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이는 비디오를 보거나 책 읽기를 참 좋아한다. 물론 만화책이긴 하지만… 어디선가 ‘끼득끼득’ 소리가 들리면 그건 틀림없이 수진이가 만화책을 끼고 앉아 낄낄거리는 웃음이다. 엄마의 취미가 집에서 비디오 보기, 만화책을 포함한 책 읽기, 그리고 음악 듣기이다 보니 수진이의 취미도 자연스레 엄마를 닮아 가는 듯하다.
수진이와 나는 한국에서 살 때, 둘이서 곧잘 영화를 보러 다니곤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온전히 엄마를 만날 수 있는 아이에게 엄마와의 극장 데이트는 늘 가슴 설레는 행사였으리라. 아직까지도 수진이가 두고두고 줄거리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영화는‘내 마음의 풍금’. 이 영화가 어린 수진이에게 왜 인상 깊었는진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얼마 안 있으면 학교에 들어갈 나이였으므로 학교 생활을 그린 영화가 굉장히 재미있었나 보다.
학교 운동회에서 쪽지에 적힌 교장 선생님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총각 선생님을 끌고 달리기를 하던 거하며, 학교 교실이 불타는 장면, 갓난아기를 업고 와서 교실 뒤에서 기저귀를 갈아주던 모습들을 모두 기억하며 ‘엄마, 그 언니가 말이지, 눈퉁이가 밤탱이가 돼서 말이지’하고는 또 까르르… 하여간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 너무 많은 아이다.
하지만 여건상 극장보다는 아무래도 비디오를 보는 경우가 많다. 수진이의 비디오 감상 취미는 꽤 고상한 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토토루의 모험’이나 ‘천공의 성 라퓨타’ 같은 일본 만화영화를 언어 해독도 안되면서 좋다고 ‘까르르’ 웃는 건 둘째치고 나에게 줄거리를 설명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수진이가 제일 좋아하는 비디오 만화는‘라이온 킹’이다. 삼바의 아버지가 절벽에서 떨어져 들소 무리에 밟혀 죽을 때에는 눈물을 글썽이더니 삼바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장면이 나오자 그렇게 슬피 울 수가 없었다.
The Lion King Photo Credit / IMDb
나 역시 수진이와 함께 눈물을 찍으며 보다가 불현듯‘얘가 혹시 아빠를 잘 만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건 아닐까’ 울다 말고 아이를 빤히 쳐다보고… 글쎄 수진이의 속마음은 모르겠지만 아빠를 그리워하는 삼바의 마음이 은연중에 자기에게도 전해진 건 아닐까?
뭐니 뭐니 해도 수진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만화다. 특히 짱구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일기도 짱구식 그림일기로 쓴다. 수진이는 미국에 온 뒤에도 한국말로 꼭 일기를 쓰고 잔다. 이건 나와의 약속인데 수진이의 일기는 내가 읽어 보아도 내용이 통통 살아있을 만큼 재미있다.
짱구 캐릭터 모습
어떨 때에는 수진이 일기장 읽는 재미에 저녁 시간이 후딱 지나갈 때도 있다. 수진이는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일기에다 은근슬쩍 써놓곤 한다. 그것도 짱구를 일기장에 그린 후, 대화 풍선을 옆에 달아놓고는 ‘엄마, 오늘은 바스킨 라빈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요…’
마치 짱구가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데 그리는 폼이 제법 영글어서 칭찬을 해주면 이다음에 만화가가 되고 싶다나? 하여간 보는 게 많아서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 수진이를 나 홀로 키우자니 이래저래 걱정만 많고 속이 답답한 것이 요즘 나의 최대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