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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손 Sep 12. 2023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 빨간 종이 줄까?     

최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차악을 보는 눈

양자선택을 넘어 순수한 판단과 현명한 선택 필요     

  무서운 이야기는 무한한 상상을 넘어 악몽으로 넘어가고 만다. 한번쯤은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라는 귀신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귀신의 유무는 떠나 귀신 이야기는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그리고 혼자이기에 가장 적당한 화장실은 귀신 이야기의 좋은 공간적 배경이 된다. 처가와 화장실은 멀면 좋다는 이야기 때문이었을까. 과거 화장실을 멀리 지어놓은 연유야 이해되지만, 어린 시절에 해가 저물고 밤이 내리면, 외딴 곳에 홀로 선 변소에 가는 건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비라도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면, 변소에 같이 가달라는 동생의 애원에 형은 들은 체 만 체였다. 아마도 자기도 겁이 났으리라. 그래도 나잇살 먹었다고 동생을 골리는 게 재미났을 것이다. 그러면서 은근히 끄집어내는 이야기.

  “얼마 전에 내가 화장실에 갔는데……하필 신문지가 없더라고. 참 난감했지. 어떻게 닦을까 고민했지.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은근히 시간을 끌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리곤 한껏 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어갔다.

“그때……밑에서 하얀 손이 올라오더니 이렇게 말하는 거야.”

“……”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

나도 덩달아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대로 한참을 숨을 죽였다.

“난 뭐 원래 겁이 없으니까 ‘그냥 아무거나 줘.’ 이러고 말았지. 그랬더니 또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 이러는 거야.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빨간 종이 줘, 이랬지.”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나야 빨간 종이 덕분에 엉덩이 잘 닦고 나왔지. 근데 말이야. 빨간 종이를 고르면, 피를 흘리며 죽고, 파란 종이를 고르면 새파랗게 목이 질려서 죽는다더라고.”

“근데, 형은 지금 살아있잖아.”

“나야 워낙 배포가 크니까 그렇지만, 조금만 겁을 먹는 사람은 그렇다고 하더라.”

  그 후로 밤이 내리면 변소에 가는 것이 어찌 그리 힘든지. 과거 재래식 화장실은 나무판자를 얼키설키 대어 만든 곳이 많다 보니 여러 사고도 날 수 있었다. 그러니 많은 괴담의 좋은 배경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중년이 된 지금도, 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 산길을 운전할 때 그따위 생각이 스치는 걸 보면 참 우습기도 하다. 빨간 종이, 파란 종이 귀신은 어디서 유래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일본에서 시작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이야기라고도 한다. 귀신 이야기는 전 세계 어딜 가도 인기 있는 소재이니 어디가 원조라 할 수 있을까 싶다.  

  이야기는 구전되고, 구전되어 결국에는 귀신 마음대로라고 한다. 귀신이 피를 흘리며 죽게 만들고 싶다면 “파란 종이 줘.”라고 해도 “파란 종이 다 떨어졌다.”한다. 반대로 새파랗게 질려서 죽게 만들고 싶다면 “빨간 종이 줘.” 하면 “파란 종이밖에 없어.”라고 하니 결국엔 어떤 종이를 골라도 결과는 같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렇다면 하얀 종이는? 아차! 하얀 종이는 하얗게 질려서 죽는다고, 검은 종이는 까맣게 타 죽는다니 도대체 뭘 선택해야 할까? 어릴 적 논밭에서 일할 때는 식물의 잎도 참 좋았는데……. 순수했던 그 시절이 다시 오려나? 아니 순수했던 시절이 있기는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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