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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 Sep 06. 2023

장마

온 들녘이 메말라 있다.  올해는 가뭄이 심하다.

농사꾼들은 비가 오길 바라지만, 비가 그리 쉽게 올 모르겠다.

뭐에 삐졌는지 인색하게도 내려주지 않는다.

6월 말이되면 어김없이 장마가 시작된다.

이제나 저제나 내릴까 싶던 비가 드디어 다.

하늘에 구멍뚫린 듯 쏟아붓는다. 뭐에 성났는지, 폭풍오열  한다.


 어릴적 우리집은 마당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장마가 시작되면 뜰안에 빗물이 차랐다.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성난 사자의 포효같았다.

엄마는  마루가 젖지 않게 비닐덮개로 가림막을 하느라 분주하셨다.

 물이 집쪽으로 몰아치자 엄마는 삽을 들고 마당으로 나가셨다.

 옆집 아저씨가 물길을 우리집 쪽으로 돌려 놓았다. 엄마는 아저씨에게 할 말을 한다. 한바탕 싸움이 일어다.  손재주없는 아버지 덕분에 안팍으로 궂은 일은 다하셨다.


 외할아버지는 책속에 파묻혀 사셨던 민족학자셨고, 선비셨다.

평생 죽어가는 아이들 살리고, 아픈사람을 도우며 봉사하셨다.

외할머니. 척박한 삶속에서도 그런 남편의 뜻을 이해하고 일체 말씀이 없으셨다 했다,

 엄마는 그런 집안의 막내딸이다.

강직하고 과묵한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라서 일까 울엄마도 딱 선비다. 아니 생불이시다.


엄마는 혼기를 넘기면서,  큰오빠의 성화로 싫지만 어쩔수 없이  아버지와 결혼 하셨다.

 홀시아버지라 걱정은 되었어도 밥은 굶지 않는 다기에 시집을 오신거다.


아버지는 여섯살에 엄마를 여의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보살핌을 받고싶어 생부리는 아이같은 남편이다.

좋은 집안의 잘난 아내임을 알기에 그걸 꺾고 싶어 엄마를 홀대할 때도 많았다.

엄마는 자식들과 살아야 했기에 홀시아버지, 시사촌의 시집살이를 감내했다.

가까이 살던 시 사촌들의 고약이 말도 못했다.

아버지가 맞서주지 못하니 엄마가 홀로 모든 걸 당해야했다.

모진 세월을 견디며,  자식 때문에 죽지도, 나가지도 못했다.

결국 참았던 엄마 그들에게 부당함을 토로하였다.

조용하셨지만 모든걸 관망하다가 소리를 낼때 내주시는 분.  엄마는 그런 분이다.


엄마는 자식인 우리에게도 불필요한 말씀을 하지 않는 분이다. 믿고 지켜봐주신다.

 더 많은 걸 못해주는게 미안할 뿐, 스스로 크는 것에 오히려 감사해 하셨다.

 살아가는 삶의 모습으로, 애정어린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그런 엄마가 결정적 순간. 불의에 맞서 싸우는 모습은 생경하고 놀랍다.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실까..의아해진다.

엄마가 한을 풀듯 비가 퍼붓는다. 내 마음도 뻥뚫린 듯 시원해 진다.  


 아버지가 수술하시고 입원중이셨다.

 코로나 시국이라 면회가 안되었다.

 나와 남편은 부모님을 뵈러 병원에 갔다.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못들어가게 막았다.

우리도 이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위중이 마음에 걸렸다.

우리가 난처해하자 엄마는 내 손목을 끌어당기며 관리자들에게 읍소했다.

 아버지가  오늘내일 하고 있어 자식들이  먼길을 달려왔는데 사정을 이해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엄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마음이 먹먹했다.   

엄마는 의로운 길이 외로운 길이어도 그리하셨다. 나는 엄마를 보며 시원함을 느꼈다.  

그 당당함이 부럽기도 했다.


한동안 아이낳고 많이 아팠다. 몸에 힘이없어  간신히 움직였다.마치  허수아비 같았다. 아이를 위해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텼다. 스스로 나약해 보였다.

그럴수록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처럼  꿋꿋하게 살 싶었다. 

그러던 어느날 명상

닮고 싶던 엄마의  깊고 넓은 마음. 그 단단함이 내게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강한 사람이었다...


  장애속에서 해탈을 얻으라는 부처님 말씀이 작게나마 이해되었다.

창 밖으로 장맛비가 쏟아진다. 변함없이 굵고 짧게 지나간다.  


비루함 붙을 데 없어 통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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