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으로 떨어진 나는, 울부짖었다.

울부짖다 희망을 발견했다.

by Malika

영화 "해바라기" 오태식의 대사가 떠오른다.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오태식처럼 나도 울부짖었다.

이제 좀 살만한데 그 행복마저 가져가 버린 억울함에 울부짖었다.


울고

원망하고

또 울고 원망하고


진료실을 나와 의자에 앉아 멍한 사람처럼

눈물이 그냥 주르륵 흘렀다.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랑곳할만한 마음의 눈치는 1도 남아있지 않았다.

차를 타고 가면서도 혼이 빠진 사람처럼 울었다.

볼에는 무언가, 굳이 눈물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액체만 조용히 흘렀다

집에 와서도 아이는 거들떠보이지도 않을 만큼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배고프지 않았다.

입안에 무언가를 넣어 저작운동을 할만한 기력도 없었다.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간 것처럼 힘이 없었다.

걸려오는 전화도 받고 싶지 않았고

옆에서 하는 가족의 이야기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어떤 남의 sns 가십거리도 보고 싶지 않았고

티브이 개그 프로그램도 보고 싶지 않았고

쨍한 날씨마저 원망스러울 만큼 바닥을 헤매다 주저앉아 울부짖었다.


모든 것이 억울하고 억울하고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다 수술 날짜가 잡혔다.

마음을 다잡고 수술하면 모든 게 좋아질 거야라는 동아줄을 잡고서 입원하여 수술동의서를 쓰러 갔다. 여러 명이 모여서 수술 설명을 듣고 동의서를 내려는 순간, 호출이 왔다. 다시 병실로 올라오라는 호출이었다.


교수님은 수술 위험도가 있는지 일단은 약물을 써보자고 하셨다. 약물이 어떤 건지 알 길이 없었다. 나는 검색 따위는 해보지 않았다. 혼이 나가 남편이 이래저래 검색을 하고, 사돈에 팔촌까지 다 동원해서 알아보았다. 조언을 구했다. 돌아오는 답변은 별거 없었다.


약물치료를 받는다고 한 후 집으로 온후 또 울기 시작했다. 수술만이 희망이라 여겼는데 약물치료라니, 다시금 나는 시름시름 시든 상추처럼 시들어갔다. 그리고는 약물이 병원에 들어오기까지 밤낮으로 울기 시작했다.


우리 몸은 신기했다.

울어도 울어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신경외과에서는 약물이 늦어진다는 말만 되돌아왔다. 고용량이라 이것저것 처리가 필요하다는 답변이었다.

그 사이 남편은 검색을 하고 또 검색했다. 의지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으니.


진단서에 기록된 진단명을 가지고 남편은 검색을 했다.

그리고는 두 명의 의사를 찾았다. 예약을 했다. 두 분 다 만나볼 심상이었다.


서울의 한 병원,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서류를 챙겨서 처음 맞이한 빨간 벽돌 병원.


간호사가 부른다.

"마리카!"

"네~"

"들어가세요!"

진료실에 멍하니 앉아 있다 최대한 괜찮은 척 진료실로 향했다. 앉자마자 울기 시작했지만

(기억하기 싫은 상황들은 기억이 잘 안 난다. 회피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수술만이 희망이라 여겼는데 약물도 가능하다는 소리에 수술은 최대한 안 하고 싶었다.

의사 선생님의 지나가는 말이 귀에 또렷이 들렸다.

"수술해야 하는데.!"

약물치료는 가능하냐고 물었다. 가능했다.

다른 병원에서는 제가 맞고 자하는 약이 안 들어온다고 하소연을 하니 여기는 바로 가능하다는 답변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전해졌다.


그때 병원 입구에 있던 플래카드 문구가 생각났다.


"암 전문병원, 암 치료 50년 노하우"


해당 주사를 맞으러 '항암요법센터(주사실)에 가서 알 수 있었다. 내가 맞는 약물은 여기에서 아주 흔한 것이었다. 한가닥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폭우가 내리던 봄날쯤,

응급실로 달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바닥에서 희망을 발견한 적이 있나요? 희망이란 어쩌면 바닥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거기서 한가닥 희망을 봤어요. 그게 희망인지 로망인지는 알길 없지만 희망을 발견했다고 믿고 싶어요.


혹시 절망에서 희망을 주운 경험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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