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유람선, 탁심광장, 신시가

둘째 날, 2012. 10. 8

by 말만
배 위에서 본 무지개

배에서 블루 모스크와 성 소피아 성당 톱카프 궁전 등과 곳곳에 산재해 있는 자미 등 유적을 멀리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였고, 자미의 규모를 나타내는 미나레 숫자 세는 재미도 쏠쏠하였다. 두 번째 다리에 다다르기 전 해협이 가장 좁아진 지점에 있는,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루멜리 히사르' 와 '아나돌루 히사르' 포대 유적을 멀리서 바라보기도 하고, 갑자기 쏟아진 비를 맞으면서도 선실로 들어가지 않고 짜이 한 잔에 추위를 떨어내며 즐기다 보니 하늘 한 켠에 무지개가 뜬다. 세월에 찌든 마음에도 그 순간에는 무지개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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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나기와 함께 두 시간여를 유람하다 내린 부둣가에 고등어 케밥 집이 두 세 군데 눈에 띄어 먹자 하니 아들은 에밀 아저씨의 케밥을 먹어야 한단다. 일단 부둣가를 나와 봤으나 그 아저씨네는 보이지 않아 급한대로 눈에 보인 홍합 밥을 맛본 후, 비도 맞고 으슬으슬한데 찾으러 다니기도 귀찮아 그냥 가까이 있는 가게에서 고등어 케밥을 먹어 보니 우리 상식으로 비린 고등어가 빵 속에 반 마리나 들어 있는데도 전혀 비린 맛을 풍기지 않음이 신기했다. 그런대로 먹을만 했으나 아들은 갈라타 다리 하부를 건너 어시장을 구경하다 에밀 아저씨의 리어카를 발견하더니 더욱 아쉬워하며 기회가 되면 꼭 먹을 것이라며 다짐을 한다.


낚시꾼들이 즐비하게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갈라타 다리 상부를 통해 다시 건너 와 세계 최대의 향신료 시장이라는 이집션 바자르에 발을 딛는 순간, 코를 찌르는 듯 한 냄새와 원색적인 색깔의 향신료, 사탕 등에 질리고 너무 사람이 많아 일행과 떨어질까 봐 노심초사하며 따라 다녔다. 냄새 때문에 힘들어하는 나를 생각해 대강 둘러본 후 빠져 나오다 보니 우리네 동대문 시장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골목도 있어 여기 저기 구경하고 시장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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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램을 타고 신시가지로 향해, 경사도가 최고도여서 언덕 위에서 끌어당기는 것과 같은 구조라는 한 정거장짜리 트램을 타고 매달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당도한 탁심광장은 초가을 바람 속에도 관광객이 너무 많아 가족이 길을 잃을까 염려할 정도였다. 밤 굽는 구수한 냄새에 현혹되어 한 봉투 달라하니 10리라치고는 너무 양이 적었다. 왠지 바가지를 쓴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모든 노점상들이 재래식 소형 추저울을 쓰고 있었다. 비교적 물가가 싼 편이나 아이스크림, 군밤 등 주로 관광객을 상대로 파는 간식은 비싸고 자국민들의 아침식사 대용이라는 깨를 뿌린 담백한 빵은 크기에 비해 1리라밖에 하지 않아 누구나 부담 없이 사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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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모양의 루미나리에 (왜인지 아들은 이의제기 - 그냥 기둥 두 개 덜렁 문 모양에 전구 좀 해 놓은걸 루미나리에라고 거창하게 부르긴 싫다!!!)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연속 설치되어 있는 이스티클랄 거리를 구경하며 악기 전문 판매 거리를 향해 걷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너무 길게 조성되어 있는 쇼핑가를 계속 걷자니 하루 종일 걸은 양도 족히 삼십 리는 넘을 것 같은데 2km가 넘는 길을 또 걸으려니 발이 너무 아파 조금은 고통스러웠으나 악기를 보고파하는 아들의 의지에 맞춰 걷고 또 걷고! 마침내 당도한 악기거리는 의외로 작고 한산하였으나 각종 중고 악기들에 흥미를 느끼는 아들은 사서 들고 갈 수 없음에 너무 안타까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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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종점에서 만난 갈라타 탑의 전망대에 차가운 바람에도 불구하고 올라 보니 이스탄불의 야경과 보스포러스해협에 설치된 두 개의 다리 조명이 어울려 황홀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전망대를 한 바퀴 돌다 만난 한국여성 한 명이 가족이냐고 물으며 부러워 한다. 그녀가 보기에 고령인 우리 부부를 모시고 온 아들을 칭찬하는데 쑥쓰러워 하는 아들보다 내 기분이 더 좋았다. 그네들은 여고 동창생끼리 왔다는데 나도 여고동창생들과 여행해 봤으면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하지만 시도해 보고자 여러 번 대화했을 때 생활 양상이 다른 친구들이 시간을 함께 하기는 너무 어렵다는 것을 이미 체험했기에 미련은 접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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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크루즈를 타 보는건 어떨까.

그냥 내려오기가 너무 아쉬워 전망대를 다시한번 바람을 맞으며 한 바퀴 더 돌고 갈라타탑을 내려와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고 트램을 두 번이나 갈아 타며 술탄 아흐멧 지역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제대로 된 곳에서 먹자는 의견에 따라 인근을 배회하다 조금 화려한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페퍼민트 향을 풍기는 물담배도 피위보고(생전 처음 연기를 흡입했음) 맛있는 요리도 먹고 힘들었던 오늘 하루 일정을 되돌아 보며 도란도란 얘기꽃도 피우는 등 우리 가족으로서는 매우 드문 단란한 시간을 보낸 후 숙소로 와서 내일로 예정된 이스탄불 가이드 투어를 기대하며 잠을 청해 보는데 시간은 자정이 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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