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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Jul 07. 2021

뜻밖의 태국여행

원치 않는 해외여행

"얘네는 뭔 얘기만 하면 '컴 사오(Không sao)'래. 아주 지겹다, 지겨워." 법인장이 영업사원과 미팅을 마치고 나오며 나에게 말을 건넨다. '컴 사오'는 '걱정 말아요' 혹은 '문제없어요' 정도로 이해되는 말인데, 내가 생각해도 베트남 사람들은 이 말을 너무 사랑한다. 베트남 사람들의 최애 단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직원들에게 뭔가 지시를 한 뒤 할 수 있겠냐고 물으면, 당연히 대답은 '컴 사오'다. 하지만 이 대답을 들었다고 실제 결과물이 좋게 나올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


왜 안 했냐고, 분명히 된다고 하지 않았냐고 화를 내도, 대답은 '컴 사오'가 나온다. 다만 이때의 '컴 사오'는 최대한 공손하게 표정을 지으며 발음을 길게 늘여서 능글맞게 대답한다. '커엄~ 사아오~'.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다는 뜻 같지만, 내가 본 바로는 이미 문제가 생겨버린 경우가 허다하다.


"괜찮다고 하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나도 법인장에게 웃으며 응대했지만, 이놈의 '컴 사오'때문에 나는 얼마 전 예정에도 없던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비자 발급 때문이었다. 처음 베트남에 들어올 때 노동허가증 발급까지 기간이 오래 걸리기에 임시로 3개월 체류용 상용 비자를 발급받아 나왔다. 그리고 첫 3개월이 지나기 전에 노동허가증을 발급받은 후 취업 비자로 갱신할 예정이었다. 총무 매니저 '롱'도 3개월이면 외부 대행 사무소를 안 끼고 본인이 직접 처리 가능하니 '컴 사오'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서 이제 2주 후면 기존 3개월짜리의 상용 비자가 만기 되는 시점이 되었다. 이쯤이면 내 취업 비자가 다 됐어야 하는데, 아직도 총무 매니저는 나한테 아무런 보고가 없다. 견디다 못해 내가 총무 매니저를 불렀다.


"롱(Long)! 내 비자는 어떻게 되고 있어? 이제 다 됐나?"


"네, 공무원이 도장만 찍어주면 됩니다. 이제 거의 다 됐습니다. 며칠만 기다려 주세요."


"그래? 근데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으니까 빨리 해달라고 독촉해 봐."


"컴 사오."


그리고 다음날 총무 매니저 롱(Long)이 나에게 찾아왔다. 어제 공무원한테 연락을 했는데, 뭔가 돈을 바라는 눈치라고 한다. 베트남에선 급행료, 즉 뒷돈 문화가 있다고 듣긴 했다. 그래도 이런 사소한 것까지 뒷돈이 필요할 줄은 몰랐다. 얼마나 필요한지 물었더니, 한국돈으로 약 5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 필요하다고 한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돈인데, 그냥 주고 일단 비자를 빨리 받기로 했다. 


"자, 이렇게 하면 됐지? 이제 빨리 마무리 지어줘. 시간이 얼마 안 남았잖아."


"컴 사오."


두 달 전에 나온 세무조사는 아직도 한창이다. 다음 주 28일엔 세무서 고위직들과 저녁 식사를 하자고 그런다. 그날은 내 비자가 만기 되기 하루 전인데, '설마 그전에는 비자 발급이 끝나겠지?'


"롱(Long)! 이제 다음 주가 비자 만긴데 어떻게 된 거야?"


"공무원이 돈도 받았으니까. 기한 전에 비자 발급이 안될 일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번엔 믿어도 되는 거야? 확실히 해줘!"


"컴 사오."


그리고 비자 만기 이틀 전,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나에게 롱(Long)이 걸어오는 표정을 보자마자 직감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내일 외국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총무 매니저가 슬픈 표정으로 나에게 얘기했다.


"뭐? 내가 계속 물어볼 때마다 '컴 사오'라매?? '컴 사오'는 무슨 '컴 사오'야! 이거 어떡할 거야!! 내일 세무서 고위직이랑 저녁 약속 잡아놨는데 이거 어떡할 거냐고?" 내일 세무조사 관련해서 공무원들과 약속을 잡은 거라 변경하기도 어려웠다. 갑자기 화가 났다.


"'커엄~ 사아오~'. 안 그래도 좀 전에 다 알아보고 말씀드리는 건데, 내일 방콕행 비행기를 새벽에 타고 나갔다가 점심에 들어오시면 비자 3개월 더 연장할 수 있게 공문 다 만들어 놨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저녁 약속도 문제없이 참석하실 수 있습니다."


"와~ 아 놔 진짜,  '컴 사오' 라매?"




그렇게 다음날 새벽 나는 방콕행 비행기를 타고, 오후엔 호치민에 다시 들어왔다. 생애 최초로 방콕에 다녀온 날이었다. 방콕 수완나폼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심사를 하는데, 출입국 직원이 날 째려본다. 묻지도 않았는데 괜히 찔려서 급한 비즈니스 때문에 잠시 들렀다고 말했다. 무표정하게 도장을 쾅 찍어주길래, 여권을 받아 그 길로 바로 출국을 위한 보딩패스를 받으러 항공사 카운터로 달려갔다. 


방콕을 처음 방문한 느낌은 '공항에서 먹은 볶음밥은 이게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허겁지겁 먹었고, 이렇게 큰 공항 면세점은 시간이 없어서 들러보지도 못했다.' 정도? 정녕 이것이 그 말로만 듣던 세계를 누비며 글로벌하게 사는 국제 비즈니스맨의 삶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날 저녁, 결국 롱(Long)의 얘기대로 문제없이 세무서 고위 공무원을 만날 수 있었다.


"야! 너! 롱(Long)! 결국 저녁에 세무서 직원 만날 수 있다는 거, 그거 딱 하나 지켰어. 도대체 내 비자는 언제 되는 거야?"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Không s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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