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보았을 ‘소공녀’의 작가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이 쓴 ‘비밀의 정원(The Secret Garden)’이다. 한국에서는 ‘비밀의 화원’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소공녀’와 함께 많이 읽히던 아동용 소설이다. 이 영화 이야기를 하기 전, 작가인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야 할 듯하다.
프랜시스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났다. 네 살 되던 해인 1854년에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엄마와 다섯 남매는 늘 가난에 쪼들리며 살아야 했다. 내성적이었던 버넷은 춥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 소설을 읽고 혼자 이야기를 만들며 그렇게 가난을 잊었다고 한다.
15살 되던 해인 1865년, 외삼촌의 권유로 미국 테네시주 녹스빌로 이주했다. 미국에 와서도 이들 가족의 가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프랜시스는 잡지사에 소설을 기고하기로 결심하고 원고지와 우송료를 벌기 위해 산속에서 머루를 따서 팔아 원고지를 사고 글을 써서 우편으로 발송했다고 한다.
가난과 고난을 극복한 경험들이 프랜시스의 작품들에 절절히 녹아져 그 어느 작가들보다 현실감 있게 그려진 성장 소설을 만들어냈다. 17살 때 잡지사에 보낸 소설이 채택되고 그 이듬해인 1867년,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나면서 프랜시스는 동생 네 명을 책임지는 가장으로 소설 한 편에 10달러씩을 받고 한 달에 5~6편의 소설을 썼다고 한다.
이렇듯 프랜시스는 온갖 학대와 고난을 겪지만 결국 보상받고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영국 여성(본인)을 모티브로 삼아 여럿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당시 미국에서는 영국풍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았는데 프랜시스의 작품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성인 로맨스 소설로 인기를 모았다.
아동 소설로 큰 인기를 모았던 ‘소공녀’와 ‘비밀의 화원’ 등은 본인이 직접 각색하여 런던과 뉴욕의 연극 무대에 올리는 등 다양한 재주를 뽐냈다. 마치 ‘비밀의 화원’ 여주인공 소녀 메리처럼 말이다. ‘The Secret Garden’을 바탕으로 연극과 TV 드라마,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 다양하게 창작됐다.
영화로는 1993년에 제작된 바 있고 2020년 영화는 ‘비밀의 화원’을 되살려 내기 위해 영국의 유명 정원 13곳을 촬영하고 여기에 CG까지 보태져 그야말로 환상적인 ‘The Secret Garden’이 탄생됐다. 이 영화의 중심을 잡고 있는 모험적이고 능동적인 소녀 메리의 캐릭터는 창의력과 모험심의 결정체로 극대화되고 있다. 마치 어린 시절 작가의 모습이 투영됐을 법하다.
영화화 작업을 하면서 배경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는 과정의 영국과 인도로 바꾸었고 쌍둥이 자매 중 언니는 영국, 동생은 인도에서 각각 아들과 딸을 낳아 키우는 것으로 설정됐다.
Photo IMDB
‘The Secret Garden’의 메리 레녹스는 인도에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는 와중이었다. 메리의 엄마는 쌍둥이 언니의 죽음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시름시름 앓으며 메리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늘 무표정하게 누워만 있었다. 메리는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이렇듯 엄마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서 생활했지만 메리는 매일 밤마다 홀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촛불로 불을 밝히며 텐트 천을 배경으로 손과 인형으로 연극 놀이하듯 그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던 호기심 많은 소녀였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뜬 메리는 대저택에 아무도 없고 혼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빠도, 매일 누워만 있던 엄마도, 자신을 시중들던 시녀도 모두 사라지고 대저택에는 매일 비행기 폭격 소리와 대포 소리로 공포감만 가득하다.
도대체 엄마, 아빠는 어디 간 것이고 시녀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이지?
대저택에서 굶주림과 무서움에 홀로 떨고 있던 메리를 발견한 군인들은 그를 유일한 친척인 영국의 이모부에게 보낸다. 군인이 보고하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린다. 엄마는 콜레라에 걸려 병원으로 후송됐는데 그 병원에서 아버지까지 병에 걸리면서 갑자기 고아가 됐다는 내용이었다.
인도에서 몇개월에 걸친 항해 끝에 영국에 도착한 메리의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영국 요크셔의 황량한 들판인 노스 요크 무어스(North York Moors) 영지의 주인인 아치볼드 크레이븐 경은 사랑하는 아내 릴리가 정원에서 그네를 타다 떨어져 죽은 후, 정원을 폐쇄한 채 고집불통으로 살고 있다.
크레이븐 경에게는 콜린이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콜린은 자신이 아버지와 같이 등이 굽게 되는 병에 걸렸다(크레이븐 경은 전혀 등이 굽지 않았다)며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떼지 않은 채 약에 의존해 시름시름 앓고 있다.
크레이븐 경은 사랑했던 아내의 쌍둥이 자매 딸이 천애고아가 돼 영국으로 보내지자 마지못해 메리를 받아들이지만 절대 미슬 스웨이트(아치볼드 크레이븐 경의 캐슬) 안을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 것을 명령한다. 메리가 이곳에 도착한 후, 한참 지나서야 첫 만남을 갖게 된 크레이븐 경은 메리를 보고 흠짓 놀란다. 메리가 오히려 본인의 엄마보다 이모인 자신의 아내와 비슷하게 생긴 데다 모험심 넘치고 활기찬 성격까지 사랑했던 아내를 똑같이 빼닮았기 때문이다.
이미 메리는 누가 간섭을 하고 못하게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도시락을 싸 달라고 하녀들에게 부탁해 성 근처 산과 평지, 황무지 온갖 곳을 헤매고 다니고 있었다. 이런 메리 곁을 어슬렁거리던 떠돌이 강아지에게 샌드위치 패티인 고기를 건네며 강아지를 친구로 만드는 등 자신만의 방법으로 노스 요크 무어스의 자연을 즐기고 있었다.
메리 레녹스 역을 맡은 딕시 에저릭스(Dixie Egerickx). 모험심 넘치고 꿋꿋한 여주인공의 역할을 어린 나이에 훌륭하게 연기했다는 평을 얻고 있다. Photo IMDB
화면 가득 낮은 안개 깔린 노스 요크 무어스의 광활한 풍경이 눈 호강을 시켜준다. 강아지와 친해진 메리는 강아지가 이끄는 데로 굳게 닫혀있던 비밀의 정원을 들어가기 위해 넝쿨을 딛고 담을 넘는다. 그리고 이곳에서 자신의 엄마와 이모가 정원에서 즐겁게 이야기 나누고 산책을 했던 것처럼 공포와 무서움에 떨던 사촌 콜린, 그리고 메리를 도와 콜린의 휠체어를 끌어주는 하녀의 동생 디콘, 강아지까지 세 명의 아이와 떠돌이 개 한 마리가 어울려 노는 동심의 세계를 그려낸다.
Fountains Abbey / 이 장면은 영국의 세계문화유산인 폐허가 돼가고 있는 파운티 수도원의 수경 정원에서 촬영됐다. 콜린의 비밀의 정원 첫 방문. Photo IMDB
1993년도 ‘The Secret Garden’이 왠지 비장하고 엄숙했다면 2020년의 ‘The Secret Garden’의 모험과 판타지가 돋보이는 것은 26년 동안 발전된 CG 효과일 것이다. 참고로 1993년도 ‘The Secret Garden’의 음악은 즈비그너 프라이즈너(Zbigniew Preisner)가 담당했는데 줄리엣 비노쉬가 나왔던 '세 가지 색 – 블루, 레드, 화이트'의 음악을 맡은 유명 음악 감독이다.
장엄한 클래식 OST는 미국에서 장례식의 메모리얼 송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영화 OST에는 가사가 없지만 왕년의 명가수 린다 론스탄트가 가사를 붙여 부른 ‘Winter Light’이란 노래는 사랑하는 사람을 일찍 떠나보내고 그리운 마음을 절절하게 노래하는 심정을 청아하게 표현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워 하는 크레이븐 경과 엄마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그리워 하는 메리의 마음이 잘 표현돼 있다. 린다 론스탄트의 ‘Winter Light’을 들어볼 것을 권한다.
상처 입은 콜린과 메리가 이곳 ‘The Secret Garden’에서 뛰어놀며 상처를 치유하고 힐링받는다는 영화 주제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힐링과 치유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게 한다. 메리는 외롭고 슬퍼도 결코 웅크리거나 주저 않지 않고 모험과 독립심으로 헤쳐나갈 뿐이다. 마치 작가 프랜시스가 그랬던 것처럼.
P.S. 1. 꼭 영화관에서 관람하기를 권한다. 이번 주말인 8월 30일까지는 서울 시내 영화관에서 개봉한다. 이후는 관람이 힘들 듯.
P.S 2. '킹스맨'의 콜린 퍼스와 '빌리 엘리엇'의 줄리 월터스 등 영국 연기파 배우들의 영국식 엑센트 대사를 듣는 재미도 솔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