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맞은 세상은 내가 열심히, 아주 열심히 살았음에도 이제 좀 살만해 다리를 뻗고 잘만하면 찾아와 나를 짓눌렀다. 내가 좀 세상 좀 잘 살아보겠다는데 뭐가 그리 아니꼬워서 나를 이렇게 또다시 구렁텅이로 밀어 넣어버리는 거야!'
어디 잘난 것은 없지만 세상 물정 모르고 천성이 아주 밝아 세상을 믿고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나를 버리다니. 부처님이고 하느님이고 왜 나를 이렇게 버리는 것인지 이제부터 신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몰래 비상금으로 모아두던 돈은 무슨 상관이고, 금붙치며 청약저축이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안방 옷장 구석에 이쁜 종이가방을 아껴서 모아두곤 했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간호사가 종이 한 장이 쓰윽 내민다.
“이 서류 작성하세요.”
“무슨 서류인데요?”
“산정특례 서류예요. 이거 쓰면 바로 처리되고 의료비 지원도 받아요!”
그렇게 전혀 1%도 관심이 없었던 산정특례 혜택을 받는 중증질환 환자가 되었다.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가는 문턱에서 정신없는 알파벳 로고가 쓰인 옷을 거꾸로 입고 호출이 올 때까지 병실에서 대기를 했다. 호출되자마자 병상을 이동해주는 담당자가 와서 수술실 가는 침대에 누웠다.
천장만 보고 가는 그 길은 너무나 떨렸고, 수술대에 올라서는 긴장한 떨림인지 추워서 떨리는지 모를 정도로 추웠다. 그때 손을 내밀어 잡아주던 간호사는 얼굴은 모르지만 그냥 고마웠다. 손을 꼭 잡았다.
첫 수술을 하고 나서 모든 것이 깨끗하게 나아질 줄 알고 지냈다. 병의 심각성도 모른 채, 나일론 환자처럼 수술만 하면 세상 무슨 일 없던 사람처럼 살아가는 줄 알고 아주 해맑게 지냈다. 그러다 수술부위가 너무 아파서 두 번째 수술을 응급으로 했다. 두 번째 수술에서 골반쪽의 사타구니에 있는 동맥을 먼저 잡고 해야 하는데 응급으로 하다 보니 수술을 하다 피가 멈추지 않아 중환자실에서 이틀을 맞이했다.
"켁켁켁~"
"씩~씩~~ 츄르르르"
간호사는 말 한마디 없이 본인일을 하기 바빴다.
"켁켁켁~"
내 양옆으로 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간호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달려와 석션을 한다.
이놈의 중환자실은 사람 구실을 못하는 곳이었다. 그냥 천장만 보고 숫자나 세고 있기 딱 좋았다. 정신은 멀쩡해서 중환자실의 악몽을 여전히 꿈 길인 줄 알고 있을 무렵 일반실로 옮겨졌다. 그러다가 일주일 만에 다시 3번째 수술을 하는 날, 위아래로 모든 내용물을 다 없애야 했다. 수술부위는 꼬리뼈 종양인데 종양의 사이즈가 아주 커서(20센티 정도였나) 아주 그지 같은 수술이었다. 내가 어떻게 알았나. 꼬리뼈와 같이 위치하는 곳에 방광, 자궁, 대장이 함께 있을 줄이야. 소장, 대장을 건너 직장 쪽이 무슨 일을 하는지 나는 알 길이 없었다. 세 번째 수술을 하고 난 후, 나는 장기나 신경이 무슨 일을 하는지 다시금 알게 되었다. 사타구니 한쪽의 신경은 굿바이를 했다. goodbye my 신경!
4개월 병원 동안 모르핀이라는 마약성 진통제와, 소변줄을 끼고 있었다. 그렇게 4개월간의 병원생활을 마지못해 끝내고 소변을 내가 직접 누지 못해 자가도뇨를 배우고 퇴원을 했는데 나의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이 부러웠다. 공중화장실 옆칸에서 시원하게 오줌을 싸는 분이 얼마나 부럽던지.
지나가는 바람까지 부러웠다.
그랬다. 평범한 게 가장 어렵다는 걸, 나는 그 평범하지 못한 사람이 된 것이었다.
왜 길거리에 그 많은 장애인은 보이지 않는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되었고, '먹고 자고 걷고' 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 쓰러질 만큼 힘을 내야 하는 일임을 하나씩 배웠다.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이 싫었다.
배우 윤여정 씨가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서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배우가 제일 연기를 잘할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돈 필요할 때 연기를 제일 잘해요!"
"역사상 유명한 예술가들도 배고플 때 그린 게 최고예요!"
빗대어보며,
"글도 언제 제일 잘 써지는지 아세요?"
"제일 절박하고 바닥일 때 잘 써져요."
나도 아쉽다. 인생의 바닥이라 여겼던 그때, 아파서 갑자기 멈추게 되었을 때, 글로 기록하지 않은걸. 지금 그 감정을 되짚어보면 처절한 그때의 감정이 정확히 느껴지지 않는다. 감정보다는 '그랬구나' 정도로 글을 쓰지 내가 느낀 절절한 감정은 표현되지 않는다.
경제적 활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니 집에서 시간을 흘러 보내도 보내도 흐르지 않아서 삼시 세 끼 밥상을 취미 삼아 블로그에 올렸다. 아픔을 잊기 위함도 있었다. 나의 하루를 보이게 기록하고 싶었다. 유산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남기도 싶었다. 작가라는 호칭을 붙여 나만의 책을 한 권 내고 싶은 욕심도 반영해서 하루를 의미 있게 기록하기로 했다. 그 시작은 매일 밥상이었다.
나는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기억하기 위해서 기록을 했다.
밥 먹는 밥상에서 말이다.
소중한 나의 하루를.
자, 저의 이야기를 엿 읽었으니 당신의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시간이 필요하다면 기다릴게요. 준비가 되면 이야기해주세요. 당신이 제 이야기를 정성껏 읽은 것처럼 저도 귀담아들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