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기 전문점 '타케노또오하기'
어렸을 때 엄마를 따라간 시장에서 갓 쪄낸 인절미를 먹고 감격했던 기억이 있다. 떡 가위로 뭉텅뭉텅 잘라낸 찹쌀떡에 고소한 콩가루를 잔뜩 묻힌 평범한 인절미였는데 입안 가득 느껴졌던 따뜻하고 쫄깃한 떡의 식감이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그 이후로 나는 맛있어 보이는 떡을 보면 참지 않는 ‘떡순이’가 되었다.
2020년 3월 15일 후타고타마가와 공원을 향한 것도 순전히 떡에 홀려서였다. 전날 만개한 벚꽃 위로 함박눈이 내린 도쿄는 이날 언제 그랬느냐는 듯 봄날이었다. 오로지 떡이 목적인 외출, 텀블러에 따뜻한 차에서 내려 담고 천 가방 하나에 지갑과 핸드폰만 들고 집을 나섰다.
이번 외출은 하기와라 텐세이의 만화 <사보리만 아메타니 칸타로>를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세일즈맨 칸타로의 달콤한 비밀>이 발단이 됐다. 전날 전기담요를 두르고 침대에서 우연히 이 드라마를 봤는데 8화에 등장한 ‘오하기’를 보고 참을 수 없는 떡순이의 본능이 발현한 것이다.
드라마는 매회 달콤한 디저트를 먹기 위한 세일즈맨 아메타니 칸타로의 ‘땡땡이’(사보루) 작전을 담고 있다. 아메타니는 남몰래하는 디저트 탐방을 취미로 삼고 있는데 사실은 직업을 바꿀 정도로 오로지 ‘단 것’을 먹는 데 열중해 있다.
아메타니는 디저트를 위한 시간을 벌고자 업무 효율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데,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조건은 근로다’(톨스토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에게 ‘노동’은 디저트의 맛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어떤 장치로 작용한다.
8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황금연휴, 칸타로는 부장 댁 아들 나오키 군을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는데 그가 그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인 이유는 사실 신사쿠라마치의 오하기 전문점 ‘타케노또오하기’를 들르기 위해서다.
당시 연수생 신분으로 코로나 시국에 거의 하는 일이 없었던 나는 비록 노동을 하진 않지만 일상을 땡땡이 쳐보자는 사치스러운 생각에 이르게 된다. 나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청소를 했고 빨래를 널었다. 떡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한 나름의 노동을 마친 셈이다.
오하기는 맵쌀과 찹쌀을 혼합해 찐 다음 둥글게 빚어 팥앙금 등을 묻힌 일본의 전통 떡이다. 밥알의 식감이 반쯤 살아있어 쫄깃함은 덜하지만 부드럽고 한입에 먹기 좋다.
8화에 등장하는 오하기 전문점 ‘타케노또오하기’는 동그란 나무 상자에 오하기를 골라 담아준다. 오하기 7개가 상자에 보기 좋게 담긴다. 쯔부앙(팥알을 삶아 으깨지 않은 팥소)이나 코시앙(팥을 으깨어 만든 팥소)을 묻힌 오하기 외에도 너츠나, 바닐라, 코코넛과 레몬필로 새롭게 재해석한 오하기도 선보인다. 가끔 메뉴가 바뀌는 듯했다.
시부야 역에서 전철로 15분 정도 떨어진 사쿠라신마치역을 나서 걷다 보면 타케노또오하기의 오하기를 사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금세 눈에 띈다. 간판도 없는 작은 가게지만 누가 봐도 한눈에 이곳이 그곳이구나를 직감할 수 있다.
나는 그곳에서 한 시간이나 줄을 섰다. 줄이 줄어들 때마다 어떤 오하기를 상자에 담을지 고민했다. 결국 그날 전시된 오하기 7종류를 모두 담아 나왔다.
오하기를 손에 넣고 보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나는 가방에 오하기 상자를 넣고 후타고타마가와 공원을 향했다. 공원을 걷다가 오하기를 하나 꺼내 먹었다.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았다. 마침 아는 선배가 공원에 합류해 나란히 앉아 오하기를 나눠 먹었다.
"오드리, 이 떡 진짜 맛있다."
"선배 나 이거 한 시간 줄 섰잖아. 괜찮아요? 먹을만하죠?"
나는 아닌 척했지만 내심 기뻤다. 떡순이는 떡 하나를 나눠 먹는 일도 즐겁고 기쁜 법이다.
오하기를 사 온 칸타로에게 촌스럽다고 툴툴대는 부장 댁 아들내미 나오키는 결국 칸타로 몰래 타케노의 오하기를 맛보고 황홀경에 빠진다. 그런 모습을 칸타로는 음흉한 표정으로 훔쳐보는데…. 나도 내심 칸타로의 미소를 짓고 있었을는지도.
드라마는 연극이 되었다가 뮤지컬이 되었다가 다큐가 되는 등 종횡무진 장르를 넘나든다. 디저트를 조명하는 만화 풍의 과장된 연출도 일품이지만 단맛의 황홀함을 온몸으로 재현해 내는 배우 오노에 마츠야의 표정 연기와 내레이션이 볼만하다.
<오하기 전문점 타케노또오하기(タケノとおはぎ)의 오픈 시간은 정오입니다. 가게 옆 와인가게 사장이 자신의 할머니 타케노상이 만들어 준 추억의 오하기를 남기고자 가게 문을 열었다고 해요. 전부 팔리는 대로 영업이 종료되기 때문에 정오 전부터 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선답니다. 개당 180엔부터 250엔. 東京都世田谷区桜新町1丁目21−11. 03-6413-1227 ">https://goo.gl/maps/uVE9LDp8waEKZoCG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