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답게 하는 것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이 나다웠다면, 그 이후론 언제가 나다웠을까?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짓던 꼬마 시절엔 아무 것도 몰랐다. 그저 그냥 그렇게 먹고 놀고 자고 들에 나가는 일이 전부였다. 행복했기에 다른 욕심도 없었다. 그저 아이스깨끼나 쫀드기를 먹는 친구들이 부러웠을 뿐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어느날 내게도 행운이 왔다. 오십원이란 거금이 손에 들어왔다. 십원에 콩 쫀드기가 다섯개니, 횡재였다. 그날 오후, 교실 문이 열였고 소사 선생님이 말했다. "이 반에 장진석이 있나?" 그리곤 아버지가 아프냐고 묻더니 집으로 빨리 가보라고 했다. 달렸다. 논두렁을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지만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머리를 풀고 나를 가여이 바라보며 오라고 손짓했다. 울면서 엄마 품에 안겼다. 그렇게 나의 유년기는 기억에서 별 의미없는 시간으로 서서히 저물어 갔다.
중학교를 마치고 상업고등학교를 가고 싶었다. 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 큰 형은 절대로 안된다고 했다. 대학을 가라고 했다. 아니 대학을 가야한다고 했다. 형님의 의무라고 했다. 도시로 유학을 나왔다. 촌놈이 할 일이 없으니 그저 자취집에서 뒹굴고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성적은 잘 나왔다. 기대는 그렇게 쓸데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하지만 기대는 방심을 낳고, 방심은 절망을 낳는 법이다. 대학을 가는 것조차 버거운 일이 되었다. 공무원 시험을 치라는 말이 오고갔다. 흥미도 없고 싫었지만, 형의 의지로 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그저 공무원이 되면 돈도 벌고 좋다는 이유로 못이기는 척 시험에 임했다. 결과를 물어 뭣할까? 친구들이 간다는 대학을 가고 싶어졌다. 친구 따라 넌지시 원서를 넣은 전문대학에 덜컥 붙고 말았다. 막내 형이 하필 그 당시 컴퓨터를 샀으니. 그 분야도 전망이 있을거란 막연함이 전부였다. 하지만 나와는 별개의 세상이었다. 관심도, 적성도, 능력도 맞지 않았다. 그저 가방을 들고 오가는 허울뿐인 대학생. 친구들과 놀고, 당구장을 서성이는 게 전부였다.
입대를 했다. 그저 나라의 부름이니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전역을 하면 철이 들어 올 것이란 기대는 물거품보다 허망했다. 전역 후 학교는 시늉에 불과했다. 빨리 취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곳을 기웃거렸다. 그리고 그 해, IMF라는 거대한 벽 앞에 힘 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잠 잘 곳을 찾아 떠돌아 다녀야했다. 그저 내가 선택한 길이라 생각했다. 20대, 청춘의 시간은 스스로 찾아가는 절망의 터널이 되고 말았다. 한번도 '나'라는 존재를 생각하지 못한 채, 그저 세상을 탓할 뿐이었다. 서른 즈음에 희망을 잡았다. 결혼을 했다. 그래도 변한 것은 없었다. 또 다른 한 사람을 힘들게 했을 뿐이었다.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으로 덤벼든 사업은 무너졌다. 그 사이 한 아이가 내게로 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버지! 그날 떠나간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책을 집어 들었다. 공부를 했다. 닥치는대로 책을 읽었다. 그 사이 두번 째 아이가 내게로 왔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왜 그랬을까?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방송대를 들어갔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사이 나는 '나'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 나이 서른 다섯. 늦었는지 모르지만 늙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5년을 공부했지만 삶의 변화는 없었다. 소소한 변화야 그렇다 치지만, 눈에 띄게 달라진 삶은 아니었다. 책 속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책을 던졌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잘해서가 아니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살이에 관심을 가지게 시작했다. 내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우리 지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세상이 조금씩 변했다. 사실은 내가 변했다. 각 기관의 시민기자에 지원했다. 우연히 한 곳에 선발이 되고 자신감이 붙었다. 눈에 띄는 곳마다, 아니 억지로 정보를 찾아다니며 지원을 했다. 사진을 찍었다. 수많은 공모전에도 도전했다. 동네 곳곳에, 지역 곳곳을 다니며 수많은 지원을 했다.현장을 뛰어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상황을 관찰하며 사진과 글을 남겼다. 쉼 없이 현장에 참여하며 삶을 배워나갔다. 아이들과도 함께 세상나들이에 나섰다. 아내도 설득했다. 돈이라는 결과와는 별개로도 삶은 즐거웠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글을 썼다. 문예지에 동화로 등단을 하면서 또 다른 세상을 즐겼다. '하지 않고 후회한다면, 나의 젊은 날과 무엇이 다를까?' 덤비고 또 덤볐다. 해보지 못한 아쉬움이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넘어섰다. 무엇보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마무리했다. 결과가 좋고 나쁨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행복하다. 나를 찾아주는 이들, 나에게 일을 맡겨 주는 이들, 나를 존중해주는 이들로 나날이 바쁘면서도 행복하다. '나'를 '나'답게 하는 그 힘은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않았던 시절의 아쉬움에서 싹튼 덤비고 보는 정신'이다. 지금 나는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한다. 실패란 말은 없다. 모든 일은 과정에 불과하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하지만 한번의 도전은 또 다른 씨앗이 되어 싹을 피운다. 끊임없이 나아가는 '덤비기 정신'을 나와 함께 나눌 사람이 곁에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