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카치카. 오늘 새벽에도 음양탕 한 잔 마시고 개운하게 이를 닦다 보니 어디서 환청이 들려온다.
"니 엄마가 제일 잘하는 게 이 닦기란다~"
우리 어머님께서 아들보고 하셨던 말씀이다. 정리정돈이고 살림이고 별로 부지런 떨지 않는데 이 닦는 거 하나만은 뭐 먹자마자 바로 하니 어머님 보시기에 며느리가 제일 잘하는 건 '이 닦기'로 결론을 내리신 듯하다.^^;;
집에서 삼겹살을 궈먹을 때면 오돌뼈 있는 부분은 내가 먹을 테니 그건 먹지 말고 놔두라고 식구들에게 당부를 한다. 우리 집 어른 가운데 이 상태가 제일 좋은 게 나이고, 오돌뼈의 오돌오돌 씹는 맛을 좋아하는 난 즐겨 먹는 부위지만 이가 안 좋은 어머님이나 남편은 못 먹는 부위다. 아이들은 아직 이가 약해서 그런지 잘 못 씹고. 어머님은 처음부터 오돌뼈 있는 고기는 골라내고 드시는데, 남편이나 애들은 우선 덥석 집어서 먹다가 오돌뼈가 씹히면 그제서야 뱉어내곤 한다, 매번. 애들이야 아직 어리니까 그렇다 쳐도 남편은... 음... 바분가....?
"이빨 좋은 건 내림이라는데, 애들이 이빨은 에미를 닮아야 할 것인디 어짤란지 모르겄다. 아범은 나를 닮아서 그런지 이빨이 안 좋은 것 같은디, 우째 나쁜 건 다 닮았나 몰러."
보통사람보다 이른 시기에 틀니를 하신 어머님은 이 좋은 사람을 늘 부러워하신다.
"단 거 잘 안 먹고, 이빨 백날 닦아봐야 태어날 때부터 이빨 좋은 사람 못 이기겄드라. 나 아는 어떤 이는 단 거 엄청시리 잘 먹고, 하루에 딱 한 번 이빨을 닦는데도 나보다 이빨 상태가 좋당께~"
어머님 쓰시는 욕실에 들어가 보면 이를 관리하는 다양한 도구들이 세면대 한쪽에 쫘악 진열되어 있다. 얼마나 자주 닦으시는지 세어본 적은 없지만 한 번 이를 닦기 시작하시면, 엄청 공들여 오래 닦으신다. 가끔 아이들이 할머니 욕실을 쓸 일이 생겨 한참을 기다려도 이 닦으시느라 안 나오셔서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안방 화장실은 아빠가 변기통에 버티고 앉아서 세월아~ 네월아~ 하시는 중이라...(그눔의 폰을 압수하든지 해야지. 폰 딜다보느라 전엔 10여분 걸리던 화장실 이용시간이 이젠 평균 30분 이상이다, 끙!)
그리고 저녁 8시 이후엔 아무것도 안 드신다. 저녁 늦게 뭘 드시면 속이 불편하셔서이기도 하지만, 다시 이를 닦기가 귀찮으신 것도 큰 이유이다.
난 유전적으로 얼마나 좋은 이를 물려받았는지는 모르지만, 뭐 먹으면 바로 이를 닦을 뿐이다. 이 상태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치과 가서 검진 받고, 주기적으로 스케일링도 받고... 그러구보니 스케일링 받으러 갈 때가 되얐네.
글 쓰며 딸이 새벽에 만들어둔 창문쿠키를 아메리카노에 곁들여서 냠냠 맛있게 먹었다. 사탕을 잘게 부수어 쿠키 안에 집어넣고 오븐에 구우면 저렇게 이쁜 모양이 된단다. 이제 이 닦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