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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Jul 06. 2021

내가 있는 곳

도착, 이유가 있을 거야

코로나로 한 동안 집에 가지 못하고 회사 근처 호텔에 지내고 있다. 지역 간 이동을 자제해달라는 지방 정부의 공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호텔이라고 해도 집을 떠나 3주 동안 혼자 지낸다는 것은 힘들고 지치는 일이다. 하루 세끼를 좋은 음식으로 먹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하기 싫은 빨래를 호텔에 맡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 시골에서 거의 한 달을 지내긴 힘든 것 같다. '그래, 아이들 여권이 만기 돼서 연장해야 되는데, 이 핑계로 잠깐 집에 들어갔다 와야겠다.'


오랜만에 호찌민 영사관에 왔다. 이전에 왔을 때는 베트남 경비가 영사관 안으로 들어가려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주고 담벼락으로 줄 세우며 호통치고 있었는데, 오늘은 그 목소리 크던 경비도 심심해 보이고 영사관 내부도 조용하다. 덕분에 생각보다 일찍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를 탈 수 있었다.


아까 영사관으로 올 때도 생각했지만, 그렇게 오토바이가 많던 호찌민 시내가 이렇게 휑한 건 정말 낯선 광경이다. 호찌민 시내에서 차를 타고 돌아다니면 멀미할 것 같이 심란하고 교통 체증과 경적 소리에 속이 답답해야 되는데 말이다.


처음 호찌민에 와서 차를 타고 이동하던 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밖을 볼 수도 또 이 신기한 광경을 보지 않을 수도 없었다.


호찌민 시내의 교통 체증(출처 : VN express)


5년 전 가족들과 함께 베트남의 남부 최대 도시 호찌민으로 이주했다. 평생 살 계획은 아니고, 한국 본사에서 보내서 주재원으로 나와 있다. 3년간의 업무를 마치고 돌아갈 줄 알았으나, 여전히 호찌민에서 가족과 함께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보내고 있다.


"3년 정도 생각하면 될 거야. 그 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할 테니까 잘 생각해보라고, 좋은 기회가 될 거야. 다녀오면 분명 더 좋은 포지션으로 근무할 수 있을 거네" 이렇게 윗분의 말씀을 듣고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3년은 지났고, 이제 그 윗분은 회사에 없다.


'다들 나가기 싫어하는 적자 투성이 베트남 법인에 왜 하필 날 보내려고 할까?' 생각해 보았다. 본사에선 해외 법인 내부를 관리할 매니저를 보내려고 하는데 난 회사에서 관리 파트 업무를 오랫동안 해오고 있었다. '그래, 생각해보니까 관리 쪽에서 매니저급으로 해외에 보낼 사람이 나 포함 두 명 정도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그중에 하필 왜 내가 선택된 건지 궁금했다. 결국 인사팀에 물어보기까지 했는데, 본사에선 그중 내 영어 성적이 제일 좋다고 했다. '별로 쓸모없어 보이던 내 영어 실력이 왜 여기서 주목받게 된 거지?'


그렇게 지금은 퇴사하신 윗분과의 면담을 마친 지 2주 만에 베트남 호찌민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근무해야 하는 회사는 공항에서 2시간을 더 들어가는 공업단지에 위치해 있다. 1월인데도 30도를 넘는 뜨거운 날씨에 힘들었지만, 멀미 나는 어지러운 도로를 지나는 것보단 견딜만했다. 그렇게 공장에 처음 도착한 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회사에서 가장 잘한다는 나의 영어 실력으로 더듬더듬 인사를 한 다음,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직원과 만났다. 키가 작고 까무잡잡한 얼굴을 한 공장 작업복을 입은 남자 직원이었다. 과거에 한국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고, 그때 한국어를 배운 덕분에 통역 겸 생산팀 중간 관리자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영어로 한참 어렵게 직원들과 소통하다가 한국어로 얘기할 수 있는 직원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앉아서 좀 더 얘기해보자고 했다.


"한국 어디서 일했었어요?"

"아.... 대전, 대전이라는 뎁니다."

"어? 나도 대전에서 왔는데, 신기하다. 한국어는 어떻게 배웠어요?"

"일요일마다 한국어 아르켜주는데가 있어서 배워써요."

"혹시 ㅇㅇㅇ에서 배운 거 아닌가?"

(서로 깜짝 놀람)


"어? 나 기억 안 나? 나 거기서 자원봉사했는데, 어쩐지 얼굴을 본 것 같더라."

"저도 기억이 쪼큼 나는 거 가씁니다. 헤헤헤."

"아니 언제부터 우리 회사 다니고 있었던 거야?"

(하하하하)


아니 이런 기막힌 인연이 있나. 내가 자원봉사하던 기관에서 우린 이미 만났었다. 그는 우리 자원봉사 단체에서 한국어를 배웠고, 또 가끔 우린 한국 이곳저곳을 여행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는 진작부터 내가 다니는 회사의 베트남 법인에서 일하고 있었고, 난 같은 회사의 한국 본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 내가 여기에 온 이유가 있는 것 같아. 이런 우연이 있을 리 없잖아.' 이렇게 나의 베트남 생활의 첫날, 내가 베트남에 온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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