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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드리 Oct 17. 2021

리틀포레스트 처럼 '공들여 살기'

일본식 떡국 오조니와 새해 다짐

 "<리틀포레스트>처럼 내 손으로 직접 ‘식탁’이라는 걸 차려보고 싶어. 소박하지만, 정성껏 차린 건강한 식사."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이런 말을 하기에 "얘, 정성껏 사는 게 진짜 얼마나 어려운 줄 아니?"라고 구박했다. 사실은 내게 하는 말이었다. 나야말로 능력만 된다면 정말 그렇게 살고 싶으니까.


 리틀포레스트의 주인공 이치코는 쫓기다시피 도시를 떠나 고향 코모리로 돌아간다. 직접 재배한 작물과 채소로 홀로 소박하지만 먹음직스러운 식사를 준비하는 게 스토리의 외피다. 힐링 영화라며 원작인 만화와 함께 잔잔한 인기를 끌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 서도 리메이크 작품이 나왔다. 임순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김태리가 출연했다. 
 삼시세끼를 외식이나 단백질쉐이크로 때우던 자취생 시절, 영화를 보면서 괜히 화가 났다. 농사짓는 사람 손이 저렇게 깨끗하다고? 혼자 사는 사람이 저렇게 음식을 다양하게 해 먹는다고? 나는 이 영화를 ‘도시인의 완벽한 시골 판타지’로 이름 붙였다.
 나 역시 도시인임을 깨달은 것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다음 날 나는 리틀포레스트의 주인공처럼 끓는 물에 잘 익은 방울 토마토를 삶아 껍질을 벗겼다. 한여름 유리병에 담은 토마토 절임을 사탕처럼 꺼내 먹는 주인공의 행복한 표정이 퍽 인상깊었던 탓이다. 


 공들여 살아가기. 공을 들인다는 것은 시간을 들인다는 것. 어쩌다 시한부 시간 부자가 된 만큼 나 역시 나를 위한 소중하고 귀한 한 끼를 소망하게 됐다. 그것도 도쿄 같은 엄청난 대도시에서 말이다. 
 니토리에서 손에 쥐기 쉽게 밑이 안으로 모인 작은 일본식 밥공기와 둥근 국대접, 나무 트레이와, 찬기 두어 종류를 사다 집에 두었다. 동네 체인형 슈퍼에서 다용도 냄비와 작은 후라이팬, 칼, 가위, 필러칼 같은 주방 도구도 갖췄다. 
 아마존에서는 1인용 밥통을 주문했다. 보관이 쉬운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파는 쌀도 샀다. 이것으로는 모자랐다. 그럴싸한 한 끼 식사를 갖추기엔 준비해야 할 것이 더 많았다. 
 간단한 된장국을 끓이려면 국물을 낼 다시용 멸치부터 된장, 맛을 낼 약간의 소금과 기름 따위가 필요하다. 참고로 일본식 미소국은 한국 된장처럼 오래 끓이지 않고도 맛을 낼 수 있어 다시를 내놓고 끼니마다 국을 새로 끓였다. 그날 기분에 따라 양파를 썰어 넣거나 두부, 버섯, 유부를 넣어 먹었다.
 멸치를 손질하고서 살짝 볶아 물을 부어 팔팔 끓여 다시를 낼 때마다 왠지 잘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매번 대단한 식탁을 차린 것도 아니다. 보통 달걀 후라이나 감자 샐러드를 반찬으로 올렸고, 토마토 절임이나 소시지를 찬기에 담았다.

  어느 날엔 카레를 끓여 삼겹살(일본 삼겹살은 두께가 얇다)을 토핑으로 올렸다. 스파게티를 삶아 문어 숙회를 올리고 올리브오일과 레몬즙을 뿌려 나만의 요리를 시도하기도했다. 결과는 대성공. 하루 하루 혼자만의 근사한 식탁 레시피를 추가해 가면서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남은 채소를 어떻게 하면 다 해칠 울 수 있을까, 식비는 얼마나 남았었더라 따위의 문제가 종종 머릿속을 괴롭히기도 했지만 내가 먹을 음식을 내가 책임진다는 감각이 신선하고 좋았다. 반찬은 재탕하지 않고 조리한 음식은 바로 먹고 치웠다. 이 원칙은 나의 한 끼를 더 맛있게 만들어줬다. 


 새해에는 특별한 한 끼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가족들과 떨어져 해외에서 처음 맞는 새해였다. 어떤 의식처럼 새로운 음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식 떡국, 오조니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한국 떡국과 달리 오조니는 다시마와 가쓰오부시로 국물을 내고 블록 떡을 넣어 길게 떡을 늘려 먹는다. 늘어난 떡처럼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한다. 
 레시피는 지역이나 집안마다 조금씩 다르다. 크게 관동과 관서 지방이 나뉘는데 관동지방에서는 간장 베이스에 네모난 블럭 떡을, 관서 지역에서는 일본식 된장으로 국물을 내고 둥근 모양의 떡을 주로 넣는다. 떡을 건져 콩가루나 설탕을 찍어 먹는 곳도 있다고 한다. 나는 관동 지방의 간장 베이스 레시피를 야후재팬에서 검색해 메모해 두었다. 

 오조니를 만들어 먹으며 한국에 돌아가서도 주말 한두 끼 정도는 시간을 들여 식탁을 차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과정은 비록 귀찮고 비효율적이며 사먹는 것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하게 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낼지라도 말이다. 
 작은 감탄으로 하루하루를 가득 채워 살고 싶다는 생각. 얻는 것보다 얻어서 잃게 될 것들이 무엇인지 점검하면서 하루하루 작은 것들을 해 나가면서 가끔 일기를 쓰고 가끔 요리를 하고… 마치 친구가 말한 리틀포레스트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관동식 오조니 만드는 법>
1. 다시마를 넣어 5분 정도 우려낸 물에 가쓰오시를 부어 1분가량 국물을 낸다.

2. 무, 닭고기를 넣어 끓여준다. 이때 닭고기는 소주로 미리 잡내를 없애주는 편이 깔끔하고 좋다.

3. 소금 한소끔, 간장 두 숟갈로 간을 한다.

4. 파드득나물, 당근, 카마보코(색을 입힌 어묵) 등을 잘라 넣는다. 당근은 꽃 모양으로 자른다. 버섯, 메추리알, 곤약 등을 넣어 먹어도 맛있다.

5. 블럭 떡은 팬에 3분 정도 부풀어오를 때까지 구워 뜨거울 때 넣어준다.

6. 맛있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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