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의 통제와 자기 통제력
얼마전 유튜브에서 1분 과학을 보았다.
요즘 K-mooc에 빠져 있는 내게 새로운 배움과 성찰을 주었다.
차원. 우리는 현재 3차원 공간에서 살고 있고 우리가 느끼면서도 볼 수 없고 알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애매한 그런 차원. 4차원.
4차원은 시간이다. 란 말이 가슴에 꽂혔다. 공간과 시간을 별개로 믿으며 공간의 선택은 시간이 한다고 믿었다. 시간의 선택이 다른 공간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라 생각했다.
예를 들어 12시 5분에 점심을 먹을 건지 도서관에 있을 건 지는 선택의 문제이고 이는 같은 때에 다른 공간을 의미한다.
결국 우리는 차원의 통제도 자신의 선택의 문제란 사실이다.
뭐. 생각해보면 과학적 이론은 아니라도 우리 삶의 원리가 또한 이러지 않을까. 그래서 옛 현인들의 말이 울림을 주는 지도 모른다.
웃을 건지 울 건지, 화낼 지, 반길 지.
좀 더 잘 건지 일어날 건지, 술집에 있을 건지 서점에 갈 건지.
모든 선택은 개인의 자유이다. 그리고 4차원의 선택 또한 그 결과로 나오는 선택의 몫이다.
사람들이 대중교통보다 자동차를 선호하고 자신의 집을 좋아하고 전화보다 문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는 이유 또한 4번째 차원, 즉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길 원하는 지도 모른다.
자동차 안에서 느끼는 개인의 모든 행동 선택의 자유. 우리 집 안에서의 자유. 그리고 전화에 답하지 않아도 내 마음대로 답할 수 있는 자유.
모든 선택의 자유는 차원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에 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 4차원의 어디쯤에서 나의 본 모습을 찾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