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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손 Mar 08. 2021

진짜 이야기 2

도깨비불

봄이라고 하기엔 찬 바람이 제법 분다. 월요병이라는 말이 Monday blues라고 하는 이유가 파란 하늘을 기대하다가 하늘이 너무 파래서 일하기 싫은 병이 도져서 그리 불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진짜 월요병을 앓고 말았다. 일이 없어 빈둥대는 월요일. 젠장. 전화 몇 통으로 일을 마치고 동네에서 전자제품 대리점을 하는 형님에게 놀러 갔다  이런저런 동네 일을 수다를 떨다 보니 점심때가 되었다. 직장인들의 오전이 이리 후딱 간다면 대박이지 않을까 하는 못내 심술이 돋기도 했다. 동네에서 식육점, 노래방, 건재상을 하는 형님과 시장에 들러  밥 한 그릇 먹고  나서 커피를 마시며, 칡뿌리가 엄청 크다며 자랑하는 건재상 형님의 수다는 끝이 없었다. 친구가 전화가 왔다. 동네에 골목텃밭 만드는 일을 상의하느라 잠시 이야길 하는데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도대체 시간 따위가 왜 이리 허무하게 가는지 그저 아쉬울 뿐이다. 그 사이 검사 주문이 폭주했다. 오늘만 벌써 세 건. 내일이면 한 열 건이 들어오면, 올해는 맘 졸이고 살진 않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오후 세시. 이발이나 해볼까 하며 다이어리를 보며 시장 길을 건너려는데 갑자기 차가 내 옆구리 옆에서 멈췄다.

-이기 머꼬?살살 안 댕기요? 아 떨어지거거마는

-아저씨. 아저씨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뭐 하고 있었는지 보세요.

긴 생머리를 날리며 새침해 보이는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이, 아가씬지 아줌만지 모르겠지만 무슨 소리요?

-아저씨가 노트 보면서 길을 건너니 그런 거 아니에요?

여전히 그녀의 말투는 부드러웠다. 원래 그런 말투인가 싶었다.

빵빵. 뒤에서 거친 경적이 울렸다.

-가이소. 고마.

동네에서 제법 아는 사람이 많아 더 이상 말해봤자 나만 손해란 생각이 들었다. 바람에 쑥내가 묻어나는데 마음은 여전히 겨울의 끝자락에 있는 듯했다.

-아뇨. 잠시 얘기 좀 해요. 차 대고 올게요. 기다려요.

 그녀는 이름 모를 외제차를 소리 없이 몰고 정차할 곳을 찾아갔다. 멀뚱멀뚱하게 시장 입구에 서서 그녀가 오길 기다렸다. 기다리고 있는 내 모습이 참  우스웠다. 잠시 후 그녀는 작은 종이가방을 들고 왔다.

-나 기억 못 하겠어요?

-누구?

-호호호. 당연히 모르죠. 누군지. 이번 생에 오늘 처음 만났으니까요.

-거참. 이상한 분이네요. 여하튼 조금 전엔 저도 미안했소. 그냥 가이소. 뭐 아무 일도 없는데.

-아뇨. 일이 있어요.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제가 죄송하게 됐네예. 조심히 가이소.

시장 상인들이 우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시선이 쏠렸다. 참, 사고가 난  것도 아닌데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 제일 재밌다더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살짝 흥분한 나만 소리가 조금 높을 뿐 그녀는 여전히 차분했다.

-아이코. 참내.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요.

-사실 운전 부주의는 당신인 듯합니다만. 저도 길 건널 땐 이리저리 보는 편입니다만.

-그래요. 당신 잘못은 아니라예 당신은 차가 오는 걸 볼 수 없었을 것이니까요.

-무슨 소리요?

-여기 계신 분들이 누굴 보고 있는 거 같아요?

-그야 그쪽하고 나하고.

-호호호. 그래요. 그런데 당신은 아직 모르시네요. 저 사람들의 시선요.

-그야. 당연히...... 어? 내만 보고 있네요. 참. 사람들이 이상타.

-그야, 당신 혼자 말하고 있으니까요.

갑자기 이상한 찬바람이 휙 몸을 감싸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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