


마케터로서의 사고, 디자이너로서의 사고


“선생님께서 처음 파츠파츠 컨셉을 생각하게 되신 건 마케터적 발상이었나요? 아니면 디자이너로서의 영감이었나요?”

“마케터적 발상이었지” 


우린 근처의 아담한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하고 쇼룸으로 돌아왔다.
나는 전부터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고, 선생님의 짧고 망설임 없는 대답을 던져왔다.


“네? 정말요? 하지만 디자이너로서 오래 일해 오셨는데, 마케터적 발상으로 브랜드를 론칭하는 게 가능해요? 디자이너로서의 영감은요?”

“글쎄, 디자이너로서의 영감도 없지는 않았지.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 오던 거니까. 근데 마케터적 발상과 디자이너의 영감이 달라? 지금 패션이란 건 다시 정의되어야 할 거 같은데. 디자이너가 어떤 존재인지도.”


디자이너와 패션을 재정의한다---선생님이 이 얘기를 한건 처음이 아니었지만, 여러 번 이야기를 듣고 난 지금에야 비로소 느낌표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사실 패션이란 게, 디자이너가 자기 내부의 영감을 오롯이 발산해내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었던가? 생각해보면, 우리 시대는 그런디 자인들이 메아리를 잃은 지 오래되었다. 


“그러니까, 오랜 영감이 ‘때’를 만난 거군요”


잠시 선생님이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런가..? 근데… 말 참 멋있게 만든다…”

“그런가요? 하하하”

오랜기간 파츠파츠 쇼룸을 장식해온 ZERO Wate라는 문구. 어떤 의미에서 파츠파츠는 한국 최초의 스마트부띠끄다.

이순(耳順)의 복판을 지나고 있는 경력 20년의 디자이너, 늘 시대보다 앞선 길을 걸어온 디자이너에겐 권위나 가식 대신 솔직함과 소탈함이란 내공이 오롯이 남아있었다. 우린 한참을 웃었다.


말과 글로 먹고사는 직업이다 보니, 가끔 누군가가 던진 한마디가 내 안에 큰 울림이 되어 남기도 하는데, 모 자문위원회에서 선생님이 남긴 말 중에도 그런 말이 있었다.


“디자이너가 리서치를 해야 하는데, 자기 영감을 만나기 위한 리서치를 할 줄 아는 친구들이 많지가 않아.”


자기 영감을 만나기 위한 리서치. 

사실 어떤 디자이너들은 리서치란 말 자체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마치 자신의 영감은 순전히 자기 내부에서 우러나와야 한다고 믿는달까. 실제로 많은 뛰어난 디자이너들은 리서치를 한다. 그들은 복식사를 들춰보고, 타인의 쇼를 관람하고, 많은 전시회와 뮤지컬을 관람하지만, 어떤 디자이너들은 특히 타인의 쇼를 보는 거부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아마 카피 논쟁 때문이리라.


 “리서치는 자기 아카이브를 들여다보는 거야. 우리처럼 브랜드가 오래되면 자체적으로도 충분한 아카이브가 있지. 그런데 그게 없는 신예 디자이너라도, 자기가 살아온 인생, 어제 본 거, 주변에서 느끼는 걸 아카이브로 만들 수 있어야 해”

자기 내부에서만 가다듬어진 옷은 시장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자기 스토리를 담은 상품임에는 틀림없겠만, 그의 작품이 사실 시장에선 여러 경쟁상품 중 하나가 되어 걸려있는 게 현실이다. 더 경쟁력 있고 차별화된 상품을 해야 하는 디자이너가 아무런 리서치도 하지 않는다면 사실이건 어불성설이다. 그는 리서치를 해야 하고, 그것이 바로 자신의 영감을 만나기 위한 작업이어야 한다. 


패션쇼라는 계륵


“선생님, 패션쇼 시스템에 대해 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요즘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해 말들이 많은데요”

“디자이너들이 사실 패션쇼 할 기회가 많아야 하는데..”


아주 잠깐 선생님의 얼굴에 여러 생각이 스치는 듯했다.


“젊은 친구들이 사실 쇼를 해봐야 되는데.. 패션쇼를 한다는 건, 그냥 혼자 한 두벌 디자인하는 것과는 달라. 여러 벌의, 하나의 완벽한 컬렉션을 해보는 게 디자이너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데. 그걸 또 남 앞에서 보여줘야 하잖아. 젊은 친구들이 그걸 안 해 보면 어떻게 성장하겠어?”


디자이너가 아닌 나로서는 솔직이 디자이너의 성장 부분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패션쇼의 비용은 너무나 잔인할 정도로 높다. 지금 해외에서도 미셸 오바마의 디자이너로 유명한 Jason Wu정도 되는 디자이너들조차 패션쇼 비용이 부담스럽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그에 비해 수주는 거의 일어나지 않게 되어버린 행사,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패션쇼다. 


“지금 사실.. 수주는 거의 없어졌잖아요. 마케터적 발상으로도 패션쇼가 필요하다고 보세요?”

“그럼. 그러니까 사실이게 요즘 같은 시기에는 수주를 위한 행사라기 보다는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마케팅이 되면 좋은데.. 너무 바이어에 목매달 필요 없어. 이젠” 


최근의 쇼는 대중들을 위한 행사요 축제가 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에디터와 바이어를 포기하고 See-now-buy-now 축제로 쇼를 전향했다. 만약 한국의 패션 디자이너들에게도 쇼가 자신의 팬을 만나는 자리가 될 수 있다면, 그들에게 쇼는 여전히 소중한 기회다. 하지만 이런 기회는 얼마나 보장되고 있을까. 

파리 패션위크 기간 동안 르몽드지 1면에 디자이너 기사가 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서울 패션위크 동안 대한민국의 언론에는 패션쇼에 참석한 연예인들의 기사가 난다. 언제부터인지 기형적으로 변해서, 지금 돌이킬 수 있을지 여러 의문이 드는 패션쇼 환경들. 그러나 20년 차 디자이너는 이런 기회라도 젊은 친구들에겐 소중한 기회임을 일깨워준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는 부암동을 떠나야 했다. 다음 약속을 위해 다시 높은 빌딩 숲의 종로를 지나 강남으로 건너오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스마트한 시대에 한국 패션은 갈 길이 멀다고들 하지만, 어쩌면 사실 우리는 한국 패션을 모르는 건 아닐까? 우리 안에 존재했던 가능성, 이야기, 스토리에 귀를 기울이는 데에 부족했던 건 아닐까. 2011년부터 존재했던 파츠파츠지만 나 또한 그 스토리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건 최근의 스타트업을 연구하면서부터였다. 세상에는 우리가 미처 귀 기울이지 못한 디자이너의 스토리들이 얼마나 많을까.  


또 3월이면 또 서울 패션위크가 열린다. 벌써 설레는 마음으로 쇼를 준비하고 있을 디자이너들.  
시대가 바뀌는 동안 디자이너들도 많이 바뀌었다.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이제 막 성장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전하고 싶은두 가지 이야기가 생겼다. 하나는 시대에 맞는 브랜딩과 백엔드의 스토리를 꼭 한번 생각해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패션쇼에 대한 마케터적 시각을 가져 보라는 것이다.


패션위크가 끝나면 늘 바이어가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부터 여러 가지 비판들이 나온다.
큰 행사니만큼 말이 많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그러나 부디 하나의 소망이 있다면 금번 패션위크는 가시적인 실적보다는, 우리 모두에게 우리 안의 기회에 스스로 눈뜨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 스스로 우리 디자이너들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보는 것, 지금 이보다 소중하고 놓쳐서는 안 될 기회란 없는 것 같다.


따뜻한 점심과 이야기, 크고 작은 느낌표로 가득했던 부암동 파츠파츠로의 소풍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두칸, 최충훈의 타협없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