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간 흔적이 여기에 남는다.
어릴 적 우리 집에 전화기가 처음 들어왔다. 손으로 다이얼을 돌려 교환원에게 내가 걸고 싶은 집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던, 아니면 이름을 알려주면 연결해주었다. 그때 난 겨우 2학년이었다. 우리 집 전화번호는 363번. 그렇게 세월은 흘러 고등학교 시절 홍콩 영화에 나오는 큼지막한 휴대전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전화기를 들고 다니지? 하지만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고 3때 처음 형님의 삐삐를 보고 얼마나 멋지고, 신기했는지 모른다. 정말 멋진 물건이었다. 이 세상의 최고 물건이었다. 갖고 싶었다. 하지만 고가의 물건을 학생 신분으로 가지는 것은 역시 부자들의 이야기에 불과하였다.
군대를 갈 무렵 형님의 삐삐를 물려 받았다. 멋졌다. 오래 된 중고품이지만 멋졌다. 하지만 나의 삐삐는 주로 조용했다. ‘나도 삐삐가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 일부러 공중전화에서 나에게 호출을 직접하곤 길을 걸어가곤 했다. 참으로 멋진 녀석이었다. 그렇게 삐삐는 나의 삶에서 중요한 연락 매체가 되었다. 제대할 땐 후임들이 예쁘고 앙증맞은 삐삐를 선물해 주었다. 가격도 꽤 많이 저렴해졌다.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이 삐삐를 쓰고 있었다. 그냥 일상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조금 있다 금새 휴대전화가 나왔다. 고가의 전화였지만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구입을 했다. 그리고 멋지게, 폼나게 들고 다녔다. 요즘의 말로 어얼리어답터였다. 하지만 그렇게 멋졌던 나의 전화기는 나의 손을 떠나는 시기가 짧아졌다. 그리고 새로운 물건이 곧 나의 손에 들어왔다. 기계를 사면 오랫동안 사용하는 편이지만 휴대전화는 자주 주인을 바꾸는 듯 했다. 작고, 귀엽고, 이왕이면 멋진 모델로 자꾸만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 후, 나의 손에 스마트 폰이 들어왔다. 스마트 폰이 있었지만 기존 휴대전화와 다를 바가 없었다. 가끔 사용하는 인터넷 외에는 문자나 보내고, 전화통화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또 짧은 시간이 흘렀다. 세상이 바뀌어 버렸다. 아날로그의 행복이 디지털의 속도라는 행복을 따라잡지 못했다. 불만이었다.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손에 든 전화기와 대화를 했다. 아이들은 모두 전화기 속 게임에 빠져들었다. 소셜네트워크라는 강력한 연결망 속에 사람들은 빠져 들었다. 싫었다. 사람들이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렬히 솟구쳤다.
그렇게 스마트한 세상을 불만에 찬 눈으로 바라 보았다. 하지만 나에게도 심적인 변화는 필요했다. 이렇게 스마트한 세상에서 불만을 불만으로 느끼지 않고, 불만을 만족으로 바꾸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래. 삶의 흔적을 기록하는 것이다. 내가 살다간 흔적.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면, 난 죽어 내가 살다 간 시간의 흔적을 남기리라. 갑자기 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잠시 여유의 시간이 생기면 다양한 앱과 개인 블로그에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하나씩 하나씩. 원래 메모를 좋아하는 나지만 메모를 한 뒤 어디로 갔는지 메모지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정을 메모해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 폰을 스마트하게 사용하고 나서는 놓치는 일이 없어졌다. 나의 순간적인 감정과 느낌이 그대로 소셜네트워크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기억할 수 있다. 그때의 나의 마음을. 또한 찍으면 그냥 메모리에 남겨져 빛바래져 가는 사진들이 줄어들었다. 사진에도 감정을 불어 넣을 수 있었다. 내가 사진을 찍으면서도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멀리 있는 친구와 감정을 나누는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스마트한 세상은 또 다른 나의 발견을 하게 만들었다. ‘나’라는 존재가 사색하길 좋아하는 인물이라 알려 주었다. 사색의 힘은 생활의 큰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 부모님께 더 효도할 수 있도록 힘을 주었다. 아내를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해 주었다. 멀리 떨어진 친구들, 자주 볼 수 없는 친구들과 교감을 나누게 되었다. 스마트 폰을 통해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멋진 생활을 하고 있다. 혼자서 일하는 나에겐 더없이 좋은 문명의 이기임에 틀림없다. 가장 좋은 사실은 나에게 생각의 힘을 길러 활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스마트 폰이 나에게 사색의 힘을 길러 주었듯 많은 이들에게도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의 힘을 길러주는 멋진 소장품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