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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Feb 23. 2023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

글 잘 쓰는 지침서

최근 가장 재미있고 몰입도 있게 읽은 글쓰기 책은 편성준의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이다.

유머와 위트 있는 글을 지향하며 아내와 말 많은 고양이 순자와 살고 있다는 작가는 MBC 애드컴 등 광고회사에서 20여 년간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다 2020년 퇴직했다. 그 후 아내와 함께하는 백수생활을 유쾌하게 다룬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출간했고(아내는 지금 출판기획자로 활동 중), 다음 해에는 글쓰기를 위한 제주살이 에피소드를 담은 『여보, 나 제주에서 한달만 살다 올게」를 펴냈다. 살던 한옥집을 고쳐 '성북동 소행성'이라 이름 붙인 뒤 '독하다토요일', '소금책' 등 책과 관련된 모임을 하고 있다. (단, 돈이 되지 않는다고 함)


시종일관 재밌게 읽히는 편성준 작가의 책 내용 가운데 '2장 안 써질 땐 다 방법이 있다'에는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책 여덟 권이 소개되어 있다. 살펴 보니, 나도 네 권 정도는 읽었고 작가의 소개글에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어 글쓰기 지침서를 찾는 분에게 좋은 정보가 될 듯하여 옮겨본다. 다음은 편성준 작가의 책에 나온 내용을 살짝 편집해서 필사한 내용이다.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책은 셀 수 없이 많아서 평생 글쓰기 책만 골라 읽어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한 번 운에 의지해야만 한다. 내가 매일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을 메모하고 노트를 뒤적일 때 내 몸 가까이에 있던 책이나 문득 떠오른 책 중 여덟 권을 골랐다. 예전부터 반복해서 읽던 책도 있지만 되도록 최근작 중에서 고르려 노력했다. 다독가들에 비하면 내가 읽은 책은 한 줌도 되지 않지만, 나는 이 책들에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당신도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


1. 앤 라모트 『쓰기의 감각』

"소설 쓰기는 한밤중에 운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당신은 오로지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만큼만 볼 수 있지만, 그런 방법으로도 여행지까지 다다를 수 있다." 이 글은 E. L. 닥터로의 말이지만 나는 앤 라모트의 책에서 읽었다. "모든 미국 작가들이 데뷔 전에 앤 라모트가 쓴 책을 읽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책엔 글쓰기에 필요한 자세는 물론 실용적 방법론과 경험담으로 가득하다. 때로는 솔직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글을 쓰는 길로 안내한다.


2. 이성복 『무한화서』

구립도서관에서 이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눈을 뗄 수가 없어서 빌려와 읽다가 결국은 서점으로 달려가 새 책을 구입했다. 이성복 시인은 "거창하게 운명 같은 거 얘기하지 말고 우리 집 부엌에 숟가락 몇 개인지부터 쓰라"고 말한다. "도서관과 책 대신 도서관과 팬티를 연결하라"고도 한다. 비슷한 것끼리 연결해서는 새로움이 나오기 어렵다는 진리를 이렇게 쉽게 설명하고 있다. 대학교에서 학 생들에게 시작법 강의했던 것을 아포리즘 형식으로 엮은 이 책은 어느 페이지를 열어도 글쓰기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깊은 메타포들로 그득하다. 글쓰기와 관련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늘 원픽으로 추천하는 책이다.


3.박연준 『쓰는 기분』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정답을 얘기할 방도는 없다. 그러나 좋아하는 시를 얘기하고, 시적인 순간을 얘기하고, 시인들의 습관을 얘기하다 보면 어렴풋이 시가 뭔지 짐작할 수 있다. 박연준 의 「쓰는 기분」은 그런 책이다. 좋은 글은 니트 소매에서 올이 한가닥 풀리듯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시작해 라면 가닥 같은 이야기가 술술 풀어져 나오듯 써 내려가는 글이라고 한다. '대단한 것, 훌륭한 것을 써보자'고 마음먹으면 늘 실패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그는 "시를 빤스처럼 항상 입고 다녀야 돼"라고 말하는 스승에게 배웠고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 듯하다. 최근에 읽은 그 어떤 글쓰기 책보다 좋았다. 천천히 읽을수록 얻는게 많은 책이다.


4.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하루키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대여섯 시간을 일하고 오후에는 수영이나 조깅을 한 뒤 밤 아홉 시면 잠자리에 든다. 이런 생활 패턴을 유지했기 때문에 그는 평생 '즐겁게' 소설을 쓸 수 있었다. 자신의 평생 직업인 소설가에 대해서, 그리고 소설이라는 것을 쓰는 이유와 자세, 독자에 대한 생각 등을 아주 성실하면서도 쉽고 다정한 문체로 기술하고 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독자들의 반응과 온갖 구설을 피하기 위해 유럽으로 가 일생일대의 히트작 '노르웨이의 숲'을 쓰던 얘기도 나온다. 글쓰기에 관한 책도 재밌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놀라운 에세이다.


5. 김이나 『김이나 작사법』

책을 읽기 전 시인도 소설가도 아닌 작사가가 어떻게 문학동네에서 책을 냈을까 궁금했다. 의문은 쉽게 풀렸다. 문학 전문 출판사에서 출간을 하고 싶을 정도로 작가의 공력이 셌던 것이다. 어떤 경지에 오른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이 책도 작사가는 노랫말만 짓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가르쳐준다. 콘셉트 추출하는 방법부터 필드에서의 바람직한 대인관계에 이르기까지, '작사가가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해?"라는 말이 나올 때 비로소 작사가가 되고 전문가로 우뚝 서는 것이다. 그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늘 감탄할 만한 심사소감을 내놓은 건다 이런 고민과 통찰을 거쳤기 때문이리라.


6. 다카하시 겐이치로 『연필로 고래 잡는 글쓰기』

「사요나라, 갱들이여」,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같은 소설로 널리 알려진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에리히 캐스트너의 글을 빌려 머릿속에 떠올린 생각이나 기억이라는 것은 '흠씬 두들겨 맞은 개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얻어맞은 개는 몹시 겁에 걸려 있기 때문에 누군가 사랑해주려는 마음으로 다가가도 냅다 도망쳐버린다. 그래서 잡으려 하지 말고 곁에서 같이 놀아주어야 한다. 즉 어깨의 힘을 빼고 상상력과 함께 드러누워 놀아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 얘기다. 글쓰기에 대한 책인데도 한 편의 중편 소설처럼 읽힌다. 작가들 의 작가라는 평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7. 김정선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김정선 작가는 20년 넘게 단행본 교정교열 일을 하며 남의 글을 고치고 다듬던 사람이다. 어느 날 그에게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는 항의성 이메일이 도착한다. 작가이자 번역가인 함인주가 보낸 편지였다. 김정선은 이 실제 인물을 책에 등장시켜 마치 소설처럼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그는 "당신 문장은 이상합니다"라는 답장을 쓰면서 자신이 손댄 표현에 대한 설명을 파일로 첨부한다. 어찌 보면 시시콜콜한 스펙터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사심 없는 친절함과 직업적 단호함이 글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출판사 '유유' 돌풍을 일으켰다. 이 책은 맞춤법은 맞더라도 문장 전체를 읽어보면 뭔가 께름칙했던 '비문'의 정체를 밝혀주는 쪽집게 과외 선생이다.


8. 앨리스 먼로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글쓰기 책은 아니지만 이야기를 구성하는 힘과 인간에 대한 통찰을 만날 수 있는 소설집이다. 앨리스 먼로는 단편 소설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탔다.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에 실린 단편들은 대부분 캐나다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인데도 시공간을 넘어 누구나 공감하고 감탄하게 만든다. 표제작을 비롯해 전 작품이 뛰어나다. 만약 외계인이 지구에 지금 막 도착해서 인간에 대해 빨리 알고 싶다고 요청하면 제일 먼저 읽어보도록 권하고 싶은 책이다.


- 편성준,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 中에서


웃는 얼굴. 이순구 선생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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