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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을온예술 Jul 02. 2018

혁신교육을 넘어 마을교육공동체를 꿈꾸다

Special ON

이윤정 선생님을 만나다       

    

  성북구청 협치지원관 이윤정 선생님을 지난 5월 5일 정릉동 동네책방 <호박이넝쿨책>에서 만났다. 이윤정 선생님은 2016년에서 2017년까지 2년 동안 성북구 서울형혁신교육지구의 마을교사추진단장을 지내셨다. 혁신교육은 민/관/학의 협치를 통해 마을과 학교가 교육의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현 교육의 문제점을 하나 꼽으라면 입시경쟁과 사교육의 부담으로 학생과 교사를 포함한 교육 주체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이런 교육 문제를 마을과 학교가 함께 풀기 위해 다양한 교육실험을 하는 곳이 혁신교육지구라 할 수 있다.     

 

  2015년에 시작해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성북혁신교육을 돌아보고 앞으로 마을교육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로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였고 기회가 되면 마을교육의 다양한 주체들을 만나볼 생각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혁신교육을 위해서는 현재 설계되어 진행되는 혁신교육의 틀을 넘어서 더 다양한 실험과 모델을 만들어야할 필요를 느꼈다. 현재의 틀과 사고를 넘어 마을교육과 마을교육공동체에 관한 선생님의 고민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으며 마을교육, 민관학 거버넌스에 대해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모임의 시작은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인터뷰로 만난 자리였지만 선생님은 인터뷰를 의식하지 않은 듯 평소와 마찬가지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질문을 드리기 전이었는데도 본인이 요즘 구상하고 있는 마을교육에 대해 열띠게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공식적인 행사나 일 때문에 선생님을 주로 봐왔기 때문에 선생님이 어떤 길을 걸어오셨는지 거의 아는 게 없었다. 어떻게 혁신교육과 인연을 맺으셨는지 질문을 하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혁신교육지구에서 일을 하게 된 계기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선생님이 살아온 인생길이 대충 보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어떤 학생이었는지, 결혼 후 아이들 교육은 어땠는지, 대치동 영어학원 원장을 하면서 느꼈을 가치관과 일 사이의 균열, 마을교육에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 등을 고스란히 느끼며 “이 분의 자녀교육과 교육에 대한 경험과 신념이야말로 지금 마을교육에 꼭 필요한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개인의 삶을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선생님 교육에 녹아있는 철학의 기본은 MBTI 로부터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선생님의 교육이나 일은 뭐가 됐든 MBTI로 시작한다. 선생님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나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신다. MBTI는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게 해주는 훌륭한 틀이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알아가면서 뭔가를 하려면 2,3년 걸리는데 그걸 압축해서 정기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면 효과적이지요. 우리나라는 일을 하면서 자기 스토리를 공유 안 해서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것 같아요. MBTI 수업을 해 보면 자기 성향이나 유형을 설명하게 되는데 저는 제 얘기를 먼저 해요. 아이나 남편하고 이런 문제가 있는데 이건 우리가 이렇게 서로 달라서 생기는 거드라. 이런 식으로 6개월만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게 되면,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의 성향과 장단점을 잘 알게 되요. 그러면 난 이것을 잘 하고 너는 그것을 잘 하니까 난 이거 할 게 넌 그거 해,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서로 역할을 나눠서 일하게 되면 별 불만 없이 서로가 즐겁게 일할 수 있어요. 나이 드신 분들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 같은 데서 자기 얘기를 하라고 하면 자기도 자기를 잘 몰라요. 사회적으로 원하는 모습대로 변해왔기 때문에 검사를 해도 자기 모습이 안 나오는 경우도 많아요. 제가 하는 수업의 목표는 수업이 끝나고 참여자들끼리 동아리를 자발적으로 만들도록 하는 것인데, 각자 이야기를 하면서 오픈 마인드가 되면 수업도 즐겁고 나중에 동아리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은 수업들은 수업이 끝나도 저 사람 수업에서 봤는데 하는 정도잖아요. 수업이 성공적이려면 수업 초반부에 서로 오픈 마인드가 되느냐의 여부가 정말 중요해요. 처음에 서로 오픈 마인드가 되면 즐겁게 계속 만나면서 뭔가 같이 해볼까하는 분위기가 되잖아요. 그런데 어른들은 자기 소개하는 게 어색하기도 하니까 평생교육에서 수업을 여는 부분은 제가 맡아서 하곤 했어요, MBTI라는 말을 넣지는 않고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나 ‘나를 찾아가는 여행’ 같은 이름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나의 모습을 알아가면서 상대방 모습도 보게 되고 서로 이해하는 과정을 함께 하는 거죠.”     


  선생님은 마샬 간츠(Marshall Ganz, 하버드대 정치학교수)의 책 <조직론 : 피플, 파워, 체인지(Organizing: People, Power, Change)>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했다고 말씀하시며 이 책을 읽으면 마을 활동가들이 매우 공감할 거라 하신다. 왜냐하면 저자인 마샬 간츠는 대학 3학년 때 마을로 나가서 협동조합과 노동조합을 만든 활동가였고, 활동가로서의 경험을 이론으로 정리한 사람으로서 마을 활동가들이 그의 책을 읽으면 ‘아 그렇구나’ 하고 다 공감하도록 이론이 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에서 사람들을 조직할 때 제일 먼저 할 일로써 나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나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공동의 비전을 발견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미국은 유치원 때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가져와서 이야기하게 한다든지 하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우리 딸도 한복을 가져가서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면 ‘저게 한복이구나, 한복은 저럴 때 입는 거구나,’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잖아요. 미국에서는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문화권이 다른 아이들이 서로 배우는 상호학습이 유치원 때부터 이루어지는데, 우리나라는 내 이야기 하는 법을 배운 적도 없고 내 얘기를 하면 ‘지 자랑하네,  싸가지가 없네,’ 비난받기 일쑤고 자기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어디서부터 해야할 지 잘 모르는 게 현실이에요. 지금 와서 보니까 제가 MBTI를 통해서 사람들을 끌어 준 것이 바로 ‘나의 스토리를 공유하고 상호학습하면서 각자 뭘 잘 할지 발견하게 해 준 거였구나’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최근에 학습동아리를 시발점으로 마을만들기를 하려는 시도들이 있는데 나의 스토리를 공유하는 첫 단추가 잘 안 끼어줘서 사람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다른 아이들 다르게 교육해야     


  모든 모임은 편하고 즐거워야 오래 가고 잘 돌아가는 게 정석이다. 서로를 이해하면서 각자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조직은 그 안에서 사람들 각자가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 영어교육을 하셨던 선생님은 엄마들이 집에서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게 하는 교육을 할 때도 제일 처음에는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꼭 넣어서 교육한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다 다르니까 다 다르게 가르쳐야한다고 말씀하신다. 선생님은 아들과 딸 남매를 키우셨는데 두 아이 교육을 다르게 했다고 하신다. 두 아이의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해주니까 사교육 없이도 아이들이 공부는 물론이고 생각하는 힘도 또래 아이들에 비해 더 깊게 잘 자라줬다. MBTI의 혜택을 제일 많이 본 사람이 바로 본인이라 하신다. 아이들 성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맞춰서 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학교나 학원에서는 아이들 성향에 맞추는 게 아니라 한 가지 방식에 아이들이 무조건 따라 가야 하니까 그 방식과 맞지 않는 아이들은 재미가 없고 그러다보면 결국 잘 안하게 되는 것이다. 선생님의 자녀교육방식에 대해 아이들 친구 부모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많이 보냈지만 이제는 선생님이 옳았다는 것을 다 인정한다. 아이들 각자의 특성과 성향에 맞춰주는 교육으로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며 젊은 엄마들한테 이런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고 하신다.     


  선생님은 2014년에 아이들 다 대학 보내고 성북에 정착하셨다. 앞으로 십 년 동안 할 일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다고. 여행을 좋아해서 가고 싶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생각을 했다고 하신다. 사교육 시장에서 영어학원 원장을 했었는데 그 일을 다시 하는 것은 돈은 벌 수 있겠지만 허무하게 느껴졌고 자신의 교육관과도 맞지 않는 일이었다. 사교육 안에서 좋은 교육을 해보려 했지만 사교육 시장은 경영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대신 그 때의 경험을 통해 사교육이 얼마나 아이들을 죽이는 교육을 하는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지만 현재로선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학원에 보내지 않고 아이들을 잘 키워낸 선생님의 노하우와 철학을 마을공동체에 녹여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교육이 당장은 돈이 안 되겠지만 마을을 살리고 교육도 살리면서 나중에는 돈도 버는 방식, 이거야말로 제대로 돈을 버는 일이라는 생각에 머물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지인 소개로 평생학습도시인 공주에서 엄마들이 하는 유아영어교육지도사 과정을 기획하고 진행까지 하게 되었다. 이 때 역시 배움의 과정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으로 시작했다. 한국인과 필리핀 이주민 엄마들이 함께 모여 있어서 서로의 장점을 살리고 에너지 레벨의 조합을 맞춰 그룹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룹들은 자발적으로 동아리로 이어지고 홈페이지도 만들면서 교육 콘텐츠 개발에서부터 동화구연까지 자연스럽게 발전해나가 우수 평생학습동아리 상도 받았다. 그러나 좋은 성과를 이어 계속 성장하기 위한 역량강화 교육이 이어지지 못했고 수업구성에 대해 가까이서 조언해 주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함께 성장하고 팔로우업할 수 사람들과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성북의 기관들을 다니며 정보를 찾았고 그러던 중에 성북 혁신교육지구 추진단 모집 공고를 보고 혁신교육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마을교육공동체는 가치 중심으로 생각해야     


  성북 혁신교육지구는 민.학.관의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구조를 지닌다. 민이라 할 수 있는 주체도 학부모, 마을교사, 예술강사, 교육에 관심있는 주민 등으로 다양하다. 선생님은 처음에 학부모 모임에서 활동하고 싶었는데 자녀가 이미 성장을 해서 학부모 모임이 아니라 마을교사 추진단에서 활동을 시작하셨다. 2년 동안의 혁신교육지구를 하면서 느낀 점을 들어보았다.      


“혁신교육의 주체들이 교육의 방향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하는 자리가 부족하고 사업 이야기와 회의하기에만 바쁜 게 현실이에요. 서로의 이야기가 공유되지 않기 때문에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들고 각각의 사업들이 연결된다는 느낌 없이 자기 사업을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죠. 교육을 바꾸고 교육주체들이 행복한 교육을 하자고 모였던 사람들이 사업 중심으로 돌아가는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레 흩어진 것이 안타까워요. 마을교육공동체는 사업으로 접근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운동으로 가치 중심으로 바라봐야 해요. 마을 방과후 TF를 하면서 마을교육공동체 모델을 만들 기회도 있었는데 구체적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했어요. 관의 적극적인 역할이 아쉬웠지만 장월초등학교 학부모님들을 만난 건 행운이었어요. 함께 새로운 교육의 불을 지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지금도 모임을 같이 하고 있어요.”      


  혁신교육지구에서 2년을 보내시고 선생님은 교육 분야만 아니라 성북 전체를 바라보며 민관 협치를 위해 성북 협치지원관으로 일하고 계신다. 공유성북원탁회의 등의 여러 조직들을 알아가며 민관을 어떻게 엮어낼지 그 고리를 찾고 계시다. 성북구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동네마다 인적, 물적 자원을 파악했으며 성북에 5060 세대를 위한 50플러스 센터도 들어오고 돌봄센터들도 생겨날 텐데 은퇴세대들과 마을교육이 만나도 좋겠다는 생각도 하신다.      


  선생님께서는 인터뷰 하기 일주일 전에 탐방하고 온 참이슬마을에 대해 말씀하신다. 참이슬마을의 사례에서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몇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참이슬마을은 경기도 시흥시 참이슬아파트 주민들의 주민공동체를 일컫는 말이다. 아파트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참이슬아파트는 아파트라는 공간을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마을살이 배움터로 바꿔놓았다. 참이슬마을의 자랑은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공정여행 마을투어 프로그램이다. 나중에 블로그 글들을 찾아보니 갯골생태공원 등의 자연경관은 물론이고 마을의 공동체문화와 문화재, 동네 시장의 상점들과 다양한 생활문화 체험 등이 어우러지는 동네여행이었다. 여행을 시작하는 참이슬 마을의 북카페와 참이슬평생학습마을학교, 녹색에너지놀이터 등을 보면서 그런 공간을 가꾸고 유지하는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그려졌다. 시흥의 오래된 시장인 도일시장 마을활동가들의 노력도 눈에 그려졌다. 마을공동체를 가꾼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참이슬마을의 지속가능성은 국가의 지속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평생학습도시 사업으로 3년이라는 지속적인 사업이 가능했고 주민들이 원하는 전문가들을 모셔와 공부를 할 수 있게 지원해줬고 활동가 및 전문가들이 지역에 함께 있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문제점을 찾고 고쳐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참이슬마을의 모델은 관의 지속적인 지원과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라는 좋은 조건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마을살이의 경험이 삶의 힘이 되는’이라는 참이슬마을의 구호가 말해주는 게 크다. 마을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과 마을의 공간과 자원들을 잘 엮어내는 일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북은 인적 자원이 정말 풍부하다. 이 자원들을 어떻게 엮어낼지에 따라 우리는 더 멋진 일을 할 수 있다. 마을이 평생학습장이 되는 멋진 일을 만들고자 하는 게 선생님의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비전이고 꿈이다. 선생님은 마을교육공동체의 새로운 모델을 성북에서 잘 만들기 위해 오늘도 여러 자원들을 엮어나가고 계신다. 남들이 이미 지나간 길을 가는 것보다 내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게 더 의미 있다. 기다리지 않고 먼저 준비하고 먼저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새로운 마을교육공동체는 마을과 교육 두 가지 다 살리는 방향으로 향하는 길이 될 것이다. 혁신교육에 대한 근본 질문에서부터 마을교육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좋은 시간을 함께 해주신 이윤정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글을 마치겠다.     

           



글. 김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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