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진흥원 신작 창작 지원금을 신청하면서
어릴 적에는 글을 읽는 것이 좋았다. 아니, 글을 읽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자랑이 하고 싶었다. 형님들이 보는 두터운 양장책을 들고 다니며 '나는 글 좀 읽는 놈이야.' 라며 은근 슬쩍 자랑질을 해댔다. 지금도 제목만 기억나는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란 책을 들고 저수지 둑방 아래로 갔다.플라타너스 나무의 시원한 그늘에 누워 읽어도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글자들을 읽어가다 어느새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잠 속으로 빠지곤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나의 행동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저수지에 풍덩 뛰어드는 것이 더 좋았고, 소에게 풀을 먹이다 소가 산으로 가면 찾으러 다니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렇게 나와 책의 인연은 그리 쉬이 맺어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4, 5학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우연히 어떤 백일장에 나가서 공책 두 권을 상으로 받으며 참가상인가 하는 것을 받았는데, 아마 백일장에 참여한 모든 학생들에게 주어진 상으로 기억된다. 그 사건이 나의 첫 글이었다. 그리고 글과 나는 오랫동안 이별을 했다. 지금처럼 하얀 바탕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얗다면 하얀 종이에 까만 것들이 글자라는 정도만이 책과 나의 인연의 끈을 근근히 이어주었다. 교과서를 그리 열심히 본 기억도 없다.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가방을 무겁게 하는 벽돌같은 몇 권의 책은 그저 학생이기에 들고 다녀야 하는 의무였을 뿐이었다. (뭐 잠시 삼천포로 빠진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때는 전교 3등도 할 정도로 나름 공부는 좀 했었다. 세상살이가 뜻대로 되다보니 영 엉망이 되긴 했지만 말이다. 촌놈에게 도시란 진짜로 놀아 볼만한 곳이었으니까.)
그렇게 산울림의 <청춘>처럼 청춘은 흘러가버렸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그렇게 청춘을 소리없는 강물에 띄우고 나니 망망대해 검은 물에 흔적도 없이 '나'는 흩어지고 말았다. 그런 후, 세월은 산새들의 노래에 맞춰 허공으로 사라졌다.
두 아들의 애비가 되고나서야, 문득 '예전엔 글 좀 읽었지.'라는 막연함이 다시 개미가 온 몸을 타고 다니듯 내 몸을 간지럽혔다. 그랬다. 그렇게 한 편의 글을 써 공모전에 내었다. 나름 열심히 쓴 글이었다. 그런데, 고작 장려라니.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다시 그 글을 읽어보니 참 우스웠다. 이야기는 좋았는데, 문장이 엉망이었다. 문맥도 썩 좋지 않았다. 역시 글은 퇴고가 중요했다. -지금도 나는 글을 쓰고 나면 퇴고를 하지 않으려 한다. 내 생각의 순수함이 사라지는 순간이 글을 다시 고치는 순간이다.-라는 쓸데없는 자신감 때문에.
그리고 나서 바로 어느 종합문예지에 한 편의 글을 써 보냈다. 나의 글이 좋아서 아동문학 신인상을 받았는지, 아니면 동화 부문이 없어서 운 좋게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마냥 좋았다. 마냥 좋았다. 그리고 나는 열심히 글을 써 내려갔다. 무진장 많은 글을 썼다. 그 글들을 일부만 모아도 책 한 권은 낼 수 있으리라. 그런데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아마 다시 글을 고쳐 쓰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나의 그 순간의 생각은 달라져버리기 때문일 것이라고 위안을 하기에.
이후, 나는 열심히 글을 짓고, 마음을 담고, 말을 하고 산다. 그 수많은 순간의 기록을 모두 남길 수 없는 것이 너무도 아쉽지만, 그래도 흘려보낼 것은 흘려 보내야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다.
글을 쓴 지 이제 4년. 아직은 갈 길이 너무도 멀고 멀지만, 하루에 하나의 글도 내 삶의 역사가 될 것이니,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한다는 것이 참 쉽지 않다. -이런 소리를 하면서도,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도 학생들에겐 "니 인생을 위해서 스스로 해라."라고 매일 잔소리하니 참 못난 어른이다.- 이번 문화예술지원 활동에 신작 창작을 지원하는 이유 역시 나의 게으름에 일침? 똥침?을 놓기 위해서이다.
나처럼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살다가 참 번잡하고 복잡할 때가 많이 생긴다. 지원을 하려면 여러 증빙서류가 필요한데 도서관 여기저기에 산적해있는 책과 집 구석에 처박혀 있을 책을 찾아 정리하는 일이 쉽지 않다. 결국엔 눈에 띄는 몇몇만으로 지원서를 채워 넣으려니 영 아쉽다. 해마다 느끼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정신줄 놓고 사는 내 모습을 보면 '이번 지원사업이 제대로 될까나? 창원시 1인창조기업은 어떻게 할꼬나? 도서관 운영과 외부 강의는 어쩔까나? 하는 온갖 걱정이 머리를 짓누른다. 머리는 아프고 가슴은 답답하다. '에라이! 정신 챙기라.'
어제의 나는 이미 죽었고, 오늘의 나는 살아가고 있으며, 내일의 나는 아직 만나지 못한 미지의 인물이니, 지금 행복하게 살면 장땡이라는 말을 잊지 말자고 다시 다짐한다. 때론 몸둥이가 서너개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순간이 즐거운 나를 어찌 나누어 삶의 기쁨을 쪼갤 것인가?
오늘부터라도 나는 나의 생각들을 잘 정리해 두자고 다짐을 하면서, "정리만 잘해도 공부의 절반은 끝난 거다."라는 영화 <두사부일체>의 선생의 말을 떠올려 본다. 세상을 살면서 그렇게 풍족하게 살아본 기억은 없지만 - 사실 늘 쪼달리며 사는 듯-, 몇 번의 위기를 제외하곤 그리 쪼달리며 사는 것 같지도 않은 무난한 내 인생에서 어떤 생각을 글로 남겨야 최소한 글이란 말을 들을까? 누군가를 비판하는, 세상을 비판하는,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아니면 내가 뭔가 잘 났다는 것을 알려야 하는 글을 써야 하는 것일까? 글은 독자를 생각해야 하니 꼭 까먹지 말자.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현명한 지혜를 깨달아야 할 것인데, 참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글쟁이는 가난하다고 하는 이유는 배추잎 몇 개를 가지고 있느냐, 통장에 숫자의 자릿수가 얼마냐를 묻는 것이 아닌 얼마나 글에 목마르고 글에 굶주렸는가를 의미하는 것이라 믿는다. 글쟁이가 가난한 이유는 아직도 글에 욕심이 나기에 그렇다.
가난한 글쟁이인 나는 아직도 무엇을 쓰며, 왜 글을 지으며, 어떻게 글을 지을 것인가를 고민하며 머리카락을 몇번이고 쓰다듬는다. 두어가지 확실한 사실은 지금, 여기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