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첫 면담일
“네? 병원 접수처요?”
취업 알선을 해주신다던 원장님은 여자 연수생들에게 병원 접수처 자리를 소개해주셨다. 병원 접수처 일을 하려고 우리가 베트남까지 온 건 아닌데… 남자 연수생들에게는 월드잡에 올라온 일자리를 그대로 베껴서 알려주셨다. 심지어 원장님은 여자 연수생들을 한 명씩 면담을 하며 여자들이 목소리를 낼수록 자신들의 입지를 더 좁히는 것이라고 말하며 미투니 뭐니 하면서 사회를 어지럽게 한다고 했다. 별생각 없이 베트남에 와서 이런 소리를 듣고 있자니 얼토당토 아니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될 줄 몰랐다. 엄마아들의 말에 홀려 온 나야 그렇다 쳐도 취업이 간절했던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충격적인 상황이었으리.
운영기관에 여러 번 푸시해서 돌아온 피드백이 겨우 이런 상황이라니 우리는 더 이상 운영기관을 믿을 수 없어서 다른 돌파구를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연수생 중에 누군가는 이 상황을 알리려 부산시에 민원을 넣었다. 아직까지도 그게 누구인지는 알 수 없고 그 민원은 결국 운영기관에 알려지고 어학원 원장까지 알게 되었다. 민원이란 원래 익명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원장은 앞으로 다음 기수 연수 사업 계약을 못 따낼 수도 있겠다는 우려로 민원인을 찾겠다며 노발대발했다. 취업 알선 면담을 명목으로 하여 원장은 민원인 색출 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원장이 또 어떤 횡포를 부릴지 몰라서 면담을 기다리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면담 차례를 기다리는 도중 갑자기 윗층에서 쿵 소리가 크게 났다. 연수생이랑 원장 사이에서 싸움이라도 벌어진 것인가 다급하게 올라가 보았지만 연수생 반장이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원장이 화가 나서 원펀치로 반장을 쓰러뜨린 게 아닐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동남아 촌동네에서 이 상황을 어떻게 마주해야 좋을지, 눈앞이 깜깜했다. 반장은 바로 옆방에 있는 침실로 옮겨져서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 안정을 취했고, 모든 면담이 취소되었다. 그다음 날이 되어 원장은 연수생 중에 나이가 가장 많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 보이는 연수생을 불러 너가 민원인이 아니냐며 의심을 했고 욕설이 오갔다. 그 연수생은 원장의 욕설을 녹음하여 고소를 하자 문제는 더욱 불거졌다.
며칠 후 운영기관 팀장이 문제 해결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급히 왔다. 취업 알선을 위해서 연락할 때는 제대로 답장도 안 하더니 문제가 터지니 곧장 날아오는 것이 참 웃기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목소리를 내야지만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하는구나 싶었다. 다행히 팀장이 원장과 고소한 연수생의 앙금을 풀었는지 그 연수생은 소 취하하였고, 운영기관 측에서는 이 문제를 덮으려 처음 사업계획대로 교육 기관을 하노이 외국어 대학교로 옮길 수 있게 해 주었다.
하노이 외대로 교육기관을 옮기기 전까지 대부분 불만을 토로했지만, 실제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적어서 답답했다(나대는 사람은 있어도 나서는 사람은 드문 것이 어딜 가나 국룰이겠죠?). 나를 포함하여 몇몇 사람들이 운영기관에 취업 알선을 계속 요청하였고 운영기관은 우리를 달래는 듯이 말했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이런 경우가 내 인생에서 처음이었기에 연수생 대표인 반장님을 따라서 할 수 있는 것은 따라 하려고 노렸했다. 운영기관 측에서는 하노이 외대로 2기 연수생들이 올 예정이라 여태 있었던 일들은 모두 함구하라고 요구했다. 다른 연수생들의 학습에 영향을 주지 말라는 명목으로 함구하길 바랐지만 실상은 당신들이 부끄러운 선택을 해서 그런 것이겠지.
하노이 외국어 대학교로 이동한 후에서야 우리는 안심할 수 있었고 더 이상의 취업 알선은 기대하지 않았다. 운영기관 측에서 교육기관을 옮겨주는 대신에 앞으로 문제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 갔기 때문이다. 운영기관의 잘못된 선택으로 모든 연수생들이 피해를 봤는데 모든 상황은 우는 애 떡 하나 더 주는 것 마냥 흘러갔다. 우리는 더 이상 취업에 관해서 아무런 요청을 할 수 없는 입장이 되어 버렸다. 연수생들은 각자 월드잡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취업박람회에 참가하였다. 주말이 되면 하노이 방방곡곡 탐방하기도 하고, 마지막 주에는 연수생들 몇 명과 사파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월드잡에 이력서를 제출하면 연락이 올 줄 알았지만 이상하게도 연수생 중에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은 사람이 없다. K-move가 아닌 변변치 않은 프로그램 연수를 받고 있었던 탓일까. 베트남 취업 방법을 알다가도 모르겠더라. 하노이 취업 박람회에서는 홍보하러 나온 회사들이 대부분이었고, 실제로 채용을 목적으로 나온 회사는 드물었다. 월드잡이나 박람회는 기업 홍보용이고 베트남 취업을 위한 다른 루트가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나는 경험 쌓고자 한 회사의 면접을 보았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까지 면접 결과는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