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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lee Aug 26. 2020

10년 전 그날, Way Back Home

글로 읽는 영화 / 비밀의 정원

8월 셋째 주인 지난주 화요일과 토요일, 일주일에 두 편이나 영화를 봤다.


코로나 정국에 일주일에 두 번씩 극장행(?).

아무리 정신머리 없는 인간이라고 취급을 받아도 어쩔 수 없었다. 


한 편의 독립 영화에게는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고 싶었고 또 한 편의 영화로부터는 화면 가득 초록 영상을 보며 안구를 정화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솟구쳤다.  근데 이게 무슨 우연일까? 


화요일에 본 영화는 한국 독립영화 ‘비밀의 정원’. 토요일에 본 영화는 외국 판타지물 ‘The Secret Garden’이었다. 의도를 하고 본 것은 아니었는데 보고 나니 우연찮게 두 편의 영화가 제목은 같고 내용은 완전히 다른 영화였다. 먼저 한국 독립영화 비밀의 정원부터 살펴보자. 


비밀의 정원 

스포츠센터의 수영 강사로 일하고 있는 정원과 남편 상우는 젊은 부부다. 

좁고 낡은 아파트에서 살다 상우의 부모님이 물려주신 역시 낡은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 짐 정리에 바쁘다. 포장이사를 할까? 반포장 이사를 할까? 빠듯한 돈 계산을 하며 이삿짐 싸기에 바쁜 와중에 정원에게 걸려오는 낯선 전화번호. 

정원이 선택한 수영강사란 직업도 어떻게 보면 물속에서 생활하며 일상적 관계와 경계를 쌓고 스스로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의 의식 세계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스틸컷.


정원은 형사로부터 10년 전 사건의 범인이 붙잡혀서 새롭게 조서를 써야 하니 경찰서로 와달라는 전화를 받는다. 10년 전 여고생일 때 정원은 늦은 밤 갑자기 아픈 동생을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데려갔다. 아픈 동생을 병실에서 지켜야 하는 엄마는 병원에 남고 정원은 아침에 등교를 하기 위해 새벽에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모르는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만다. 


당시 DNA를 증거로 채집했던 경찰이 10년이 지나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을 전한 것이다. 가까스로 상처를 다독이며 결혼하여 남편과 살고 있는 피해자에게 조서를 다시 써야 한다며 무덤덤하게 전화를 해대는 형사. 정원이 전화를 잘 받지 않자 집까지 찾아오는 형사. 말하고 싶지 않았던 정원의 비밀이 ‘수사기록’이라는 서류로 형사에 의해 남편에게 자신의 어떤 순간 당했던 과거의 사건이 까발려지는 황당함은 스크린 너머 관객까지 당황스럽게 만든다.   


이 부부의 평화로웠던 결혼 생활은 이렇게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소통이 단절된 채 메말라간다. 

아니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어 하는 남편 상우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정원의 위태로운 일상생활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정원의 상처는 그 나이에 걸맞지 않게 모든 것을 경험한 듯한 관조적인 자세로 마음에, 수영복 슈트를 입을 때마다 언뜻언뜻 비춰주는 목 뒤 칼로 베인 듯한 자상의 흔적으로 몸에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정원의 남편인 상우 역을 맡은 전석호. 오랜 연극무대 활동을 통해 이름을 알린 연기자들의 독립영화 출연은 다양한 장르를 발전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비밀의 정원 스틸컷


정원은 서울에 시험을 보러 온 동생을 고향 태안으로 데려다 주기 위해 남편 상우와 함께 밤 운전을 하여 도착한 고향집에서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과거의 장소들을 찾아간다.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들을 정면으로 마주 보는 정원과 자신 때문에 언니에게 그런 일이 생겼다고 자책하며 의기소침하게 지내며 언니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동생 소희는 그곳에서 과거의 상처와 기억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태안 바닷가에서 옅은 미소를 함께 띠며 걷는 이들 부부의 마지막 장면을 지켜보며 이들 부부의 그 후는 어떻게 됐을까? 나름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함께 상처를 어루만지며 일상으로 돌아왔을까? 아니면 한번 벌어진 균열이 차츰 더 벌어졌을까? 


영어 제목 ‘Way Back Home’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족은 깊은 상처를 받고 물 위를 떠도는 듯 부유하는 정원에게 든든한 두 다리가 돼주고 너의 잘못이 아니라며 어깨를 내어주고 도닥여주었을까? 

하지만 영화 속에서 정원의 가정은 그리 하지 못했다. 근 10년이라는 시간을 엄마와 동생과 떨어져서 서울의 이모와 이모부와 함께 살며 더 이들을 가족으로 느끼며 살아왔으니 말이다.   

   

유재명 역시 다양한 독립영화에 출연해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정원의 이모부 역으로 출연해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을 메꿔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 스틸컷.


2017년 단편 ‘미열’로 각종 단편영화제 수상을 휩쓸고 약 3년 만에 장편으로 제작된 박선주 감독의 작품. 연극계에서 튼튼한 연기를 밑바탕으로 드라마 및 영화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유재명(이태원 클라쓰 장대희 회장 역), 염혜란(동백꽃 필 무렵 홍자영 변호사 역), 전석호(미생의 하대리 역) 등의 연기자가 신예 감독의 독립영화에 출연해 힘을 보탰다.     


코로나로 영화 개봉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공들여 제작한 신예 감독의 작품이 쇼케이스로만 끝나지 않고 빠른 시간 안에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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